연극의 메카 대학로가 있는 혜화역 출구를 나오다 보면 누구나 한번쯤은 이 연극 포스터를 보게 된다.
바로, 배우 박철민의 얼굴이 큼지막하게 박힌 연극 '늘근도둑 이야기'이다.
1989년 초연 이래 지금까지 롱런 중인 연극으로, 김원해·명계남·문성근·故 박광정·박원상·서현철·손병호·유오성·이성민 등(가나다 순)의 스타 배우가 거쳐 간 화제작이다.
동시대 사건, 사회현상, 정치 그리고 권력 등을 풍자하고, 비판하여 관객에게 큰 웃음과 카타르시스를 안겼다.
현재 트리플 캐스팅으로 진행 중인 이 연극에서 보통 수~목요일을 책임지는 배우들이 있는데, 바로 강영덕(33), 류성훈(34), 신현용(33)이다.
왼쪽부터 류성훈, 신현용, 강영덕 배우. (제공 사진)
대학로의 유서 깊은 극단 차이무의 막내뻘 기수인 세 배우는 올초 캐스팅 돼, 이 유서 깊은 공연에서 자신들만의 호흡으로 선배 배우들과는 다른 색다른 매력을 뽐내는 중이다.
최근 공연 직후 인터뷰를 위해 기자를 만난 세 배우는 "저희가 인터뷰 할 게 있는지 모르겠다"며 어색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공연 중에는 능글맞은 표정과 말투 그리고 몸짓으로 관객들을 배꼽 잡게 하던 이들이 맞나 싶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입봉 시기는 각각 차이가 있지만, 사실상 신인이라 할 수 있는 세 배우는 자신들이 이 연극에 캐스팅됐을 때 영광인 동시에 부담스러웠다고 고백했다.
"일단 셋이 한다는 것 자체가 불안했죠. 그동안은 항상 선배들이 함께 했는데, 아직 서로에 대한 믿음도 없고, 잘 못할 것 같았어요." (류성훈)
"2012년 지방에서 무대 스태프로 이 작품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그때 무대에 선 선배들을 보면서 '언젠가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어요. 출연 제안을 받고는 '잘해야겠다'는 부담감에 스트레스도 많아 받았죠." (신현용)
"많이 두려웠어요. 저는 1월에 한 연극 '별난야유회'가 입봉이었거든요. 그리고 훌륭한 선배들이 거쳐 간 연극인데, 이렇게 젊은 우리가 할 수 있을까도 싶었고, 12월까지라 하니 발이 묶일 것도 같았고요." (강영덕)
출연 배우들보다 불안하고 못 미덥기로 따지면, 연극 '늘근도둑 이야기'의 제작사 나인스토리 구본관 대표가 더욱 심했다.
그는 "40대 이상 경험 있는 배우들이 주로 출연하는 작품에 처음으로 30대 초중반 배우들을 캐스팅하는 거라, 우려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나 그 불안감은 첫 공연을 본 뒤 싹 사라졌다. 구 대표는 "이성우 연출이 본인 믿고 한번 캐스팅해보자 해서 했는데, 생각보다 순발력도 있고, 무대 위에서 잘 노는 모습이 보였다"며 "관객도 충분히 재밌어하겠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코미디 공연은 배우들끼리 '쿵짝'이 잘 맞아야 하는데, 연습 한두 달로는 나오기 힘든 호흡이 마음에 들었다"며 "지금처럼만 한다면, '늘근도둑 이야기'를 거쳐 간 선배들 못지 않은 훌륭한 배우가 되리라 본다"고 기대했다.
왼쪽부터 강영덕, 류성훈, 신현용. (제공 사진)
제작사 대표로부터 극찬을 받는 이 호흡이 나오기까지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지금은 많이 호전됐지만 신현용은 잘해야 한다는 부담과 스트레스로 원형 탈모가 생기기도 했다며 흔적을 보여주기도 했다.
신현용과 동갑내기 친구인 강영덕은 "현용이가 배우 경험으로 따지면 가장 선배다. 연기에 대한 철학이나, 자존심도 강하고. 그러다 보니 스스로를 몰아친다"며 "배울 게 많은, 힘이 되는 친구다"고 전했다.
세 배우 중 쓴 소리를 가장 많이 하는 배우는 형인 류성훈이다.
"형이라서 그런지, 성훈이 형이 가장 잔소리를 많이 해요.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 한다 등등. 듣다 보면 자손심 상할 때도 있지만, 따져보면 맞는 얘기들이에요. 형이 형 역할을 하는 거죠.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고 말하고 싶어요.(웃음)" (신현용)
평소에 듣지 못한 '고맙다'는 말이 낯설었는지, 류성훈은 "난 아직도 너희 못 믿는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배우와 그리고 관객과의 호흡이 중요한 작품인데, 그런 건 신경 안 쓰고 자기 것만 하려는 때가 있어요. 마치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죠. 그럴 때 화를 내요. 저는 건강하게 싸우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나이로 누르거나 하지 않고, 서로 할 이야기 다 할 수있는 관계가 돼야죠."(류성훈)
인터뷰 중에도 셋의 말싸움(?)은 이어졌다. 가식 없이 서로의 치부를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젊은 배우들의 패기와 풋풋함이 함께 느껴졌다.
지금 오르는 무대가, 이를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순간이 앞으로 성장하는 데 있어 큰 밑거름이 되리라 보였다.
앞으로의 꿈을 묻자 신현용은 "손자들 앞에서도 공연할 수 있는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했다. 배우로서 오래 오래 활동하고 싶다는 바람이다.
셋 중 유일하게 결혼한 신현용은 아내 이은정 씨에게도 고맙다고 전했다. "아내도 극단 생활을 했다. 대학로의 '마더 테레사'다. 내가 잘 다니던 직장 관두고, 그때에 비해 절반 정도밖에 벌지 못하는 연극을 하겠다고 했을 때도 묵묵히 지지해줬다"며, 하트를 날렸다.
강영덕은 "꿈을 잃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꿈'은 배우로서만은 아니었다. 포럼 지구와사람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한 그는 "자연과 공생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지금 갖고 있는 꿈들을 최대한 길게 꾸고 싶다. 배우로서도 마찬가지이다"고 밝혔다.
류성훈은 "누가 봐도 '저 사람은 편안하다'고 느껴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며, "무대 위에서도 '편안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