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 자회사인 한국남동발전이 젖은 석탄을 건조시켜 열효율을 높이는 ‘석탄건조 플랜트’를 도입했지만 젖은 석탄 수입물량이 적은데다 기술의 효율성도 떨어져 거액의 예산을 낭비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남동발전은 잦은 설계변경을 통해 설치예산을 대폭 증액해주고, 정작 설비를 첫 개발한 한국테크놀로지(HANKOOK Technology)는 이 사업을 축소·정리하고 자동차 전장사업 쪽으로 회사의 주력사업을 개편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전기요금으로 사기업 좋은 일만 시켜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2016년 준공된 영흥화력발전소 내 석탄건조설비. 남동발전은 2015년 11월 영흥발전소에 석탄건조설비를 건설, 가동에 들어갔지만 업체측에 각종 특혜를 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사진=남동발전 제공)
22일 남동발전에 따르면, 이 회사는 2015년 11월 영흥화력발전소에 석탄건조설비(재열증기방식)를 설치해 가동에 들어갔다.
남동발전은 지난 2013년 석탄건조설비 원천기술을 보유한 한국테크놀로지와 140억원짜리 ‘석탄건조설비 도입계약’을 체결했고 설비 설치공사에 들어갔지만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플랜트 설치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잦은 설계변경과 공기지연, 사업 적정성에 대한 논란 등으로 지난 2013년 7월 시작한 설비공사는(예정 공사기간=3개월) 완공까지 2년 이상 걸렸고 120억원의 예산이 추가돼 플랜트 도입에 들어간 총비용은 260억원에 이르렀다. 한국테크놀로지 측에 그만큼 이익이 돌아간 것으로 추정됐다. 한국테크놀로지는 당시 “건조사업에 대한 인식미비 등으로 초기 사업진행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밝혔다.
설계변경 관련 회의록 현황 (표=남동발전 감사결과)
한국테크놀로지는 플랜트 설치사업을 따내기 위해 ‘화력발전시 에너지원으로 이용하기 어려운 고수분 저발열량의 저급석탄(갈탄)을 화력발전 설계치 수준의 고급석탄으로 가공하면 비용을 절감할 수 있고 이산화탄소도 줄일 수 있다’고 남동발전 관계자를 설득했다.
하지만, 석탄건조설비는 한국테크놀로지에서 기술을 개발해 남동발전에 처음 적용하는 플랜트였던 만큼 가동 선례가 전무해 사업 추진 초기부터 설비 효율성을 장담하기는 어려운 상황이었다.
정부가 최대 지분을 보유한 공기업이 과거 선례도 없고 효율성이 검증되지 않은 사업에 거액의 예산을 투입한 사례는 매우 이례적인 경우인데다 효과분석없이 설계변경까지 일삼아 한국테크놀로지와 남동발전 간 계약이 체결된 경위를 둘러싸고 ‘정권 실세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설이 공공연히 흘러나왔다고 한다.
한국테크놀로지 김모 전 대표를 아는 K사업가는 20일 CBS노컷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석탄건조설비 계약과정에서 업무외적인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한 것으로 안다”며 “한국테크놀러지 고위관계자가 박근혜정권 실세 B씨를 팔고 다녔다”고 말했다.
석탄건조설비에 대한 한국테크놀로지의 입장이 180도 선회한 것도 석연치 않은 대목이다. 한국테크놀러지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한국테크놀로지의 주력사업인 석탄건조 기술을 활용해 국내외 석탄건조 신시장을 개척하고, 해외국가와 기업을 상대로 석탄건조 설비 수주에 박차를 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2018년 초에는 “에너지 사업은 비중을 줄이고, 자동차 전장사업 매출비중이 전체의 90%이상이 되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같은 사실에 주목, 국무조정실은 올해초 석탄건조사업을 둘러싸고 제기되는 의혹에 대해 감사를 진행했고 이어 산업부도 7월부터 ‘남동발전이 효율성이 떨어지는 석탄건조사업을 채택한 이유’와 ‘한국테크놀로지에 계약과정에서 특혜가 주어졌다는 의혹’에 대한 감사를 진행하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영흥발전소에 설치된 석탄건조설비가 제대로 가동이 안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사업이 제대로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 지, 사업추진 절차나 과정이 적절했는 지를 들여다 보고 있다”고 말했다.
석탄건조설비가 애초 목적 대비 효율성이 떨어진데다 계약을 둘러싼 잡음까지 불거지자 남동발전에서도 자체감사를 벌였다.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22일 ‘남동발전 감사결과’를 토대로 “1시간에 200t의 갈탄을 건조시켜 경제성을 높일 계획이었지만 고품질탄의 가격이 싸져서 굳이 건조시설을 돌릴 필요가 없어졌고 이 때문에 시설의 가동율은 형편없는 수준이었다”고 전했다.
권 의원은 또 “공기업의 석연치 않은 수의계약부터 몇 차례에 걸친 설계변경으로 계약금액이 변경된 점, 설비 가동이후 효과를 보지 못했음에도 설비를 증설하고 구매계약을 체결한 점 등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고열량탄과 저열량탄의 가격차이 변동 추이
자체감사에서 지적된 핵심사안은 ▲설비 설계변경에 따른 공사비 증가로 사업성 훼손 ▲계약금액 51억원 초과 설계변경시 결정권자의 승인없이 시행 ▲기본계획 수립.설계변경시 경제성 미 검토 ▲석탄가격 엉터리 예측 ▲예산낭비 등이다.
남동발전은 건조설비 준공 이후 2016년 7월 말 까지 설비 가동율이 설계 90% 대비 16%로 저조해 이용률을 높일 목적으로 저탄장 확대, 건조탄 저장조 설치, 배기가스 배출처 건설에 58억원을 추가 투입하기로 하는 등 애물단지를 넘어 돈먹는 하마로 전락하고 있다.
정부 뿐아니라 권칠승 의원 등 정치권에서도 국정감사에서 석탄건조사업 특혜계약의혹을 집중 파헤치겠다는 입장이어서 계약을 둘러싼 배후세력의 존재여부가 밝혀질 수 있을 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