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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 자녀가 뮤지컬을 한 후, 가정에 평화 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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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들 배우로만 구성된 극단 '라하프'
2016년 대한민국 국회대상 수상·평창 동계올림픽 초청 공연
뮤지컬 한 후 자신감·사회성·자기 표현력 생겨
"교육하면 달라질 수 있구나 깨달아…교육의 끈 놓지 말아야"

극단 라하프의 창작뮤지컬 'This is our story' 연습 현장. (제공 사진)

 

17일 오후 서울 대학로 이음센터 지하 연습실. 10여 명의 배우가 모여 뮤지컬을 연습 중이다.

"OO아, 여기서는 이렇게 앉아야지. 왜 철퍼덕 주저앉니." 한 배우의 틀린 움직임을 총연출이 지적하자 옆에서는 신이 났다. "이렇게 앉아야지"라며, 다른 배우가 스스로 나서 시범을 보인다.

총연출이 "그거 아닌데"라고 하자, 모두가 낄낄 웃으며 한마디씩 거든다. "에이, 그거 아냐. 이렇게야.", "아니야, 이거야."

웃음이 끊이지 않는 연습 현장. 공연을 3주가량 앞두고도 이 정도로 풀어진(?) 분위기면 총연출이 화도 내고 목소리도 높일법한데, 오히려 같이 웃고 놀면서 배우들을 이끌어 나간다.

바로, 극단 라하프 소속 단원들의 창작 뮤지컬 'This is our story'(우리들의 이야기) 연습 현장이다.

'라하프'는 히브리어로 '운행하다, 비상하다'는 뜻. 극단 소속 배우들이 뮤지컬 무대를 오르는 과정을 통해 비상하기를 바라는 의미로 극단 이름이 됐다.

단원들은 모두 발달장애인이다. 나사렛대 재활자립학과 학생들이기도 하다. 나사렛대 재활자립학과는 발달장애인이 4년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전국 유일한 학과이다.

학기 중에는 학교도 다니며 바깥 생활을 하는데, 방학만 되면 집에만 있는 자녀들이 안타까웠던 학부모회에서 여름방학 프로그램으로 뮤지컬을 한번 해보자 했던 게 그 시작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2016년 8월 'This is our story'(우리들의 이야기)라는 제목으로 첫 공연을 올렸다. 발달장애 단원들이 중고교 시절 실제로 겪은 소외감과 괴로움 등 마음 속의 이야기를 무대화했다.

학교와 가정, 친구들 사이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뮤지컬로 보여줌으로써, 비장애인에게는 발달장애인들이 겪고 있는 발달 지연을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콘텐츠의 특별함을 인정받아 2016년 대한민국 국회대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또한 평창 동계올림픽대회 및 동계 패럴림픽대회 조직위원회와 강원도청의 공식초청을 받아 강릉아트센터에서 공연하기도 했고, 심지어 일본에도 초청받았다.

◇ "처음에는 하기 싫다더니, '계속하게 해 주세요' 편지"

극단 '라하프'. (제공 사진)

 

학부모이기도 한 라하프 정영구 대표와 김재은 단장은 "지금이야 웃으면서 말하지만, 모든 게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아이들이 처음에는 하기 싫다고, 그런 걸 왜 하냐며 버텼어요. 꼬시고, 윽박지르고, 친구 통해 회유와 압박도 하고, 그렇게 어렵게 14명이 시작했죠."

일회성으로 '한 번 해보자' 한 뮤지컬을 이후에도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첫 공연 후 학생들이 전한 편지는 이들의 생각을 바꿨다. "아줌마, 우리 뮤지컬 계속하게 해주세요."

시작부터 연습하는 과정, 그리고 뮤지컬을 올리기까지 모든 순간이 녹록지 않았다.

발달장애인은 당사자뿐만 아니라 부모도 장애 당사자로 본다고 한다. 종합사고력이 떨어지기에 부모가 늘 선택을 도와야 한다.

연습하러 오는 길부터 마치고 돌아가는 순간까지 늘 부모가 곁에 있어야 했다.

뮤지컬의 '뮤'자도 모르는 문외한들이 모여 호기롭게 한번 해보자 했지만, 정말 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하지만, 그 편지를 받고서는 그간의 어려움은 싹 잊었다. '뮤지컬 하기를 잘했구나' 싶었다.

◇ "의기소침했던 자녀들, 뮤지컬 후 자신감 붙어"

극단 라하프의 창작뮤지컬 'This is our story' 연습 현장. (제공 사진)

 

이뿐만이 아니다. 자녀들의 행동에는 자신감이 붙었다.

"특수학교를 다닌 학생도 있지만, 일반 중고교를 다닌 친구들도 많아요. 조금 부족하다는 이유로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받다보면, 의기소침해지죠. 항상 모든 걸 마지막으로 미뤄요. 버스에 오르는 것도, 음식을 고르는 것도 다른 사람들이 선택한 후에 늘 마지막으로 행동해요. '내가 해도 되나'라는 생각이 있는 거죠."

그랬던 아이들이 뮤지컬을 한 후에는 많이 달라졌다.

"자신감 넘치게 소리도 낼 줄 알고요, 심지어 자신감이 너무 충만해 일반과로 가겠다고는 친구도 있어요(웃음). 고개를 못 들고 다닌 어떤 친구는 뮤지컬을 하고 2년이 지나면서 고개를 들고 다니기도 하고요. 밥도 서로 따로 먹었는데, 함께 먹게 됐고요. 더치페이도 할 줄 알게 됐고요. 이게 무슨 큰 변화냐고 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정말 큰 변화랍니다."

뮤지컬은 언어치료면에서도 큰 효과를 안겼다. 무대 위에 서기 위해 스스로 대사 연습을 하다 보니, 언어치료실에서 그토록 치료하려 해도 안 되던 말들이 되기 시작했다.

또한 각 배우가 자기 순서에 맞춰 대사를 하는 장면을 연습하는 과정은, 자기밖에 모르던 학생들에게 자연스레 나 이외에 너와 우리라는 사회성을 가르쳤다.

◇ "자기 의사표현력 생기면서 가정에서 싸움 줄어"

학생들의 변화는 자연스레 가정으로도 이어졌다. 김 단장은 "가정에 평화가 찾아왔다"고 표현했다.

이번 공연에 등장하는 에피소드 중 하나는 발달장애인 자녀가 엄마와 큰 말다툼을 한 후 오랜 기간 서먹하게 지내다 화해한다는 내용이다. 실제 사례이기도 한 동시에, 사실 모든 가정에서 있었던 일이기도 하다.

이 장면을 며칠간 연습하던 다른 배우가 어느 날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엄마, 나 이 장면 연습할 때 자꾸 눈물이 나. 이 장면만 보면, 내가 왜 엄마에게 왜 소리 지르고, 못되게 굴었는지를 생각해보게 돼. 내가 미안해."

김 단장은 "아이들이 감정 표현이 서툴다. '싫어', '안 먹어' 등의 말을 앙칼지게 한다. 연기할 때도 그러면, 연출 선생님이 '배우가 왜 이렇게 표현해. 이건 부드럽게 해야지'라고 한다. 아이들은 그 배역을 통해 자연스레 그 상황, 그 인물의 정서를 학습한다"고 설명했다.

또 "가정에서 외식하러 가면 기분 좋게 먹고 온 적이 드물다. 부모는 아이가 갈비를 좋아하니 자연스레 '오늘 갈비 먹자'며 갔는데, 아이는 이날 돈까스가 먹고 싶었던 거다. 그런데 말로 표현하지 않거, 먹기 싫다며 화내고, 소리지른다. 자연스레 모두가 기분이 나빠졌다. 여행을 가도 그랬다"고 했다.

이어 "하지만 뮤지컬을 한 후 아이가 사회성도 생기고 표현력도 생겼다. 학부모들끼리 이런 이야기를 한다. '뮤지컬을 하고 좋아진 게 뭐가 있을까'라고. 그러면 여행가서 안 싸운 거, 외식 가서 안 싸운 거를 말한다. 언제부턴가 가정이 평화로워졌다.(웃음)"라고 덧붙였다.

◇ '라하프' 극단에서 사단법인 전환 준비 중 … "교육의 끈 놓지 말아야"

라하프는 극단에서 사단법인으로 전환을 준비 중이다. 학생들이 대학 졸업 후에도 계속 공연을 할 수 있기를 바라서다.

동시에, 다른 발달장애인들도 자신들과 자녀들이 한 경험을 하게 하고 싶다고 전했다.

김 단장은 "뮤지컬을 한 최근 3년은 '우리 아이들이 이런 걸 할 수 있었구나'를 깨닫는 과정이었다. 교육하면 얼마나 달라지는지를 경험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우리 아이들 말고도 다른 아이들과 부모님들도 교육의 끈을 놓지 말고, 아이들 자존감도 키울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또 다른 꿈은 없냐 물으니, "예술학교를 만들어서 단원들이 장애인 예술가가 되고 다른 발달장애인을 지도하는 선생님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장애인이어도 문화예술을 직업으로 삼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일을 하며 살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한편, 극단 라하프는 창작 뮤지컬 'This is our story'라는 제목으로 다음 달 9일 저녁 7시 야외 무대인 광화문 광장에서 공연한다.

7일부터 9일까지 같은 장소에서 진행되는 2018 장애인문화예술축제 A+페스티벌 중 한 프로그램이다. 공연 제목은 지난번과 같지만, 이번에 새롭게 창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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