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퇴직자들의 재취업 비리로 전직 수뇌부가 줄줄이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으면서 재벌 규제를 다수 포함하고 있는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작업에 난항이 예상된다.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부장검사 구상엽)는 지난 9일 공정위 퇴직자들의 불법 재취업을 도운 혐의(업무방해)로 신영선 전 공정위 부위원장을 구속했다.
지난달 30일에는 같은 혐의로 정재찬 전 공정위원장과 김학현 전 부위원장이 구속되는 등 공정위 전직 수뇌부가 무더기로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여기다 지난 13일에는 본인 스스로가 취업심사를 거치지 않고 취업이 제한된 단체에 재취업한 혐의로 현직인 지철호 부위원장이 검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다.
전직 공정위 수뇌부 뿐만 아니라 현직 수뇌부에게까지 검찰 수사의 칼끝이 향하고 있는 것으로 앞으로 현직 가운데서 수사대상이 더 나올 것으로 보인다.
◇ 취임 2년차 김상조號, 자발적 개혁→제도 개혁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윤창원 기자/자료사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취임 이후 첫 1년여 동안 순환출자 고리 해소 등 지배구조 개편과 내부거래를 통한 사익편취와 부당지원 제제 등에 주력해왔다.
특히,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서는 공정위 등 정부부처가 직접 나서기 보다는 재벌그룹이 자발적으로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도록 유도하는 등 '자발적' 개혁을 강조해 왔다.
이후 취임 2년차를 맞은 김 위원장은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을 통해 재벌 스스로의 노력에만 맡기기 보다는 제도개선을 통한 재벌개혁에 나서는 모양새다.
대표적으로 38년 만에 이뤄지는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안에는 내부거래 규제 대상 기업의 총수일가 지분율 기준 강화, 소속 금융보험사와 공익법인의 의결권 제한 등 재벌 규제 관련 내용이 상당수 포함될 전망이다.
여기다 재벌들에 대한 봐주기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던 '전속고발권' 폐지 여부에 따라 앞으로 공정거래법 관련 재벌들의 비위행위에 대한 수사가 더 활발해질 수 있다.
공정위는 공정거래법 전면개편특별위원회가 최근 내놓은 권고안을 토대로 공정거래법 전면개편안의 세부안을 이번달 말까지 확정해 입법예고하고 연내에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 재취업 비리로 개혁입법 작업 스스로 발목잡아그러나 개혁의 주체가 돼야할 '경제검찰' 공정위가 퇴직자 재취업 비리로 소위 '적폐' 청산의 대상으로 지목되면서 이같은 개혁 입법에 난관이 예상된다.
실제로 재계에서는 공정거래법 전면개편안에 대해 가뜩이나 경제상황이 어려운데 규제를 강화해 경영활동이 위축될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내부거래 규제 대상 강화 방안에 대해 현재 방안대로 입법이 이뤄질 경우 규제대상 대기업이 203곳에서 441곳으로 늘어나게 된다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또, 금융보험사와 공익법인의 의결권 제한으로 국내 대기업들이 외국계 헤지펀드의 먹잇감이 될 것이라는 불만을 쏟아내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참여연대 등 개혁 진영에서는 전면개편안의 취지는 공감하면서도 이번 개편안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다며 비판하는 등 벌써부터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재벌그룹과 공정위의 유착을 넘어 재벌그룹에 대한 공정위의 '갑질'로까지 확대된 퇴직자 재취업 비리는 개혁 입법의 발목을 잡을 수 밖에 없고 이는 공정위가 자초한 측면이 크다.
벌써부터 야권 일각에서는 그동안 대기업들을 쥐어짜던 공정위가 개혁 입법을 명목으로 규제를 강화해 권한이 더욱 커질 것이라며 비판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국회 통과를 전제로하는 공정거래법 전면개편안이 국회 제출도 전에 이같은 논리로 무장한 야권의 반대로 좌초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