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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이 떠났다' 채시라 "진짜 작업다운 작업을 해 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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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인터뷰] '이별이 떠났다' 서영희 역 채시라 ①

최근 종영한 MBC 주말드라마 '이별이 떠났다'에서 서영희 역을 맡은 배우 채시라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착하지 않은 여자들' 이후 3년 만에 MBC 주말드라마 '이별이 떠났다'로 돌아온 채시라는 이번 작품에서 그동안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보여줬다. 단발도 그중 하나였다. 어떤 작품을 맡을지 몰라서 보통은 머리를 기르고 있다는 그는, 극중 캐릭터의 변화를 더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머리를 잘랐다.

캐릭터도 범상치 않았다. 채시라가 연기한 서영희는 남편과 아들 모두에게 외면당한 나머지, 3년 가까이 집안에만 틀어박혀 세상을 차단한 채 사는 인물이었다. 그러다 아들의 아이를 밴 정효(조보아 분)를 만나며, 더 약한 존재를 보듬게 되고 세상 밖으로 다시 나갔다.

세상과의 접촉을 거의 모두 단절한 캐릭터를 맡아 힘들진 않았을까. 지난 8일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채시라는, 오랫동안 은둔해 온 서영희의 '어둠'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드라마 속 장면이 눈앞에 그려지는 듯 생생했다.

◇ "누구도 나를 구원해주지 않는다"

'이별이 떠났다' 속 서영희는 새살림을 차려 아이까지 둔 남편 한상진(이성재 분) 때문에 제대로 살기를 거의 포기한 사람이다. 햇볕 한 줌 들어오지 못하게 커튼을 치고, 슬립만 입은 채 담배를 태운다.

서영희가 등장하는 첫 번째 장면은 채시라가 제작진과 논의해 만들어냈다. 원작(동명의 웹소설 '이별이 떠났다')과 달리 가구와 침대까지 모두 천으로 덮어두어, 서영희의 고립을 드러내고 캐릭터에 관한 궁금증을 극대화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채시라는 "실제로 제가 그렇게 3년 동안 집 밖으로 나오지 않은 경험은 없지만, 저도 집에 있을 때는 아내이자 엄마이고 전업주부다. 남편 출근하고 아이도 나갔을 때 공허함을 느끼는데, 그렇게 잠깐씩 느끼는 감정들이 영희에게는 3년 동안 지속된 거다. 이 여자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살 수 있겠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이어, "남편이 그런 상황에서 애까지 낳은 상태고, 아들이 있지만 내가 과연 살아갈 방법은 뭔가. 경제권을 쥐고 절대 놓지 않는 것으로 살길을 찾은 거다. 햇빛 보고 싶지 않고,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목숨을 스스로 내놓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실 강인한 여자였다"고 전했다.

슬립을 입고 담배를 든 장면도 채시라의 의견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장면이다. 원작 삽화를 보자마자 '이건 서영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었단다. 검은색 슬립을 입고, 변기 뚜껑을 덮은 그 위에 앉아 담배를 든 모습.

극중 서영희는 남편과 아들에게 외면당해 스스로 세상과 단절을 선언한 인물이다. 슬립과 가운만 입고 담배를 무는 장면은 그의 고립을 잘 보여준다. (사진='이별이 떠났다' 캡처)

 

채시라는 "이 하나로 이 여자를 다 설명할 수 있었다. 대본에는 그냥 화장실에 앉아 있다고만 돼 있지, 옷차림을 뭘 입으라는 건 없었다. 전 (원작 삽화) 그대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랬더니 감독님이 '헉!' 하면서 그래도 괜찮겠냐고 하셨다"며 웃었다.

집 안에 있을 때 슬립만 입고 있는 설정 역시 채시라의 의견이었다. 디자인과 색감이 조금씩 다른 여러 가지 스타일의 검은색 슬립 4~5벌을 돌아가며 입었다. 그는 "서영희가 아직도 '매력적인 여성'이라는 부분이 녹아있지 않았나 싶다"며 "요즘 시대 엄마는 정말 그렇다. 멋쟁이도 많고, 엄마라는 게 티가 안 난다. 서영희도 그 시대에 사는 인물이니까 충분히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다고 봤다"고 밝혔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자기 파괴적인 모습을 보였던 서영희의 인생은, 정효의 등장으로 바뀐다. 누군가 다가오는 것을 "내 울타리에 침입자가 생기는 것"으로 받아들여 "되게 적대적"이었던 서영희는 자기보다 더 약한 존재인 정효를 보호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고, 그러면서 차츰 달라진다.

"(정효에게) 부정적인 부분을 다 드러내는데도 꿈쩍하지 않잖아요. 제가 세상에서 가장 피해자라고 생각했는데, 제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이 와서 (저를) 흔들리게 하는 거예요. 내가 보호해야겠구나, 내가 바로 서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는 거죠. 나중에 정효가 나가버리고 다시 커튼을 닫지만, (그 기간이) 길지 않았던 건 이미 함께 어우러져서 소통하는 맛을 봤기 때문이 아닐까요. 커튼 닫는다고 해서 누구도 나를 구원해주지 않고, 스스로 (나를) 세워야만 한다는 것. 아무도 도와줄 사람은 없다는 거죠. 내가 한상진 놔 줘야겠다, 어떤 일을 해서 먹고살지 모르지만 앞으로 스스로 살겠다, 아이는 죄가 없다 그런 생각까지 하고요. (밖에) 나가서 긍정적인 상황을 만나고 엔딩까지 간 것 같아요."

◇ 극중처럼 아들의 여자친구가 혼전 임신해서 들어온다면?

서영희는 자기 일상도 온전히 가누지 못했지만, 뱃속 아기를 지키려고 무작정 집으로 들어온 정효를 모질게 밀어내지 못한다. 처음에는 쫓아내려 하지만 결국 함께 살게 된다. 정효의 어떤 면이 꽉 닫힌 영희 맘 문을 열었을까.

채시라는 "엄마(장소연 분)가 있었지만 따로 떨어져 있었고, (정효 곁에) 그 엄마가 있었다면 정효가 아마 저를 찾아오지 않았을 것 같다"면서 "내가 힘들게 겪었던 일을 그 아이도 시작하려고 하니, 경험자로서 도와줄 수 있는 건 인간적인 면의 지지였다"고 말했다.

채시라는 "이 아이(정효)는 아무리 독설을 퍼부어도 끝까지 아이를 지키려고 한다. 나(영희)도 임신했을 때 생명을 그렇게 생각했으니, (그런 모습을 보고) 인간적인 끌림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도와야 한다, 내가 아니면 안 되겠다 하는 마음을 불러일으켰을 것 같다"고 전했다.

'이별이 떠났다'는 예비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어떻게 한 사람과 사람으로 만나 마음의 문을 여는지 그 과정을 담았다. (사진=MBC 제공)

 

그러면서 "나를 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저 아이를 통해서 '나도 전에 저랬었지' 하고… (그땐) 뭘 몰라서 힘들었는데 나도 (이제는) 조금 도와주고 싶다, 그런 것? (그래서) 인간적인 소통이 되지 않았나"라며 "인간이고, 여자이기 때문에 모성이라는 게 있지 않았을까"라고 부연했다.

만약 실제로 채시라에게 극중 같은 상황이 벌어졌으면 어떡하냐고 묻자 그는 단숨에 "깜짝 놀랄 일이다. 큰일 날 일"이라고 답해 취재진을 폭소케 했다. '이런 일 벌어지지 않게 아들딸 교육 잘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그러고는 "아주 교육적인 드라마"라고 해 다시 한번 웃음이 터졌다.

채시라는 "전 같았으면 (이런 상황이) '말도 안 돼' 이랬을 것 같은데, 서영희 상황을 (연기)해 보니까 그래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했을 것 같다. 이미 벌어진 일에 '왜 그랬어?'라고 하지 않고, '어떻게 해결할까' 긍정적인 측면을 보는 거다. (저라면) 좀 더 소통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 진짜 '작업다운 작업'을 했던 촬영 현장

채시라는 이번 드라마에서 육탄전도 감수했다. 극중 남편의 불륜 상대인 김세영(정혜영 분)과 격하게 부딪쳤기 때문이다. 영희가 매달 상진에게 보내는 생활비가 세영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직접 돈을 입금하자, 모멸감을 느낀 세영이 영희의 집으로 찾아오며 이른바 '막싸움'이 벌어졌다.

두 여자의 해묵은 갈등이 고조돼 마침내 폭발하는 장면. 채시라와 정혜영은 이 장면을 찍기 위해 열심히 연습해 합을 맞췄다. 자칫하면 곧바로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채시라는 "자꾸 연습해서 맞춰야 완성도가 좋아진다. 대충 한두 번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리허설할 때부터 무릎에 멍이 들어서, 무릎 아대도 너 하나 나 하나 대고, 머리가 (벽에) 닿으면 안 돼서 액션 감독님도 오셔서 연습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머리를 진짜 쥐어뜯을 순 없으니 그런 효과를 내되 안전하게 연습을 꽤 많이 했다. 근데 (연습을 오래 해서) 정웅인 씨가 '내 씬 오늘 찍을 수 있는 거야?'라고 농담을 했다. 그렇게 웃긴다. (웃음) 정웅인-이성재 씨가 없었으면 어떡할 뻔했나 싶다. 둘이 팀에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말했다.

자연스레 배우들의 이야기로 넘어갔다. 극중 영희의 속을 태우는 얄밉고 무심한 남편 상진 역의 이성재와 대화를 많이 나눴는지 묻자 "성재하고는 학교 선후배니까, 어떤 벽이 없이 이미 믿음이 있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두 사람은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동문이다.

배우 채시라 (사진=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채시라는 "성재가 어떻게 소화하든 분명히 잘 해낼 거라는 걸 믿었다. 제가 한다고 했을 때 성재도 반가워했을 거고. 늘 현장에서 엉뚱한 말을 쏟아내면서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정웅인 씨랑. 둘이 콤비로 뭐 하나 했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그는 "서로를 막 못 잡아먹어 안달인 것 같으면서도 서로 없을 땐 칭찬도 하고, 하여튼 (분위기가) 예술이다. 서로의 연기를 동경하면서도, 현장 분위기를 그렇게 좋게 만들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준영에 대해서도 "아주 겸손하고 감사할 줄 안다. 기본이 된 친구"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예비 시어머니-며느리라는 썩 편치 않아 보이는 관계에서도 서로를 누구보다 위하는 호흡을 맞춘 조보아에게선, 예전의 자기 모습을 봤다고도 전했다.

"호흡이 좋을 수밖에 없었던 게, 서로가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봐서 그래요. 제가 잘 이끌고 싶어도 후배가 마음을 열지 않으면 어렵듯, 서로 소통이 되게 중요한데 그 부분이 아주 잘 됐다고 생각해요. 이게 다 경험이잖아요. 참 열심히 하려고 하고, 저런 모습을 본받아야겠다, 저도 이랬는데 보아도 보면 긍정적인 시선으로 뭐 한 가지라도 더 배워가려는 그런 부분들이 있어요. 굉장히 예뻐 보였고 예전의 저를 보는 듯한 느낌도 있었어요. 굉장히 성실하고 열심히 하는 친구예요."

채시라는 '이별이 떠났다'의 작업이 매우 만족스러웠다고 강조했다. 우선 이성재-정웅인의 조화가 좋았고, 디테일에 강했다는 점을 꼽았다. '채시라 덕후'를 자처한 김민식 PD하고도 많은 대화를 나눴기에 '만들어가는 재미'를 느꼈다는 후문이다. 채시라는 "어떻게 하면 좋은 장면 만들 수 있을지, 감정적인 부분까지 서로 얘기했다. 진짜 작업다운 작업, 이상적인 작업을 해 본 것 같다"고 밝혔다. <계속>

(노컷 인터뷰 ② 데뷔 35주년 채시라 "아직 의사 역할 한 번도 안 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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