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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스토리] 그해 대구에서 벌어진 마녀사냥을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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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 강사, 수강생 신고로 국가보안법 위반혐의 경찰 조사
검찰, 국보법 대신 선거법 위한 혐의 적용 1,2심 유죄 판결
정권교체 뒤 대법원서 파기환송... "이미 삶은 바뀌어 버려"

유씨는 자택 식탁 위에 놓고 취재진을 만났다. 나무 의자에 앉았던 유씨는 사진을 찍을 때 자리를 피했다. 유씨의 부모님은 아직 자신의 딸이 학교를 그만 둔 이유를 정확히 모른다.

 


"교수님. 저 상의드릴 일이 있어 왔어요"

아침부터 이름 모를 여학생이 유씨의 집으로 찾아왔다. 집에서 강의를 준비하던 그녀는 이름도 낯선 학생의 방문에 당황했다. 며칠 전 이사를 해서 주소가 바뀌었는데 모르는 학생이 집을 찾아오다니 놀라웠다. 학교에서 보면 안 되냐고 물어보았지만 학생은 급한 일이라며 떠나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문을 열었다. 그 순간 낯선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영장번호 제2013-3589호. 죄명은 찬양 고무 등의 국가보안법위반. 압수수색을 나온 대구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였다. 그들은 집 안 구석구석을 뒤지며 물건을 담았다.

2013년 4월 봄, 그녀는 미래를 압수당했다.

2013년 4월 발부된 압수수색검증영장의 사본.

 


"다른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했어요. 학생들에게 특강도 하고 신문 자료도 나누어 줬죠"

책상에 가득 놓은 서류와 자료. 한동안 생각하지 않았던 자료를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는 유씨(51)는 2013년 이야기를 조금씩 꺼냈다. 집안 식탁에는 당시 유씨가 수업했던 강의 자료가 있었다. A4용지에는 수업 시간에 말할 내용이 빼곡했다.

영남대를 졸업하고 프랑스 사회학을 전공하며 유학을 다녀온 유씨는 2008부터 모교에서 강의를 맡았다. 2012년 2학기에도 <현대 대중문화의="" 이해=""> 수업을 가르쳤다. 늘 해오던 방식으로 외부 강사를 초빙해 특강도 했고 신문 스크랩 자료를 나누어 주기도 했다. 2학기 강의를 종강하며 수업은 무사히 끝난 줄 알았다.

2013년이 시작되자 대구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의 압수수색이 시작됐다. 경찰은 유씨가 북한의 대남전력에 동조, 활동하는 국가보안법 위반 범죄를 범했다고 보고 관련 자료를 압수해갔다.

알고 보니 수업이 한창이던 2012년 11월, 영남대 학생 한 명이 111(국가정보원) 번호로 신고를 한 상태였다. <현대 대중문화의="" 이해=""> 특강자였던 백창욱 목사의 강의가 불순하다는 내용이었다. 백 목사는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이하 평통사)에서 활동하는 사람이었다.

진보단체인 평통사는 한미FTA, 한미 합동군사훈련, 평택 미군기지 이전,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반대, 주한미군 철수, 평화협정 체결 등의 주장을 펼치며 검찰의 수사 대상이었다. 백 목사의 부탁으로 평통사 운영위원으로 이름을 올려놓았던 그녀도 문제시 됐다. 활동은 없었지만 평통사와 인연이 있다는 이유였다.

2012년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를 비판하는 신문기사를 배포한 것도 혐의에 포함돼 있었다. 유씨는 수업 참고 자료로 다양한 신문 칼럼을 학생들에게 나누어 줬는데 그중 일부가 박 후보를 비판한 글이었다.

하지만 수사를 지휘한 검찰은 유씨에게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지 않았다. 대구지방검찰청은 그녀를 대신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했다.

검찰이 문제로 삼은 2012년 9월 18일자 한겨레신문 칼럼. 유씨는 대중문화를 이해하는 참고자료로 신문 칼럼을 나누어 주었다. (사진=한겨레신문 네이버 뉴스 페이지 캡처)

 


검찰과 변호인은 공직선거법 위반과 학문의 자유를 두고 법리 다툼을 벌였다. 검찰은 유씨가 강사라는 직위를 이용해 불법선거운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변호인은 단순히 신문 칼럼을 복사해 학생들에게 나눠준 것은 불법선거활동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신문 기사는 수업 보조 자료로 쓰였고 특정 후보를 지지하라는 말도 없었으며 수업에는 다른 뉴스도 많이 소개됐다. 특히 해당 기소가 공직선거법이 아닌 국가보안법에 짜 맞추기식 수사로 시작돼 공권력 남용임을 강조했다.

2013년 12월 1심 재판부인 대구지방법원은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유씨는 공직선거법위반으로 벌금 100만원을 선고받았다. 2014년 3월 대구고등법원 항소심 판결에서도 원심이 확정됐다.

"전혀 문제가 될 것이라고 상상 못 했죠. 상식 밖의 기소여서 변호사도 '설마 유죄를 선고하겠냐'고 말할 정도였어요. 학문의 자유, 그것도 진리의 상아탑이라고 하는 대학이잖아요. 그런데 유죄를 선고하더라고요. 처음엔 '대구라서 그런가?' 생각도 했어요. 박근혜 정부가 막 시작할 때니까요"

유씨는 2013년 첫 판결 결과에 자신과 변호인, 주변지인이 당황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영남대가 모교이고 10년의 유학 끝에 시작한 강의이기에 애착이 있었다. 학생의 대중문화 지식에는 한계가 있었기에 활용할 수 있는 것은 다양하게 보조 자료로 나눠줬다. 모든 것은 학문의 영역에서 판단했다. 특정 후보를 지지해달라고 말한 적도 없었다. 박정희, 유신, 박근혜는 현대사회의 한 부분일 뿐이었다.

검찰이 문제를 삼은 2012년 10월 24일자 한겨레신문 사설. (사진=한겨레신문 네이버 뉴스 캡처)

 


대학 본부는 경찰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유씨와 관련된 자료는 모두 경찰에 넘겼다. 대학 자체적으로 진상조사를 하는 과정은 없었다. 사회학과 학과장도 유씨를 불렀다. 학과장은 이런 일 때문에 사회학과가 피해를 보고 있다는 취지로 이야기했다. 유씨는 영남대에서 강의를 할 수 없었다. 다른 대학 강의도 모두 취소됐다.

"이 일을 할 수 없게 됐기에 상실감이 많이 컸어요. 삶도 무기력해졌죠. 10년간의 유학생활과 미래의 꿈이 한순간에 날아갔으니까요. 뭔가 이 일과 거리를 둘 게 필요해서 그때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나를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를 달랬죠"

사건 이후 서울로 올라온 유씨는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릴 때 만큼은 이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주변에서는 유씨가 대학 강사를 그만두고 진로를 바꿔서 그림 을 그리는 것에 의아해 했다. 그럴 때마다 "지금이 아니면 이 일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래요"라고 대답하는 것이 전부였다. 유씨는 주변에 자신이 국가보안법으로 조사를 받은 것도, 선거법위반으로 억울하게 처벌 받은 것도 알리지 않았다. 부모님께도 알리지 않았다.

가족은 그가 그림을 그리고 싶어 진로를 바꿨다고 생각했다.

2012년 11월 당시 유씨가 수업했던 <한국 사회="" 변동과="" 대중문화=""> 강의 자료.

 


'어떻게 보면 그냥 벌금 100만원을 내는 것이 피고인에게도 시간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손해가 적은 사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벌금 100만원을 내고 끝내버리면, 19명의 변호사들이 변호인으로 이런 '작은' 사건에 줄줄이 연명을 하거나, 현직 헌법교수님과 사회학 교수님이 의견증인으로서 항소심 법정에 출석해 증언을 통해 의견을 밝히는 번거로움과 수고를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변호인이 대법원에 제출한 상고이유서는 이렇게 적혀 있다.

'그러나 본 건은 벌금 100만원이 걸린 사건이 아니라, 이 땅의 학문의 자유의 확립과 공권력의 자의적 법집행으로 인한 인권탄압, 반정부세력에 대한 공안몰이를 통한 억압과 관련된 중대한 사건이라고 보여집니다'

2014년 항소심 판결 후 변호인은 상고이유서를 제출하며 대법원에 상고했다.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도 했다. 유씨는 이 일을 잊기 위해 계속 그림을 그렸다.

유씨 집에 놓여 있는 자신의 그림. 현재 유씨는 예전의 삶을 포기하고 민화를 그리고 있다.

 


2018년 7월 12일. 대법원판결이 나왔다.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대구고등법원에 환송한다"

대법원 재판부는 "유씨가 신문기사를 나눠준 것이 특정 후보를 낙선시키려는 목적이 없고 불법선거운동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어 "교수의 자유는 연구자가 학문적 연구 성과에 따라 가르치고 강의를 할 수 있는 자유이고 헌법 '학문의 자유'로 보호된다"고 보았다.

또한 "한국 현대사의 역사적 사건과 인물 및 사회적 논란이 되는 사안들은 다양한 평가나 의견이 제시될 수 있다"며 "학생들의 강의평가 중에도 그러한 강의 방식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의견이 있다"고 정리했다.

대법원은 대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원심판결을 파기했다.

대법원판결은 언론 보도로 알려졌다. 유씨도, 변호인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대구지방검찰청에서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도 대법원 판결을 모르고 있었다. 현재 지청장이 된 검사는 여전히 "해당 사건은 공직선거법 위반이 맞다"는 입장이다.

부모님에게는 앞으로도 사실을 말하지 않을 것이라는 유씨.

"고등법원에서 최종적으로 무죄가 선고된다고 하더라도 가족에게 알리지 않을 거예요. 보안수사대 조사받고 하는 과정이 굉장히 힘들었어요. 좋은 일이 아니죠. 이제 와서 부모님에게 걱정을 안겨드리고 싶지 않아요. 이미 제 삶이 바뀌어 버렸어요"

대법원 판결은 났지만 유씨는 이쪽 일을 계속할 수 없다. 긴 재판 동안 출국은 제한됐고 박사학위 논문은 끝내 마치지 못했다. 프랑스에서 자신을 지도했던 교수는 정년퇴직했다. 강의도 멈춘 지 오래다. 교수를 꿈꾸며 학문을 했던 삶은 회복될 수 없었다.

압수당한 그녀의 꿈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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