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찾은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이중호(67)씨의 양계장에서 이씨가 닭들을 살피고 있다.(사진=신병근 기자)
"자식같은 닭들이 쓰러지는 걸 보고 울다 지쳐 쓰러져 병원까지 갔어요. 정말이지 제초제 먹고 죽고 싶은 심정이에요."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에서 7년째 양계장을 운영중인 김영순(62·여)씨는 폭염에 폐사하는 닭들을 처리하며 절박한 심정을 토로했다.
우리나라 기상관측 이래 가장 뜨거운 날로 기록된 지난 1일 오후 1시30분. 김씨의 농장 안 수은주는 무려 44도까지 올라있었다.
축사 한켠에 쓰러진 닭을 들어 올리던 남편 이중호(67)씨도 굵은 땅방울을 닦으며 주전차채 물을 마셨다.
최악의 폭염이 20일 이상 지속되면서 가축 폐사를 막아보려는 농민들은 매일 사투를 벌이고 있지만, 좀처럼 꺾이지 않는 더위에 농심마저 타들어가고 있다.
지난 1일 오후 2시 찾은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이중호(67)씨의 양계장 안 온도계가 44도까지 올라있다.(사진=신병근 기자)
◇ 눈앞에서 쓰러지는 닭들… 말복 앞둔 양계농가 '초비상'2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폭염으로 전국에서 폐사한 닭은 316만6천여마리, 오리 17만7천여마리, 돼지 1만5800여마리, 메추리 3만마리에 달한다. 전체 폐사한 가축들 중 닭이 93%에 이르고 있다.
더위에 취약한 닭들의 폐사가 심각한 실정으로, 이씨 내외가 운영하는 1200㎡ 규모 양계장도 하루에만 30여 마리의 닭들이 더위를 버티지 못해 쓰러지고 있다.
이처럼 닭들이 더위에 특히 약한 것은 깃털에 쌓여 있는데다 열과 수분을 배출할 땀샘이 없어 체온조절이 어렵기 때문이다. 겨우 헐떡거리며 열을 내보내는 것이 전부라는 것이다.
육계 4만 마리를 키우던 이씨는 지난달 2일 태풍 '쁘라삐룬'의 영향으로 내린 폭우에 1만5000마리를 잃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계속되는 폭염에 이달 들어 4000마리의 닭을 또 읽고야 말았다.
양계장에 들어서자 수 천 마리 닭들이 식수대에 주둥이를 모으고 목을 축이고 있었지만, 털이 빠진 닭부터 힘이 없어 주저앉은 닭들이 태반이었다.
급기야 축사 구석으로 비틀비틀 가던 한 마리가 쓰러지는 모습도 보였다. 이씨는 쓰러진 닭을 툭툭 쳐 봤지만 더 이상 움직이지 않자 눈살을 찌푸리며 한 숨을 내쉬었다.
대형 선풍기를 틀고 분무기를 뿌려도 온도를 낮추는데 역부족이었다.
닭들을 살피기 위해 여주 시내에 있는 집에서 나와 농장 옆에 잠만 잘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이씨는 20일 넘도록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대목인 말복을 앞두고 닭을 출하시켜야 하는데도 닭들의 상태가 좋지 않아 이씨 부부의 걱정은 태산이다.
김씨는 "가뭄에 물까지 부족하니 가장 더운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만 물을 뿌리고 있다"며 "더워도 너무 더우니 닭들이 사료도 잘 먹지 않아 상품성이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폭우로 폐사한 닭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고 벌금을 내라는데, 폭염에 또 죽어 나가는 닭을 보는 농민들을 두 번 죽이는 셈"이라며 "지금까지 잃은 닭들과 사료값 등을 계산해보면 적자만 1억7천만 원에 달하는데 어찌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성토했다.
지난 1일 찾은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원동학(54)씨 돼지농장에 돼지들이 더위에 지쳐 바닥에 쓰러져 있다. (사진=신병근 기자)
◇ "제발 버텨다오" 농가들 초비상… 전문가 "소방차 살수 필요"이날 오후 3시쯤 찾은 여주시 강천면 원동학(54)씨 돼지 농장도 사정은 비슷했다.
축사 온도를 1도라도 낮추려 안간힘을 쓰는 직원들의 옷은 땀으로 범벅이었다.
30년 경력의 원씨는 "이런 더위는 처음 겪어 본다"며 축사에 찬바람을 제공하는 '쿨링시설'을 점검하고, 돼지들 상태를 살피기 위해 CC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땅 속의 시원한 공기를 끌어올려 축사까지 연결시키는 장치를 연신 가동시켰지만, 축사 내부 온도는 36도에서 38도까지 올라있었다.
돼지들도 힘이 부치는지 바닥에 엎드려 움직이지 않고 숨만 헐떡였다. 급수대에는 물을 먹기 위해 모여든 돼지들끼리 싸움을 벌였다.
원씨는 "직원들 모두 휴가를 반납하고 '제발 버텨달라'는 심경으로 일하고 있다"며 "40도 가까이 기온이 오르는 한낮에는 축사에 물을 계속 뿌려주고 있다. 돼지들 걱정에 바깥 활동은 엄두를 내지 못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폭염으로 인한 피해가 계속 늘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철저한 축사 온도 관리가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터널식 환기와 찬물, 비타민제를 공급하고 사료는 새벽이나 저녁에 공급해 줄 것을 당부했다. 무엇보다 축사 주변으로 물을 뿌려 온도를 낮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더욱이 영세 농가들의 자체 살수 능력이 부족한 상황인 것을 감안, 전문가들은 소방당국이 투입돼야 한다고 주문한다.
농촌진흥청 이병철 연구사는 "축사 지붕에 물만 제대로 뿌려줘도 50도에서 30도까지 낮출 수 있다. 소방관들이 나서서 한창 더울 때 시원하게 물을 뿌려주면 그나마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