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1년여간 이어진 논란 끝에 을지로·명동·강남·영등포 등 지하도상가 점포 2천700여곳의 임차권 양수·양도를 전면 금지했다.
이에 따라 상인들은 장사를 그만두더라도 권리금을 받고 임차권을 팔 수 없다. 임대계약을 중도 해지할 때는 위약금을 물어야 하며, 빈 점포는 경쟁입찰로 새 주인을 찾게 된다.
29일 서울시에 따르면 시는 지난 19일 '서울특별시 지하도상가 관리 조례 일부개정조례'를 공포한 뒤 시행에 들어갔다.
조례에는 지난 20년간 허용됐던 지하도상가 임차권 양수·양도를 금지한다는 점이 명시됐다.
서울시는 조례 개정 이유로 "임차권 양수·양도 허용 조항으로 불법권리금이 발생하고, 사회적 형평성에 배치된다는 외부의 지적과 지방자치단체의 조례로 임차권리를 양도·양수하는 것은 상위법(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에 위반된다는 행정안전부 유권해석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조치의 영향을 받을 서울의 지하상가는 총 25곳, 2천700여개 점포다.
지하도상가 권리금을 금지한 조례안은 지난해 6월 입법 예고된 뒤 8월 서울시의회에 제출됐으나 상인들의 거센 반대로 시의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서울 내 지하도상가 대부분은 민간이 도로 하부를 개발해 조성한 상가를 장기간 운영한 뒤 서울시에 되돌려주는 기부채납 형태로 생겼다. 서울시는 1996년 지하상가가 반환되자 1998년 임차권 양도 허용 조항이 포함된 지하상가 관리 조례를 제정했다.
상인들은 권리금을 이제 와서 금지하는 것은 재산권 침해라고 반발해왔다. 많게는 수억원의 권리금을 주고 입점했는데 임차권 양도가 막히면 이를 회수할 방법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여러 상인이 "비용을 들여 점포를 리모델링하고, 상가 가치를 향상한 점을 인정해 권리금 회수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는 요지의 의견을 시의회에 제출했다.
서울시는 "지하도상가는 공유재산이기에 매매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맞섰다.
권리금 금지 조례는 결국 제9대 서울시의회의 마지막 본회의가 열린 6월 29일 시의회를 통과했다.
정인대 전국지하도상가 상인연합회장은 "황당하게도 민선 6기 마지막 날 권리금 금지 조례가 단 3분 만에 시의회를 통과했다"며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의 어려움이 사회 이슈로 떠오른 상황에서 어려움을 풀어주기는커녕 영업 환경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반발했다.
상인들의 걱정은 커지고 있다.
동대문지하쇼핑센터에서 점포를 운영하는 박승균 씨는 "임차권 양도 금지는 빈손으로 털고 상가를 나가라는 것이나 다름없다"며 "점포를 나가고 싶어도 양도·양수가 안 되면 음성적으로 전대(빌린 것을 다시 다른 사람에게 빌려줌)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지하도상가에서 2000년부터 사진관을 운영해온 홍모 씨 역시 "회사를 나오면서 받은 퇴직금 전액을 권리금으로 주고 들어와 가게를 일궜는데, 권리금을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니 억울하다"며 "지금은 지하도상가 경기가 예전 같지 않아서 강남, 영등포 등 일부 상가를 제외하고는 권리금이 많지도 않다"고 말했다.
지하도상가의 임차권 양도·양수는 줄어드는 추세다. 양도·양수 건수는 2012년 360건에서 2013년 217건, 2014년 180건, 2015년 164건으로 줄었다. 지난해는 112건 있었다.
시의회도 권리금 금지에 따른 충격 최소화를 권고했다. 시의회 조례 심사보고서에는 "조례 개정안이 시행될 경우 권리금 회수가 불가능해지고, 이로 인한 금전적 손실이 불가피하다"며 "임차인의 이런 입장을 고려해 충격을 최소화하면서 양도·양수 금지를 실현할 수 있는 합리적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서울시는 기간을 못 채우고 장사를 그만둘 때 내야 하는 위약금을 없애는 방안과 대형서점·벼룩시장 유치 등으로 지하도 상권에 활력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