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간 단축이 천재지변? 제도 악용 기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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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지변 수습 위해 어쩔 수 없이 인가되는 '특별연장근로'
경영계 "일감 몰릴 때 허용해달라" vs 정부 "법 취지에 맞지 않아"

 

노동시간 단축에 반발한 경영계가 특별연장근로를 일반산업현장에 확대 적용하라고 정부에 요구하며 갈등을 빚고 있다.

하지만 법을 개정하지 않는 이상 허용될 수 없는데다, 사실상 고용 확대를 피하기 위한 '꼼수'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주 최대 52시간 노동시간 상한제 시행에 대해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는 크게 △단속·처벌을 유예하고 계도기간 6개월 부여 △현행 3개월인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확대 △특별연장근로 허용범위 확대 등 3가지 보완책을 고용노동부에 건의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우선 경총의 건의를 받아들여 6개월의 계도기간을 두기로 결정했다. 또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조정에 앞서 지난 1일부터 실태조사를 시작해 오는 10월쯤 결과가 나오는대로 하반기 안에 제도개선방안을 제시할 계획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특별연장근로 제도 확대 여부다. 특별연장근로는 자연재해, 재난 등의 사고가 발생해 이를 수습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연장노동을 해야할 때 법정노동시간을 초과해 일하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경영계는 긴급 장애가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 24시간 일해야 하는 IT 업계나 2~3년에 한 번씩 공장 전체를 멈춘 뒤 정기보수작업을 하는 화학·정유·제철, 정해진 기간 안에 업무를 마쳐야 하는 조선업·건설업 등 일부 업종을 아예 특별연장근로대상으로 포함해 달라고 주장한다.

 

특히 지난달 말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ICT 업종을 거론하면서 "서버 다운, 해킹 등 긴급 장애대응 업무도 특별 연장근로가 가능하도록 조치할 계획"이라며 "불가피한 경우 특별 연장근로를 인가받아 활용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약속해 논란에 불이 붙었다.

경총 박호균 홍보팀장은 "천재지변 수준으로 한정짓지 말고, 폭넓게 인가 사유를 적용해달라는 것"이라며 "화학·정유·제철 등의 경우 미리 정비를 잘 해야 안전사고를 예방할 수 있어 노동부도 긍정적으로 검토할 부분이라고 기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노동부는 지난 23일 관련 적용기준을 공개하면서 △자연 재해나 자연적ㆍ사회적 재난 또는 이에 준하는 사고가 발생했거나 임박했고 △이런 사고를 수습하기 위한 범위 내에서 △다른 근로자로 대체가 어려운 경우로 인가 사유를 명시했다.

대표적인 인가 가능사례로는 폭설‧폭우 등 자연재난이 사업장에 발생해 수습하거나, 감염병, 전염병 등 질병 확산을 예방·수습하기 위한 활동, 화재나 폭발, 환경오염사고 등 사회재난 등을 꼽았다.

또 서버다운 등 비상사태에 대비해 대형 포털회사나 이동통신사 등의 해킹 대응 활동 역시 인가대상에 포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특별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더라도 특별연장근로 대상 업종을 지정해달라는 경영계의 주장에는 법 취지에 맞지 않다며 난색을 표했다.

노동부 최태호 근로기준정책과장은 위의 경영계 주장에 대해 "예를 들어 화학·정유공장 재정비는 단순히 업무가 몰리는 것일 뿐, 재난에 준하는 상황은 아니라고 판단한다"며 "관계부처에도 해당되지 않는다고 전달했고, 그쪽도 이해했다"고 강조했다.

한 노동부 관계자는 "향후 특별연장근로 인가대상 확대에 대한 추가 검토 계획은 없다"며 "아주 예외적인 사항에만 적용하도록 한 법 취지에 따라 해석할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반면 근로시간 단축 입법취지는 모든 업종에 적용하는 것"이라며 "경영상의 어려움은 탄력근로제 등 다른 제도를 도입해 풀어가야 할 일"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도 단순한 경영상 어려움은 인력 충원 등 경영 개선을 통해 해결하라고 조언한다.

성공회대 경제학과 유철규 교수는 "정상적으로 예측 가능한 기업활동을 천재지변에 준하는 사태로 볼 수 없다"며 "법으로 정한 재난의 기준을 만족하지 않는다면 특별연장근로를 적용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기존의 경영체제, 노동관행을 정리하자는 것이 노동시간 단축의 취지"라며 "업무량에 따라 충분히 인력을 고용하고, 만약 어렵다면 유연근무 등 이미 적용가능한 제도를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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