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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 넘어 진정한 '광장' 꿈꾸던 최인훈, 하늘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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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년 84세 대장암 투병 중에 숨져
60년 발표 소설 '광장'으로 한국 근현대사에 한 획, 94년 '화두'로 세계관 집대성

(사진=트위터 캡처)

 

한국문학의 거목, 소설 '광장'의 최인훈 작가가 23일 향년 84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대장암 말기 진단을 받고 투병 중이던 최 작가는 이날 오전 10시46분 경기도 고양시 명지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눈을 감았다.

최 작가는 4·19 직후인 1960년 발표한 기념비적인 소설 '광장'을 남기며 한국 현대문학의 한 획을 그었다.

최 작가는 이 소설로 해방과 전쟁, 분단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꿰뚫으며 이념과 실존에 대한 치열한 성찰을 보여줬다.

주인공 이명준은 남한에서 부조리와 부패에 염증을 느끼고 북으로 떠나지만 사회주의 억압적인 체제에서도 진정한 광장을 발견하지 못한다. 결국 포로가 된 이명준이 중립국을 선택해 가는 망명길에 바다에 투신하는 비극으로 소설이 마무리된다.

한국 현대문학사의 대표 고전으로 꼽히는 이 작품은 현재까지 통쇄 204쇄를 찍었고, 고등학교 문학작품에 최다 수록됐다.

소설 '광장'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은 소설 속 주인공같았던 그의 치열했던 삶의 궤적과도 연결된다.

1934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고인은 고등학교때 한국전쟁이 발발해 월남했다.

1952년 서울대 법대에 입학해 수학하다 전쟁과 남북 분단 현실에 고뇌하며 1956년 학교를 중퇴했다.

이어 1958년 군에 입대해 통역장교로 복무했던 중 1959년 쓴 단편소설 '그레이 구락부 전말기'와 '라울전(傳)'을 '자유문학'지에 발표하며 등단했다.

이듬해 4.19혁명이 일어났으며, 7개월 뒤인 1960년 11월 '새벽'지에 '광장'을 발표하며 문단에 파장을 일으켰다.

고인은 과거 인터뷰에서 광장이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을 이렇게 밝혔다.

"4·19는 역사가 갑자기 큰 조명등 같은 것을 가지고 우리 생활을 비춰준 계기였기 때문에 덜 똑똑한 사람도 총명해질 수 있었고, 영감이나 재능이 부족했던 예술가들도 갑자기 일급 역사관이 머리에 떠오르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광장'은 내 문학적 능력보다는 시대의 '서기'로서 쓴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광장' 이후에도 '회색인'(1963), '서유기'(1966), '총독의 소리'(1967~1968) 등의 굵직한 소설을 잇따라 발표했다.

1973년 미국으로 건너가서 4년간 머문 뒤 귀국한 그는 서울예술전문대학 문창과 교수로 재직하며 정년때까지 숱한 제자들을 배출했다.

1984년 짧은 단편 소설 이후에 오래 침묵했던 그는 1994년에 20세기 전체를 조망한 대작 '화두'를 발표하며 다시한번 문단을 놀래켰다.

당시 기자간담회에서 "훗날의 한국 문학사에 작가 최인훈이 젊어서는 '광장'을, 나이 들어서는 '화두'를 썼다고 요약된대도 그다지 불만이 없겠다"고 말할 정도로 이 책에도 애정을 쏟았다.

'광장'부터 '화두'까지 남북 분단 현실과 그 사이에서 정체성을 찾으려는 인간의 실존적, 이념적인 고민과 지적인 성찰들이 최인훈의 소설을 관통하고 있다.

그는 2012년 2월 한겨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역사를 끌어안으면서 동시에 예술은 예술로서 쉽사리 변하지 않는 시원성(始原性)을 어떻게 하면 획득할 수 있나 하는 게 데뷔 이래의 화두였다"며 "결국 평생 한 가지 노래를 불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원영희씨와 아들 윤구, 딸 윤경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에 마련되었으며, 발인은 25일 오전에 문학인장으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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