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 (사진=자료사진)
논란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는 '계엄령 문건'('전시 계엄 및 합수업무 수행방안 등) 사태가 진실공방 국면으로 접어드는 모양새다. 한민구 전 국방부 장관 측이 적극적으로 해명에 나서는 등 반격에 나서면서다.
한 전 장관 측은 일부 언론에 '위수령·계엄 문건'을 작성하게 배경이 당시 촛불시위 국면에서 더불어민주당 국방위원회 간사였던 이철희 의원의 질의와 추미애 대표 등 정치권의 '군 계엄령' 의혹 제기 때문이었다고 해명했다.
다시 말해, 자발적으로 계엄령이나 위수령을 살펴본 게 아니라, 당시 야당 등 정치권의 의혹 제기에 대해 관련 내용을 살펴보는 차원에서 작성된 것이란 말이다.
또 위수령·계엄령 관련 검토가 오해를 불러올 수 있는 만큼 한 전 장관이 논의 자체를 종결시켰다는 해명도 덧붙였다.
하지만 한 전 장관의 주장과 달리 군이 계엄령 등을 처음 검토한 시점은 11월 초쯤이다. 정확한 시점은 명시되지 않았지만, 문건에 나온 시점이 '2일'을 과거 시점으로, '5일'을 미래시점으로 명시한 것으로 보아 2016년 11월 3일 혹은 4일쯤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문건에는 "국방장관은 질서유지가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대통령님께 계엄 선포를 건의"라고 명시돼 있고, "계엄령 선포시 합동수사본부를 설치" 등 구체적인 이행절차도 나와 있다.
11월 초쯤은 촛불정국이 본격적인 단계로 접어들기 이전으로, 이때는 정치권에서 군 계엄 검토 의혹을 제기하기 전이다. 민주당 추미애 대표가 '군 계엄령 검토' 의혹을 제기한 시점은 11월 18일이다.
또 추 대표의 의혹 제기나 11월 23일 이철희 의원이 질의했던 내용은 계엄령 검토 문건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당시 추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과 싸우기로 작정을 한 모양이다. 최종적으로 계엄령까지 준비한다는 말도 나온다"고 비판 섞인 의혹을 제기했을 뿐이다.
이철희 의원도 질의서에서 "계염령에 대한 국방부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그런 상황은 있지 않을 것이다'라고 답변한 바 있음. 그렇다면 위수령 선포에 대한 국방부의 입장은?"이라고만 질의 했다. 아울러 '위수령 폐기 논의 관련 연혁', '위수령 폐기 관련 국방부 입장' 등을 물었지만, 어디에도 계엄령과 관련한 구체적인 대답을 요구하는 질의는 없었다.
이철희 의원실은 "11월 23일 질의는 처음에 한 전 장관에게 보고도 안 된 것으로 안다"며 "이후 국방부의 답은 '현실과 괴리되는 등 문제가 있으므로 향후 관련 부서 의견 수렴 및 심층 깊은 연구를 통해 필요성 여부를 검토하겠음'이라는 한줄 답변만 왔다. 지금 논란이 되는 내용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었다"고 했다.
아울러 '계엄령 문건' 등이 검토 차원이라고보기에는 상당히 구체적이란 지적도 나온다.
문건에는 "위수사령관은 군 병력에 대한 발포권한을 엄격히 통제하되 폭행을 받아 부득이한 때, 다수 인원이 폭행해 진압할 수단이 없을 때 발포가 가능하다"며 군인이 폭행을 당했을 경우에는 민간인을 향한 발포가 가능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와 함께 8·20·26·30사단과 수도기계화보병사단, 1·3·9여단과 707대대 등 서울로 동원할 수 있는 부대명을 언급하면서 광화문과 여의도 일대를 과격 시위 예상지역으로 선정하는 등 세부적인 대응 계획까지 마련했다.
특히 계엄군으로 육군 탱크 200대와 장갑차 550대, 무장병력 4천8백명, 특전사 1천4백명 등을 동원해 서울을 통제하겠다는 내용은 87년 민주화 이전 유신독재나 5.18 광주민주화 운동 당시를 연상하게 할만한 내용이었다.
이철희 의원실은 "명백히 문제의 소지가 있는 내용들이 진실공방 양상으로 흐르면서 문제의 본질이 흐려지고 있는 것 같다"며 "중요한 것은 군이 정치권의 문제 제기와 별도로 촛불정국에서 계엄령을 구체적으로 검토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