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돌 산업 곳곳엔 여성혐오가… 극한직업 걸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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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씨, 여성혐오 없이는 뭘 못해요? ①] 걸그룹 편

지난해 미디어 구석구석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여성혐오를 지적하고 이를 바꿔나가자고 제안하는 한국여성민우회의 특강 '미디어씨, 여성혐오 없이는 뭘 못해요?'가 진행됐다. 올해 여름 4회 일정으로 돌아온 시즌 2에서는 걸그룹, 광고, 웹툰, BJ 업계 내 여성혐오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강연자의 동의를 구해, 관련 내용을 4일부터 연재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아이돌 산업 곳곳엔 여성혐오가… 극한직업 걸그룹
<계속>

한 해에도 걸그룹은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러블리즈, 트와이스, 페이버릿, 여자친구, 프로미스나인 (사진=노컷뉴스 자료사진)

 

3일 오후 7시 30분, 서울 마포구 합정동 100주년기념교회 교육관에서 한국여성민우회가 주최하는 '미디어씨, 여성혐오 없이는 뭘 못해요?' 시즌 2 첫 강의 '걸그룹 편'이 열렸다.

텐아시아, 아이즈 등 대중문화 전문매체에서 기자로 일했던 황효진 칼럼니스트는 아이돌 산업 내에 분명히 존재했던 여성혐오를 인지하기 전에 썼던 자신의 기사들을 돌아보는 것에서부터 강연을 시작했다.

2015년 연말결산 기사로 썼던 여자친구의 음원차트 역주행을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오늘부터 우리는'이라는 곡으로 활동할 때, 여자친구는 폭우 속에서 야외 무대를 치러야 했다. '파워청순'이라는 콘셉트로 유명한 만큼, 이 곡의 안무는 상당히 고난도였는데 미끄러운 바닥 등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도 무대를 끝까지 소화했다. 그 와중에 여러 번 넘어지고 부딪치는 모습이 나와 당시 무대 영상은 '꽈당 영상'으로 널리 퍼졌고, 여자친구를 주목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가 됐다.

황효진 씨는 "음원차트 역주행이 SNS 시대에 벌어질 수 있는 사건이라고 생각했다. (여자친구는) 원래 표방하는 콘셉트가 씩씩하니까, (비 맞고 꽈당하면서도 무대를 해내는) 이런 사건이 벌어짐으로써 현실에 있는 캐릭터가 됐다고 글을 썼다"고 말했다.

이어, "f(x)도 신인 때 비를 엄청 맞으면서 한 문대가 있고, 소녀시대 태연 씨가 아파서 휘청거리면서 무대하는 모습이 굉장히 화제가 됐다. 어린 여자가 고통받는 모습 자체를 오락으로 소비하는 한국 문화가 있는데, 그 당시에는 제가 잘 몰랐던 것 같다"고 전했다.

JYP 소속이자 미쓰에이의 멤버였던 페이는 2016년 솔로로 데뷔하면서 섹시 콘셉트를 앞세웠다. 황효진 씨는 "노래와 뮤직비디오가 포르노그래피에 가까웠는데, 이때 프로듀싱을 박진영 씨가 했다. 예전부터 비뚤어진 여성관을 갖고 있었고, 그 문제가 페이 솔로에서 확실히 드러났다고 봤는데 사실 박진영 씨 혼자만의 일이 아니었다. 한국 사회 전반, 아이돌 그룹 제작자들의 마인드나 태도였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는데 모르고 지나갔다"고 밝혔다.

◇ 왜 걸그룹에게 '극한직업'이라는 꼬리표가 붙을까

화려하고 눈부셔 보이는 아이돌 산업에서 중요한 한 축을 맡는 걸그룹이 왜 '미디어 내 여성혐오'라는 주제를 다룰 때 선택됐을까. 왜 걸그룹에게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극한직업'이라는 꼬리표가 더 자주 붙을까. 무대, 행사, 공연 등 육체노동뿐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걸그룹이기 때문에 더 극심한 감정노동을 경험하며, 때로는 보기 좋다는 이유로 꽃다발(혹은 꽃병풍)로서 동원되기 때문이다.

황효진 씨는 2016년 본격화된 걸그룹 육성 오디션 프로그램이 보여준 '걸그룹다움'과 대부분 나이가 어린 여성 연습생에게 하는 태도 등을 지적했다. '국민 프로듀서'라는 명목으로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하고 데뷔시키는 데에 시청자 참여를 적극적으로 유도했던 Mnet '프로듀스 101'과, 전작의 성공에 기대 만들어진 Mnet '아이돌 학교'에서 나타난 모습을 위주로 설명했다.

그는 "똑같이 교복을 입은 어린 소녀들이 나와서 '국민 프로듀서님' 하며 똑같이 춤추는 게 이미지적으로도 굉장히 경악스러웠다. 이런 걸 본 적이 없으니까"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투표를 핑계로 한 명 한 명을 해부하듯이 평가하고 외모 비교를 아무렇지 않게 한다. 연습 과정도 비인격적"이라고 꼬집었다.

황효진 씨는 "대부분 미성년자인 멤버들을 데리고 (인격적) 모독을 주면서 연습시킨다는 걸 보여줬다. 너무 이상하지 않나. '어떻게 이런 프로를 만들 수 있나', '어떻게 미성년자를 이렇게 대하냐' 이런 반응이 나와야 하는데, 스포츠로서 소비됐다. 금요일마다 투표하고 기사 뜨고…"라며 "이게 너무 성공해 버리니까 방송사, 기획사도 몸 사리는 게 아니라 '이렇게 해도 되는구나', '(이런 걸) 오히려 엄청 좋아하는구나'를 알게 됐던 것"이라고 말했다.

걸그룹 육성 오디션 프로그램의 붐을 일으켰던 Mnet '프로듀스 101'과 지난달 방송을 시작한 3번째 시리즈 '프로듀스 48' (사진=노컷뉴스 자료사진, '프로듀스 48' 홈페이지)

 

시청률이나 화제성 면에서는 실패했지만, '아이돌 학교' 역시 각종 논란으로 구설에 올랐다. 당시 '아이돌 학교' 교장이었던 이순재가 "소녀들의 현재뿐만 아니라 미래도 생각해야 한다. 그녀들이 어느 기간을 넘어서면 시집가서 아내와 엄마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은퇴 후에도 떳떳하게 훌륭한 아내와 어머니로 역할 하도록 뒷받침해야 한다"며 여성의 고정된 성 역할을 강조한 것이 대표적이다.

'얼굴만 예쁘면 된다'는 광고 문구, 위기 대처 능력을 보겠다며 젖은 옷을 입고 춤추게 하는 모습, 뮤직비디오에서 부르마(과거 일본식 체육복으로 매우 짧은 반바지다)를 입히는 것으로도 잡음이 있었다. 황효진 씨는 "걸그룹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배운다고 하면서 하이힐 신고 춤추는 법, 항상 예쁜 표정 짓는 법을 가르쳤다. 교가도 '예쁘니까'였다. 또,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건 다 남성이었다"고 전했다.

황효진 씨는 걸그룹이 주인공이 된 서바이벌 리얼리티쇼가 △미스코리아로 대표되던 한국의 유구한 여성 외모 평가/경쟁 전통을 보여줬고 △기획사 내부에서만 알려졌던 아이돌 육성 시스템을 대중에 공개했으며 △연습생들의 간절한 꿈을 끊임없이 강조했고 △내가 선택하고 내가 키워 내가 데뷔시킨다는 착각을 심어줬으며 △많은 연습생 사이에서 소수 인원만 데뷔시켜 연습생들을 하나의 상품으로 대우했고 △시청자와 팬에게 직접 말을 거는 연출과 구조로 거리를 좁혔으며 △교복, 부르마 등의 차림으로 소녀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분석했다.

◇ 역대 최악의 여성혐오 상황에 놓인 걸그룹

황효진 씨는 트와이스를 예로 들어 가장 사랑받는 '대중적 걸그룹'이 되기 위해 어떤 전략이 동원됐는지를 살펴보기도 했다. 멤버 전원이 센터(무대 가운데에 서는 비주얼 멤버를 이름)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고르게 예쁜 비주얼이 첫 번째였다. 그는 "예쁜 애 옆에 예쁜 애 옆에 예쁜 애라는 것을 처음부터 굉장히 밀고 나갔다"며 "한마디로 꽃다발(모두 뭉쳤을 때 예쁨이 두드러지는)이라는 걸 강조했다"고 부연했다.

이밖에도 애교에 가까운 안무, 일본 출신 멤버들(미나, 사나, 모모)의 서툰 한국말을 애교로 활용하는 것, 수동적인 여성상을 제시하고 접근을 유도하는 가사, 미성년 멤버들을 묶어 '급식이들'이라고 따로 분류한 것 등을 들어 "트와이스가 보여주는 것들에, 한국에서 여성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 반영돼 있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황효진 씨는 물론 이런 문제는 지금 시작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도, 상황이 훨씬 더 심각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걸그룹 하면 빠지지 않는 교복이 점점 더 실제와 비슷해지는 것을 보자. 황효진 씨는 "예전에는 이건 코스튬이고 하나의 판타지라는 것을 보여주는 정도에서 그쳤는데 트와이스, I.O.I, 여자친구, 러블리즈 등 완전히 교복에 가깝게 입고 나온다. 무대 위에 있는 걸그룹이 캐릭터 플레이를 하는 게 아니라, 진짜 '소녀'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서 지금이 더 심각해졌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레드벨벳 아이린은 페미니즘 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는 이유로, 에이핑크 손나은은 'Girls Can Do Anything'이 쓰인 폰 케이스가 노출됐다는 이유로, 수지는 불법촬영 피해자를 응원하고 지지하는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공격을 받았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아이린, 수지, 손나은 (사진=노컷뉴스 자료사진)

 

좀 더 가까운 거리에서 눈을 맞추거나 가벼운 수준의 스킨십이 허용되는 팬 미팅과 팬 사인회, 사적인 공간에서의 모습을 정제되지 않은 화면으로 보여주는 리얼리티 프로그램, 굉장히 사적인 장소로 여겨지는 침실을 배경으로 하는 '눕방'(누워서 하는 방송)도 걸그룹과 팬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예로 소개됐다.

실제로 걸그룹에게 적용되는 '대중성'이란 말은 많은 부분 남성들의 인정에 기댄다. 황효진 씨는 "여성들은 원래 아이돌 팬질뿐 아니라 여러 문화 산업에 돈을 쓰는데, 남성들은 그러지 않는다. 그러던 남성들이 시장 안에 유입되기 시작해 그들의 인정을 받으면 비로소 (걸그룹은) 대중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고 말했다.

육체, 감정노동을 수행하는 한편 다양한 요구를 받는 걸그룹들은 자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위험하거나 부당한 상황에 부닥치기도 한다. 최근에는 페미니즘과 관련한 이슈가 두드러졌다. 레드벨벳 아이린은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남성 팬들로부터 반발을 샀다. 에이핑크 손나은은 'Girls Can Do Anything'이라는 폰 케이스를 이유로 페미냐 메갈이냐 하는 입씨름이 오갔고 수지는 불법촬영 범죄 피해자를 위한 지지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공격받기도 했다. 이밖에도 염산 테러나 폭발물 테러 위협을 받고, 팬 사인회에서 안경 모양의 불법촬영 도구를 맞닥뜨린 경우도 있다.

황효진 씨는 "(여성혐오 문제에 관해) 말하고 고민하기 시작했지만, 여성혐오라는 건 유구했고 한국 사회 역시 굉장한 여성혐오 사회이기 때문에 걸그룹과 아이돌 사회가 거기서 떨어질 수 없다"며 "광고에서 소비하거나 예능에서 부르는 등 모두가 공짜로 소비할 수 있는 상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한국 사회의 여성혐오가 걸러지지 않고 걸그룹을 통해 전해지고 있는 것"이라고 바라봤다.

정리하면, 원래 여성혐오가 심한 한국 상황에 기획사가 여성혐오를 셀링 포인트로 잡아, 대놓고 여성혐오할 수 있게 판을 깔았고, 남성 제작자와 소비자 위주의 시장이 만들어져 현재 걸그룹들은 역대 최악의 여성혐오에 둘러싸였다는 것이다.

◇ 아이돌 산업 내 여성혐오 문제 해결, 어려운 이유

오랫동안 지속돼 온 아이돌 산업 내 여성혐오 문제는 분명 풀기 쉽지 않은 문제다. 황효진 씨는 그 이유로 △아이돌 당사자가 직접 목소리 낼 수 없고 △산업 관계자들 역시 목소리 내지 않으며 △사람을 파는 산업이라는 맹점이 있다는 점을 들었다.

황효진 씨는 "저는 분노할 단계는 지났다고 본다. 다음 단계를 모색해야 한다"며 함께 고민해 볼 질문을 제시했다. 나는 왜 어떤 점에서 그 아이돌을 좋아하는가?, 여성혐오적인 부분을 알면서도 아이돌을 소비하는 것은 옳은가?, 왜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을 성공시켜야 하는가?, 소비자의 위치에서 비판하는 것이 아이돌 산업에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는가?, 아이돌 문화는 아이돌 문화일 뿐인가?, 내가 좋아하는 걸 포기하지 않기 위해 모른 척하는 건 아닌가? 등이다.

3일 오후, 서울 마포구 합정동 100주년기념교회 교육관에서 한국여성민우회가 주최하는 '미디어씨, 여성혐오 없이는 뭘 못해요?' 시즌 2 첫 강의 '걸그룹 편'이 열렸다. 황효진 칼럼니스트가 강연하고 있는 모습 (사진=한국여성민우회 제공)

 

황효진 씨는 아이돌 산업에서 나타나는 여성혐오적 행태를 '돈이 안 되니까'가 아니라 '그게 옳지 않으니까' 비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소비자의 위치에서 팬의 권리로 접근할 게 아니라 윤리의 측면으로 봐야 한다. 내가 보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건 윤리적으로 해서는 안 될 일임을, 장사가 안돼서가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굉장히 부끄러운 것이라는 걸 회사가 알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K팝 시스템 자체가 비정상적인 것은 아닌지 질문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황효진 씨는 "마치 인간이 아닌 존재처럼 보이도록 산업이 굴러가고 있다. 페미니스트라면 동의하기 어려운 지점이 많은 산업"이라며 "평가하는 걸 왜 당연하게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어쩌면 연습생들은 연습 기간에 기획사로부터 가스라이팅(평가절하)당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 더 잘해야 하고, 예뻐야 하고, 살을 더 빼야 한다는 식으로"라고 말했다.

황효진 씨는 아이돌과 나 사이의 거리 두기, 아이돌 산업이 유도하는 대로 따라가지 않기, 여성을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미워하지 않기, 여성의 목소리에 힘 실어주기, 보이그룹의 언행이나 그들이 제시하는 남성성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비판하기, 제대로 된 비판을 꾸준히 하기, 산업 바깥에서도 윤리적 문제로 접근하기,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페미니즘 교육 등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로 제시했다.

그는 "비판적 목소리가 나오지 않으면 고민 없이 수용하는 쪽의 목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며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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