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진 준희양의 친부 고모씨와 고씨의 내연녀 이모씨, 이씨의 모친 김모씨가 전주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 뒤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사진=임상훈 기자)
"피고인 고00(37·준희양 친부)을 징역 20년, 피고인 이00(36·고씨 동거녀)을 징역 10년, 피고인 김00(62·이씨 모친)을 징역 4년에 각각 처한다."
29일 전주지법 제1형사부 열린 선고공판에서 박정제 부장판사가 주문을 읽자 고씨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이씨와 모친 김씨는 약속이라도 한듯 얼굴을 감싸쥐고 울음을 터트렸다. 참회의 눈물인지 아니면 억울함을 풀었다는 안도가 눈물로 쏟아진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 준희양의 죽음 '저 사람이 했어요.'
친부와 동거녀에게 상습 폭행을 당하고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숨진 고준희양(당시 5살) 사건.
준희양의 사망에 직접적 연관이 있는 고씨와 이씨는 수사와 재판과정에서 자신은 상습적 폭행을 하지 않았다며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친부와 동거녀의 사랑을 받지 못한 준희양은 죽어서도 그들에게는 애물단지가 돼 있었다.
1심 재판부는 준희양의 생명을 앗아간 잔혹한 폭행의 당사자가 친부 고씨라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는 직접 폭행은 하지 않았다고 봤다. 다만 준희양을 지속적으로 방임하고, 준희양의 사망 사실을 은폐하기 위한 추가 범행을 주도했다고 판단했다.
또 이씨의 친모 김씨에 대해서는 준희양 사망 뒤 은폐를 위한 치밀한 노력을 했지만 딸인 이씨의 처벌을 면하게 할 목적으로 범행에 가담한 점을 참작했다.
이씨와 친모 김씨의 눈물은 재판부의 이런 판단 뒤에 쏟아져 나왔다. 두 사람은 참회보다는 자신들의 억울함을 재판부가 풀어줬다는 점 때문에 눈물을 흘린 것으로 보인다.
생전의 준희양. (사진=자료사진)
◇ 지속된 폭행과 학대, 서서히 죽어간 준희양준희양은 고씨와 전 부인 A씨 사이에서 680g 미숙아로 태어나 3개월간 인큐베이터에서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선천적으로 호흡기가 약하고 갑상선 기능 저하증을 앓고 있어 주기적인 치료를 받아야 했다.
준희양을 양육하던 A씨가 2017년 1월 25일 전북 완주군 봉동읍 고씨의 직장 경비실에 맡기고 간 뒤부터 준희양은 고씨, 이씨와 함께 살았다. 하지만 이때부터 갑상선 기능 저하증 관련 치료를 한차례도 받지 못했다.
고씨는 밥을 먹지 않는다며, 잠을 자지 않는다며 준희양을 걷어차고 짓밟았다. 복숭아뼈 부위에 고름이 터져 나오고 허벅지까지 검게 부어오르기도 했지만 병원에 간 적은 없었다.
그해 4월 중순, 지속된 폭행으로 준희양은 얼굴을 비롯한 상반신 전반에 물집이 생겼다. 그러나 고씨 등은 방임으로 처벌받을까 두려워 병원에 가지 않았다.
4월 24일 자정을 지난 시각 고씨는 잠을 자지 않는다며 준희양의 등과 옆구리 등을 수차례 발로 차고 짓밟았고 이튿날 밤 11시 30분쯤 준희양은 호흡곤란을 일으켰다. 갈비뼈 골절로 인한 호흡곤란과 흉복부 손상에 따른 흉강내출혈 등으로 26일 오전 준희양은 숨졌다.
27일 오전 1시쯤 고씨와 이씨는 김씨와 함께 준희양의 사체를 군산시 내초동의 야산에 묻었다. 이후 범행을 숨기기 위해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는 등 자작극을 벌였다.
◇ 징역 20년, 징역 10년...중형일까
고씨와 이씨는 아동학대치사, 사체유기, 사기, 사회보장법 위반,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됐다. 김씨는 사체유기와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됐다.
재판부는 "피고인 고씨와 이씨는 어린 생명을 무참히 짓밟았고 피해아동은 피고인들과 지내는 동안 따뜻한 사랑이나 보호를 받기는커녕 인생을 제대로 꽃피워 보지도 못한 채 극도의 육체적ㆍ정신적 고통 속에서 처참하게 생을 마감했다"고 엄벌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재판부는 주범인 고씨에게 징역 20년, 공동정범인 이씨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전주지법 관계자는 "징역 20년 선고는 국내에서 그간 아동학대치사 혐의로 기소된 사건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은 양형 부당 등을 이유로 항소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전주지검 관계자는 "고씨와 이씨에게 무기징역을 구형했는데 구형보다 1심 재판부 형량이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며 "판결문을 살펴본 뒤 항소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