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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가람 "여자들의 이야기는 기록 안 하면 흘러가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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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감독 연속강좌 ⑦] '모래', '시국페미' 강유가람 감독

한국영화가 '남초화'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당장 지난해와 올해 개봉한 상업영화 포스터만 봐도, 여성이 전면에 드러나는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다. 감독도 마찬가지다. 한 해에 200편 안팎으로 제작되는 한국영화 개봉작 중 여성 감독의 작품은 10%도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도, 여성 감독들은 자신만의 개성이 담긴 작품을 만들며 관객에게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트랜스:아시아영상문화연구소는 현재 한국영화 안에서 여성 감독의 위치를 묻고, 각 감독의 작가성을 탐구하는 '여성 영화감독 초청 연속강좌'를 3월부터 6월까지 진행한다. 이 중 기사화에 동의한 감독들의 강의를 옮긴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변영주 "계속 욕망하는 사람이 결국 영화를 만든다"
② 이경미 "제가 보고 싶고, 되고 싶고, 꿈꾸는 여성을 그린다"
③ 임순례 "여성이기에 영화 만들기 어려운 환경 벗어나길"
④ 신수원 "영화로 거짓말을 할 순 없지 않나"
⑤ 경순 "세상엔 완벽하게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없다"
⑥ 김일란 "지금, 누가, 어디서 소외되고 있는지를 본다"
⑦ 강유가람 "여자들의 이야기는 기록 안 하면 흘러가 버려"
<끝>

강유가람 감독은 여성국극(창을 기본으로 하는 우리나라 고유의 음악극이다. 여성 국극은 남녀 배역 모두를 여성이 맡는다는 특징이 있다)을 소재로 한 장편 다큐멘터리 '왕자가 된 소녀들'(2011)의 조연출을 맡으면서 다큐 제작에 발을 들였다.

문화기획집단 '영희야 놀자'에 속해 있으면서 주로 다큐 작업을 해 왔다. 자기 가족 이야기를 통해 한국사회의 부동산 개발주의를 다룬 '모래'(2011), 이태원이라는 공간과 그곳을 살아냈던 여성들에 초점을 맞춘 '이태원'(2016), 국정농단 사태 때 광장으로 쏟아져나온 수많은 사람 중 페미니스트들을 조명한 '시국페미'(2017)가 대표작이다.

'모래', '이태원', '시국페미' 등의 다큐멘터리를 만든 강유가람 감독

 

12일 오후, 서울 성북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222호에서 '여성 영화감독 초청 연속강좌-강유가람 감독-도시를 보는 여성적 관찰'이 열렸다.

강유가람 감독은 "원래 영화라는 일에 약간의 환상이 있어서 작업도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왕자가 된 소녀들' 편집 과정에서 연출로 참여하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다큐의 매력에 빠졌다는 것이다.

강유가람 감독은 작업할 때 이미지보다는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할지를 중점적으로 생각했다고 밝혔다.

대치동 은마아파트를 배경으로 한국의 부동산 투기를 이야기하는 '모래'에 대해서는 "자기가 국가와 같이 성장했다고 생각하는 아버지, 가족 내에서 사적인 측면을 담당한 어머니, 착한 딸 역할을 하는 저를 통해 한국 사회의 가족주의가 드러났으면 했다"고 설명했다.

강유가람 감독은 "은마아파트라는 소재가 있긴 하지만 그걸 일구는 근간이 한국사회에 만연한 가족주의라면, 그걸 지적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부모 세대를 비판하고 가족주의를 얘기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화자이면서 동시에 그 체제를 구성해 온 공모자로서 (저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도 중요한 측면"이라며 "우리 세대도 그런 욕망이 없다고 말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이걸 인정하는 게 그때는 중요했던 것 같다"고 부연했다.

위쪽부터 '모래', '이태원' 스틸컷

 

용산 뉴타운 재개발과 기지촌 부근 여성들의 이야기 '이태원'은 등장인물의 사연보다는 이태원이라는 공간에 대한 고민이 더 먼저였다고 고백했다.

강유가람 감독은 "초반에는 인물 인터뷰를 많이 했는데 제가 상상했던 그런 답변들이 잘 나오진 않았다. 어떤 상에 맞추려다 보니 인물을 잘못된 방식으로 구획했던 것 같다"며 "주제에 맞춰 얘기를 담는 게 아니라 상황에 맞추다 보니 구성이 느슨해졌다"고 전했다.

강유가람 감독은 '이태원의 여성들'을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이 이태원을 스쳐 지나가는 보통의 젊은이와 별로 다르지 않았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출연한 분들에게는 저 역시 불편한 존재일 수도 있다. 그런 제 위치성이 그분들을 통해 드러났으면 했다"고 설명했다.

광장에 나왔던 다양한 목소리를 잡아내는 프로젝트 안에 있었던 '시국페미'는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도 중요하니 한 번 해 보지 않겠냐는 김일란 감독의 제안으로 시작된 작품이었다. 강유가람 감독은 젊은 페미니스트들의 활동과 함께 그들의 역사성을 함께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고.

강유가람 감독은 "이때의 경험을 이분들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이분들의 목소리로 당시 상황을 기록하면 좋지 않을까 했다"며 "광장에 대한 경험,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한 계기, 이전 세대의 페미니즘 운동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 3꼭지 정도로 한 분당 2~3시간 동안 인터뷰했다"고 말했다.

국정농단 사태 때 광장으로 나와 목소리 낸 젊은 페미니스트들을 담은 '시국페미' 스틸컷

 

그는 페미니스트들의 활동을 기록한 작품이 거의 없다는 반응을 봤다며,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페미니스트 활동을 주제로 한 다큐를 기획 중인데 마찬가지로 기록물이 너무 없어 고민이라고 밝혔다.

강유가람 감독은 "본인이 기록하는 게 제일 좋긴 한데, 여자들의 이야기는 누가 기록하지 않으면, 어떻게든 남겨놓지 않으면 흩어지거나 흘러가 버리는구나 하는 생각을 이것('시국페미') 작업하면서 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강유가람 감독은 "광장은 여성이 어떤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지를 정확하게 드러낸 공간이 아닐까"라며 "(여성혐오 가사를 선보인 뮤지션의) 공연을 취소시키고, 차별 발언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박근혜 퇴진'과 비교하면 시시해 보일 수 있지만, 그런 감수성을 키워나가는 과정이 중요했던 것 같다"고 바라봤다.

여성학을 공부한 것이 다큐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묻자 강유가람 감독은 "작업을 하는 데 있어서 근본적인 가치관, 시각, 지향에 정말 큰 영향을 미치긴 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하나의 이야기를 결론 내서 보기보다 미세한 결을 보고, 다면적인 부분을 보게 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며 "(영화 작업에서) 여성주의적인 방법과 맥락이 더 넓어졌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12일 오후, 서울 성북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222호에서 '여성 영화감독 초청 연속강좌-강유가람 감독-도시를 보는 여성적 관찰'이 열렸다. 강유가람 감독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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