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자신의 자택 인근에서 대법원장 재임 시절 법원행정처의‘박근혜 청와대와 재판 거래 의혹' 등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양승태 사법부 시절 법원행정처가,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판사들을 사찰한 정황이 담긴 문건이 공개됐다. 사실상 '사법부 블랙리스트'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발표한 특별조사단의 조사결과가 무색해졌다.
법원행정처가 5일 공개한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파일 98개에는, 당시 사법부 정책에 반하는 글을 법원 내부망(코트넷)에 올리거나 언론에 기고한 판사들에 대한 대응문건들이 다수 포함됐다.
'차성안 판사 게시글 관련 동향과 대응방안' 문건에 따르면, 2015년 8월18일 행정처는 상고법원에 반대하는 취지의 글을 코트넷에 올린 차성안(41) 판사에 대한 '대응방안'을 단계적으로 적시했다.
3단계로 이뤄진 대응방안에는 '논리적 설득'을 시작으로 '전선(戰線)이동'을 해야한다는 등의 표현이 등장한다. 차 판사의 성격은 물론 근무 행태까지 구체적으로 상부에 보고됐다.
차 판사가 상고법원에 반대하는 취지의 글을 한 주간지에 기고하자 행정처는 그의 페이스북과 기사 등을 분석해 '그의 문제제기는 계속 될 것'이라며 그 근거로 차 판사의 연수원 활동경력, 학창시절 생활 등을 들었다.
이듬해 행정처는 차 판사에 대한 재산관계 및 친인척관계 등과 관련한 특이사항도 검토해 상부에 보고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로비. (사진=이한형 기자)
행정처는 또 주로 대법관 구성 등에 관한 비판 글을 올린 송모 판사에 대해 '법원 내 사무분담 하나하나에도 의혹 제기', '이슈 발생 시 주변 법관들을 선동하는 기질 다분'이라고 적어 보고했다.
이외에도 '문제 법관에 대한 시그널링 및 감독 방안' 문건을 보면, 당시 행정처는 판사들의 근무행태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빅데이터'를 활용해 이들을 개별적·예외적으로 심층 점검하는 방안도 검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판사들의 인터넷 사용시간, 판결문 작성 투입 시간, 판결문 개수와 분량, 증인과 기일의 수, 법정변론 진행 녹음파일 등을 빅데이터로 활용하려고 했다.
또 개선의 여지가 없는 문제 판사에 대해선 '징계를 대신한 문책 목적' 대신 '가급적 직무 태만 행위 내지 비위 행위로부터 전보 등 인사 조치를 정당화할 객관적·합리적 사유를 추출해 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적시하기도 했다.
이외에도 행정처는 2016년 3월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에 당시 행정처에 비판적인 박모 판사가 출마할 것으로 예상되자 대항마로 정모 판사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 필요성을 피력한 것으로 나타났다.
앞서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특별조사단은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법관들에 대한 성향이나 동향을 파악한 문서가 발견됐지만, 이들에게 인사 불이익을 줬다고 인정할 자료는 없었다"며 사실상 '셀프조사'의 한계를 드러내 비난을 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