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비판에 성적 모욕"…'미투'가 남긴 과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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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영진, 김기덕 사건 언급 후 SNS 통해 지속적 피해 당해
"문화예술계 페미니즘 연대에는 많은 담대함 요구"

왼쪽부터 김선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 이지혜 영화 저널리스트, 원민경 법무법인 원 변호사, 배우 이영진,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신희주 여성문화예술연합. (사진=유원정 기자)

 

지난해 미국 할리우드에서는 거물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추행으로 '미투' 운동이 촉발됐다. 한국어로 풀이하면 '나도 그렇다'는 이 사회 운동은 성추행 및 성폭행 경험을 공유하고 피해 여성들 간의 연대를 촉구했다. 이 해시태그 운동이 SNS를 타고 미국 각계를 뒤흔드는 동안, 한국은 어느 때보다 잠잠했다.

그러다 올해 1월,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부 성추행 폭로로 인해 국내에도 거센 '미투'의 폭풍이 불어닥쳤다. '미투'는 그 동안 한국 사회에서 무엇보다 공고했던 성권력 카르텔의 민낯을 들춰냈다. 동시 다발적으로, 산발적으로 각계에서 일어난 이 같은 성폭력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성별 위계와 권력에 의해 일어났음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미투'는 결과적으로 한국 사회에 성평등한 의식변화와 제도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도제 문화로 온갖 성폭력이 묵인되던 문화예술계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4일 서울 마포구 메가박스 신촌에서 열린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쟁점 토크 2 - 여성가족부×SWIFF(서울국제여성영화제) 토크콘서트: #WITHYOU'에는 여성가족부 정현백 장관, 페미니스타로 선정된 배우 이영진, 법무법인 원 원민경 변호사 등이 참석해 '미투' 운동과 이를 지지하는 '위드유' 운동 그리고 성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방안을 토론했다.

◇ "김기덕 감독 비판하자 SNS 메시지로 인격 모독"

영화계에서 오래 일해 온 이영진은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 거장으로 인정 받은 김기덕 감독의 성폭력 의혹에 대해 "터질 게 터졌다"는 솔직한 평가를 내려 주목을 받았다.

이영진은 "배우 인생 처음으로 내 얼굴이 뉴스에 대문짝만하게 나오는데 심정은 참담했다"면서 "내게는 영화계가 직장이고 일터다. 인권을 보호받으면서 내 능력을 발휘해야 하는 현장인데 알게 모르게 들리는 소문, 그러나 확인이 어려운 것들이 많이 있었다. 그런 것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았을 때는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미투' 운동 전, 각계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 있었을 때 영화계 내 성폭력은 많이 올라오지 않았다. 외부 사람들은 다른데 비해서 깨끗한 환경이라 그런 것이 아닐까 이야기했지만 오히려 폐쇄성이 짙어서 목소리를 내기 힘들었던 것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페미니즘 운동이 활발한 이 시기에 누군가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그 이후에는 더 내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피해자분들에게 지지하는 목소리를 보내고 싶었다"고 자신이 피해자를 지지한 이유를 밝혔다.

이영진은 이와 동시에 "지금도 드러나지 않은 목소리가 더 많다고 생각한다. 그 잠겨 있는 목소리들이 견고했던 가부장제와 성폭력에 균열을 낼 때, 그 균열 사이로 빛이 환하게 들어와 세상을 비출 때 우리 사회 성평등이 이뤄질 것이고, 지금은 시작점에 놓였다고 생각한다"고 '미투'로 가능했던 연대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문화예술계 여성들은 쉽게 여성주의를 지지한다는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 성폭행 피해 사실을 폭로한 여성을 지지했다고, 여성 청년들의 현실을 담아낸 베스트셀러 '82년생 김지영'을 읽었다고 비난 당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이영진은 자신의 '터질 게 터졌다'는 발언 이후를 자세히 밝히며 "내가 처음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렇게까지 분노로 피드백을 받아야 발언인가 생각한다"라면서 "내가 당연하다고 생각한 부분을 발언했을 뿐인데 이 파장이나 피드백이 어마어마하게 오니까 그 동안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었나 하는 생각을 하며 자기 검열을 하게 되더라. 초반에는 정말 힘들었다. SNS 개인 메시지로 욕설이나 비속어는 말할 것도 없고 남성들의 성기 사진이 너무 많이 왔다"고 힘겨웠던 당시를 고백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용기를 준 것은 같은 여성들의 지지와 연대 덕분이었다. 그럼에도 아직 여성 연예인들에게 페미니즘 혹은 성폭력 피해자들을 지지하는 발언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과제로 남아 있다.

이영진은 "불특정다수에게 이렇게 받는 것이다보니 처음에는 길을 걸으면서도 사람들이 무서웠다. 누가 나한테 이 글을 보낸 건지 알 수 없었으니까. 그러나 페미니즘 운동이 내게 힘을 실어주면서 내가 틀린 게 아니고 옳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도 배워가고 있는 중이지만 여성 연예인들에게 페미니즘을 지지하고 동참한다는 발언을 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담대함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 장자연 사건 이후 9년…문화예술계 '성차별' 현실

원 변호사는 원하지 않는 성상납을 강요 당했던 배우 고(故) 장자연 사건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시점부터 문화예술계 여성 인권은 전혀 나아갈 수 없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2009년 고(故) 장자연 씨 사건은 보이지 않는 권력 카르텔로 묻혀 버렸다. 그 사건이 수면 위에서 수사되지 않고, 가해자들이 제대로 처벌 받지 않고, 거기에 따른 대책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은 가운데 9년이 흘렀고 그 사이 문화예술계 곳곳에 더 많은 피해자가 양산됐다. 그래서 이 지경까지 왔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금 이 사건이 새롭게 수면 위로 떠올랐고, 국민과 언론이 관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이미 균열은 시작됐다. 더 성평등한 세상으로 가는 시작점에 우리가 서있다고 생각한다. 김기덕 감독이 성폭력 사건 무혐의 결정이 나면서 피해자에 대한 무고죄 고소로 공격을 개시했는데 여전히 가해자들은 반성하지 않고, 동일한 행태를 갖는다는 생각이다. 마음을 굳건히 먹고 같이 싸워나가야겠다고 다짐했다"고 각오를 이야기했다.

여성가족부는 사회 각계의 대대적인 '미투' 운동 이후 불법촬영물을 포함한 모든 성범죄에 두 가지 방침을 세웠다. 가해자를 엄벌하고, 2차 피해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여성가족부는 정부 각 부처와 협의해 특별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언론에 의한 2차 피해 역시 심각하다고 판단해 2014년 이후 성범죄 관련 보도에 새로운 지침을 넣은 보도수첩을 발행했고, 불법촬영물의 경우, 신고지원센터를 바탕으로 영상물의 조속한 삭제 및 가해자 구상권 청구, 치료 및 상담 서비스, 법률 서비스 비용 지원 등에 나서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기관 내 일어난 성폭력 사건에 대해 관련 기관장에 직접적으로 책임을 지게 하는 강도 높은 대책들이 함께 준비돼 있다. 그러나 문화예술계는 특정 기관이 아닌 다양한 형태의 종사자들이 있기 때문에 다른 차원의 대책이 강구돼야 한다는 의견이다.

정 장관은 "기관의 경우에는 단체기관장의 책임을 묻고, 그것이 징역형까지도 가능하다는 성희롱 및 성폭력 예방 대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문화예술계는 기관이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다양한, 다른 방식의 압력을 가해야 한다. 문제가 있는 기획사나 단체의 경우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원하는 진흥기금 심사에서 감점을 주거나 배제하는 그런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다른 부분에서 발생하는 2차 피해는 주변에서 함께 적극적으로 대응해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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