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 리선권 단장님 유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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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 (사진=사진공동취재단)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기자 선생들은 (회담이)잘 안되길 바라오?"

지난 1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고위급회담의 북측 단장인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은 공동취재단 기자의 질문에 상당히 불쾌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당시 질문 내용은 이랬습니다.

"엄중한 사태로 인해서 회담이 무기한 연기됐었는데 그 엄중한 사태는 해결이 됐다고 보십니까…오늘 회담은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남북고위급회담은 원래 북한의 제안으로 5월 16일에 열릴 예정이었는데, 북한에서 느닷없이 회담 당일 새벽 0시 30분쯤 한미연합공중훈련인 '맥스 선더'를 문제 삼아 일방적으로 취소를 통보한 이후 무기한 연기됐다가 어렵사리 다시 재개된 것이었습니다.

남북 정상이 서명한 '4·27 판문점 선언'의 합의사항을 순조롭게 이행하기 위한 첫 번째 당국 회담이라는 점에서 기대가 컸기 때문에 북한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정부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고 국민들도 크게 실망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인 17일에 리선권 위원장은 조선중앙통신사 기자와의 일문일답 형식을 빌려 "북남 고위급 회담을 중지시킨 엄중한 사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남조선의 현 정권과 다시 마주앉는 일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남북회담 중단까지 경고하고 나섰습니다.

이 때문에 '엄중한 사태'를 이유로 남측을 비판했다가 다시 회담에 임하는 리선권 위원장의 입장은 언론의 주요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우여곡절을 겪었던 고위급 회담 재개 배경과 회담 전망을 북측 수석대표에게 질문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공동취재단의 의무이자 권리이기도 할 것입니다.

물론 리선권 단장 입장에서는 불편하고 껄끄러운 질문임에는 분명합니다.

또 "역사적인 북남 수뇌 상봉도 열리고 판문점 선언도 채택된 마당에 질문도 달라져야 한다"거나 "기자 선생들이 정의와 진리의 대변자들이고 여론을 선도하는 선각자들"이라며 남북 화해 협력 시대에 필요한 언론의 역할을 강조하는 리선권 단장의 지적에는 동의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지난 1일 오전 판문점 남측 평회의집 에서 열린 남북고위급 회담에 참석한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군사분계선을넘어 남측으로 들어오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하지만 그렇다고 "불신을 조장시키고 오도할 수 있는 질문"이라던가 "어디 소속이냐"고 쏘아 붙이면서 취재기자들을 마치 회담 방해꾼으로 치부하는 듯한 그의 반응은 북한의 대표적인 대남 전략통이자 회담 베테랑의 답변이라고 보기는 힘들었습니다.

리선권 단장의 답변은 우선 남북고위급 회담 취소의 책임을 전적으로 남측에 돌리려는 책임 전가성 발언이라는 지적이 제기됐습니다.

게다가 "손석희 사장은 잘하고 있는데…" 라는 답변 역시 신망이 두터운 남측의 대표적인 저널리스트를 '남남갈등'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어 버렸다는 점에서 매우 부적절했습니다.

북한은 지난 1월에도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이 이끄는 예술단 사전점검단의 파견을 연기한다고 한밤중에 통보했고, 2월에 금강산에서 진행하기로 했던 남북 합동문화공연도 언론 보도 내용 등을 문제 삼아 일방적으로 취소했습니다. 남북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실무회담도 하루 전에 갑자기 연기해버렸습니다.

북한과 달리 남한 정부는 언론의 자유로운 취재·보도 활동을 제한할 수 없고,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 공사의 기자회견을 간섭할 수 없다는 것도, 탈북자 단체들이 은밀하게 대북전단지를 날려 보내는 것을 일일이 다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대남 전문가인 리선권 단장은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약속된 일정을 일방적으로 취소하거나 연기해버리는 태도는 리선권 단장이 이번 고위급회담에서 특별히 강조했던 '신뢰'와 '배려', '역지사지' 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물론 우리 정부도 군사적 신뢰조치를 취하기로 합의한 마당에 북한 당국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전략자산 동원 한미군사훈련을 부각시키거나 북한이 격하게 반응하고 나선 배경을 잘 살펴보기도 전에 '유감' 성명부터 발표하면서 고위급회담 무기한 연기 사태를 악화시켰던 측면이 있습니다.

여종업원 집단탈북 문제와 관련해 '기획탈북' 의혹이 제기되고 있음에도 문재인 정부가 집권 초기 대응 잘못으로 딜레마에 빠져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지적받아 마땅합니다.

좌측부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자료사진/사진공동취재단)

 

세계사에 기록될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있고 남북미 '종전선언'까지 언급되고 있는 패러다임 전환 국면에서 남북한 당국 모두 기선잡기 싸움이나 벼랑끝 전술로 일관했던 과거 대립의 관성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고, 이는 언론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신뢰하고 배려하고, 공동으로 노력하는 초심을 잃지 말자. 북도 그렇고 남도 그렇고 여기 모이신 기자 선생들도 다 힘을 합쳐서 모든 동포들에게 풍요한 가을을 안겨주는 심정에서 열심히 일하자는 것을 당부드린다"는 리선권 단장의 '종결발언'에 조명균 통일부 장관도 "더 보탤 얘기가 없을 정도로 좋은 의미가 담긴 말씀이었다"고 화답했습니다.

남북간에는 앞으로 장성급 군사회담과 체육회담, 적십자회담 등 중요한 일정들이 줄줄이 예고돼있습니다. 말뿐이 아닌 '신뢰'와 '배려'로 살얼음판이 아니라 절대 깨지지 않는 '되돌릴 수 없는' 남북 화해와 협력의 시대가 열리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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