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폐지했던 '성장장려금'을 징수해 갑질논란을 일으킨 신세계푸드가 식자재를 납품해온 협력업체들과 사전 상의 없이 '저가 납품계약'을 맺는 바람에 최악의 경우 '2년전 가격'으로 농수산물 등 식자재를 납품하며 손실을 감수해야할 처지에 놓이게 됐다.
(관련기사: 5월 30일 CBS노컷뉴스: '신세계푸드, 폐지했던 '성장장려금 징수' 갑질 논란')신세계푸드는 '협력업체들과 가격협상을 벌이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물가상승도 고려하지 않은 가격으로 계약을 맺은 뒤라서 영세업체들은 '가격부담 떠넘기기'를 우려하고 있다.
서울 성모병원과 의정부 등 수도권 성모병원 계열사들의 식음료 공급은 'M푸드'란 업체가 대행하고 있다. 이 업체는 2년전부터 신세계푸드로부터 병원이나 가톨릭대학 등에 공급할 음식물 재료를 계약, 공급받고 있다. 자체 식재료 조달망을 갖추지 못한 신세계푸드는 700여개 협력업체로부터 무배추와 건고추, 쌀, 고등어 같은 식재료를 납품받는다.
신세계푸드와 M푸드 사이에 맺어진 식재료 공급계약(2년계약)이 만료된 지난달말 신세계푸드와 협력업체에게는 각각 커다란 고민거리가 생겼다. 신세계푸드는 수도권 성모병원들에 식재료를 공급하는 사업을 유지시켜야 했고, 사업의 동반자인 협력업체들은 재계약이 어떤 가격에 성사될 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계약만료 하루전인 5월 30일까지도 협력사엔 명확한 지침이 전달되지 않은 상태에서 신세계푸드-M푸드간 공급계약은 동일한 공급가격(2년전 가격)에 1년 연장으로 결정됐다. 신세계푸드 관계자는 30일 "M푸드와 동일한 가격으로 계약을 1년 연장하기로 했다"며 "매입원가 변화에 대해서는 협의해나가자고 했다"고 말했다.
병원 식사는 하루도 거를 수 없고 협력사들은 2년전 가격으로 식재료를 계속 공급하면서도 신세계푸드에다 항의도 못한다.
모 협력업체 관계자는 31일 "신세계가 협의한다고는 하지만 이미 계약을 2년전 가격으로 합의한 마당에 약자인 협력업체들이 어떻게 입맛에 맞는 가격까지 올려달라고 하겠느냐"고 말했다. 그는 "계약은 두 회사가 맺는다 하더라도 공급가격과 관련해서는 미리 지침이라도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다른 협력사 관계자는 "협상을 한다고 하지만 예를들어 5개 중 2개는 올려주고 나머지 3개품목은 과거 가격으로 동결해서 가려고 할 것"이라며 "계약이란게 논란이 없으려면 원계약에 맞춰서 미리 마무리짓고 가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협력사들이 '갑'을 상대로 좋은 협상을 이끌어내기 어려운 사정을 얘기한 것이다.
신세계푸드의 일부 협력사에 따르면, 신세계푸드 내부 직원들조차 농수산물을 2년전 가격에 납품하기로 한 것과 관련해 "(자신들이)협력업체를 설득할 명분이 없다"며 회사의 처사에 불만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농산물은 수급과 작황에 따라 가격 변동폭이 큰 점을 감안하더라도 2년전 가격과 현재 가격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발생한다. CBS가 농수산물 유통정보 '카미스'자료를 분석했더니 주요 농수산물 가격이 지난 2년사이 크게 올랐다. 상품(上品) 도매가격 기준으로 쌀 23%, 고등어 23%, 무 56% 올랐다. 물론 배추(-40%) 처럼 내리는 품목도 있지만 대부분 오른다.
2년 전 가격의 차액만큼을 누군가는 감수를 해야 납품가격을 맞춰낼 수 있는 구조다. 신세계푸드 관계자는 "손실 전체를 다 안고갈 수는 없으므로 나눠부담해야 한다"고 밝혔지만 약자인 영세업체들은 선택의 여지가 좁아 더 많은 가격부담을 지게될 걸 우려한다.
시장경제의 가격은 경쟁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지만 계약과정에서 지켜져야할 최소한의 룰이 유지될 때 경쟁체제가 유지된다. 반대의 경우 약육강식의 정글이 되고마는 것이다. 정부가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해 거래건전성을 유지하고자 하는 것도 약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