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나는 이 절망 속에서 너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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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인터뷰] 연극 '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 송경화 연출

2015년부터 세월호를 기억하는 동시에 현재진행형의 참사로 인식하고자 기획초청공연을 해온 '혜화동1번지 6기 동인'이 올해는 세월호와 관련 없이 쓰인 고전을 원작으로 10주간 세월호를 이야기한다. 이 역시 세월호를 기억하고 사유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세월호로 우리의 세계가 재구성되었듯 이전 창작물 역시 '세월호'라는 관점을 통해 재구성하는 시도이다. 공연을 마친 뒤 연출에게 직접 들은 뒷이야기들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세월호는 '그곳'에 있는데, 달라진 건 당신일지도" - 연극 '벡사시옹+10층' 윤혜진 연출
② "'세월호'는 기억하면서, '남은 자'는 잊지 않았나" - 연극 '행복한 날들' 송정안 연출
③ "그래도 사람이 사람을 먹는 일은 그만두어야" - 연극 '광인일기' 김수정 연출
④ "계속 시도해야죠, 닿지 않고 노력만 남을지라도" - 연극 '키스' 신재훈 연출
⑤ "그럼에도 나는 이 절망 속에서 너를 희망한다" - 연극 ' 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 송경화 연출
(계속)

연극 '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 중. (제공 사진)

 

제2의 사무엘 뷔케트로 불리는 프랑스 출신의 배우 겸 희곡작가 베르나르-마리 콜테스(1948~1989)의 작품은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흔히들 '추상화' 같다고 표현한다.

(모든 작품에게 있는 요소이지만) 그의 작품은 유독 해석이 열려 있다. 선명하지 않아 다양하게 보이는 탓이다.

그가 쓴 1977년 발표한 소설 <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은 '나'라고 하는 주인공의 독백으로 시작해 독백으로 끝난다.

'나'는 '너'에게 쉬지 않고 말하는데, 그 이야기 안에는 염세·분노·미안함·좌절 등의 감정이 담겼다.

'나'가 어떤 이유로 이 사회에 분노하는지를 안다면 좋지만, 사실 그건 중요치 않다. 중요한 건 '나'가 '너'와 함께 머물 안식처를 찾기 위해 그 밤거리를 떠돈다는 점이다.

또한 '나'는 그 안식처를 '방', '숲', '풀밭' 등 다양하게 부르지만 이름 역시 중요치 않고, 그 안식처가 실재하는지도 중요치 않다.

중요한 것은 더러운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그 밤, 지독한 절망 속에 있는 '나'가 그럼에도 '너'와 함께하기 위해 방을 찾으려고 시도한다는 용기 자체이다.

연극 '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 중. (제공 사진)

 

연극 '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 공연 후 만난 송경화 연출은 자신과 이 작품의 '나'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어, 선택했다고 했다.

그는 이번 연극이 세월호를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것에 대한 '변명', '참회록'과 같은 것이라고도 했다.

"세월호를 마주하고자 하면서도 한 번도 제대로 마주하지 않았다는 자괴감,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고, 앞으로도 바꿀 수 없을지 모른다는 절망감, 구조의 모순을 인식하면서도 구조에 순응한 채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비겁함을 견딜 수 없어 지껄이는 우스갯소리에 불과하다." (연출의 글 中)

보통 10분 전후로 끝나는 연출과의 인터뷰가, 송 연출과는 40분 넘게 걸렸다. 그는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추상화 같은 죄의식(?)을 선명하게 전달하기 위해 표현을 고치고 다듬기를 반복했다. 그런 그를 보면서 기자는 고 민영규 시인의 '떨리는 지남철'이 떠올랐다.

"북극이 가리키는 / 지남철은 / 무엇이 두려운지 / 항상 바늘 끝을 떨고 있다 / 야윈 바늘 끝이 떨고 있는 한 / 그 지남철은 / 자기에게 지니워진 / 사명을 완수하는 의사를 / 잊지 않고 있음이 분명하여 / 그 바늘이 가리키는 방향을 / 믿어도 좋다 / 만일 그 바늘 끝이 / 불안한 전율을 멈추고 / 어느 한 쪽에 고정 될 때 / 우리는 그것을 버려야 한다"

세월호 참사 문제에서 "할 만큼 했어", "이 정도면 됐으니 그만하자"고 말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 것이며, 있다 한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역설적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거나, 별로 한 게 없는 사람일 것이다.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만큼 행동하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는 송 연출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절망 속에서 너를 희망한다"며 다시 용기를 낸다고 했다.

그 안식처가 무엇인지도, 찾으려 한다고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가만히 있지 않고 뭐라도 하겠다는 의지이자 행동인 것이다.

"사람의 발을 잡는 것은 절망이 아니라 '체념'이고, 사람을 앞으로 가게 하는 것은 희망이 아니라 '의지'이다." (미나가와 료우지 作 <암즈>(ARMS) 中)

다음은 송경화 연출과 1문 1답.

송경화 연출. (제공 사진)

 

▶ 보면서 쉽지 않다는 생각 들었다. 원작과 작가에 대한 설명 부탁한다.
= 작가는 베르나르-마리 콜테스(1948~1989)로, 41살 나이로 요절한 프랑스 배우이자 희곡작가이다. <로베르토 주코="">, <목화밭의 고독="" 속에서=""> 등의 작품으로 제2의 사뮈엘 베케트로 불린다. 원작은 그가 1977년 발표한 작품 <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이다. 지독히 외로운 '나'(화자)가 '너'(친구, 마마)를 만나기 위해 어떤 길과 길모퉁이에서 쉬지 않고 말을 거는 작품이다.

▶ 콜테스의 <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을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
= 원작은 예전에 읽은 적이 있고, 이번 기획초청공연 <세월호 2018="">을 위해 작품을 찾다가 이게 다시 연상됐다. 이유는 우리가 세월호를 마주하고 만나려고 애쓰고 있지만, 세월호를 마주할 수 없는 것 같은 기분이 언제나 들어서이다.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우리는 참사 이후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잊지 말아야 한다'라고 말 하지만 결국엔 SNS에 좋아요를 누르는 정도의 노력만 하고 있지 않나. 좀 더 적극적인 행동으로 광화문광장, 팽목항, 기억교실 등을 방문했지만 그 또한 나의 죄책감 혹은 부채감을 덜기 위한 행위는 아니었을까 싶었다. 내가 정말 세월호를 만난 건지, 만나고 있는 건지, 만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더라. 그런 면에서 나를 비롯한 우리가, 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의 '나'와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극 '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 중. (사진=유연석 기자/노컷뉴스)

 

▶ 공감하는 고민이다. '나'가 '너'와 함께 가고 싶어하는 그 '방'은 대체 무엇일까. 결국 찾지 못한 채 끝나는데.
= '나'가 말하는 방은 '너'와 함께 아무 걱정도 불안도 없이 쉴 수 있는 곳이다. 작품에서는 방, 숲, 풀밭, 들판 등이 동의어로 쓰인다. 그곳을 찾은 건지 아닌지는 알 수 없다. 그곳을 찾기 위해, 만나기 위해 용기를 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내가 머물수 있는 방을 찾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노력하겠다는 고백이고, 그것이 너를 만나기 직전의 그 순간이다. 그 방이 없을지언정 없다고 생각하면 살 수 없지 않을까. 없다 하더라도 내게는 있어야만 한다. 있을 것이라고 해야지 살 수 있을 것 같다. 너무 큰 절망 때문에 한 줄기라도 희망을 놓지 않아야 한다.

▶ 원작은 1인 독백인데, 연극에서는 4인이 등장한다.
= 한 사람의 언어보다 여러 사람의 말투와 소리로 들릴 때 관객이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다양해진다고 봤다. 이 작품이 누군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 광화문 광장을 지나치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캐스팅했다. 배우들에게도 광화문 뒷골목을 맴도는, 스쳐지나가는 우리들이기를 요구했다.

연극 '숲에 이르기 직전의 밤' 중. (제공 사진)

 

▶ '나'는 이방인인가.
= '나'는 이 구조 안에서 스스로 이방인으로 정체성을 삼는다. 이방인이 되고자 일을 그만두고, 이 구조 안에서 벗어나려 했을 때 고립감이 찾아오고, 어느 누구도 만날 수 없다. 이 구조를 벗어나면 누군가와도 진짜 대화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 그런 '나'가 대화하고자 하는 '너' 역시 다양하게 해석될 것 같다. 연극에서는 친구, 형제, 조합의 동지, 직장 동료 등으로 보이는데, 어느 순간 마마로도 나온다. 마마는 뭘까.
= 저작권의 소유주가 공연 허가 과정에서 원작을 그대로 살릴 것을 전제조건으로 요청했다. 마마는 이방인이 된 나가 어느 다리위에서 우연히 만나 사랑에 빠진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다. 쉽게 말해서 마마는 나가 그토록 찾고 있던 '너'다. 간절히 마주하고자 하는 '너'. <세월호 2018="">에서 우리는 '너'를 세월호 참사 희생자 분들이라고 생각하며 작품을 만들었다. 마마와 다리에서 만나는 장면은 팽목항의 어느 하루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꿈 속일 수도 있고 생각했고, 나에게 마마는 미수습자분들을 연상케했다. 내가 관계하고자 하는 모든 '너'는 '마마'이며, '마마'는 모든 너다.

▶ 세월호 참사 4주기를 맞아,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 어쩌면 이 작품은 내가 스스로 세월호 참사 희생자분들에게 방을 찾지 못한 이유, 그래서 더 다가가지 못한 이유에 대해 너무 미안해서 끝없이 변명을 하기 위한 건지도 모르겠다. 어떤 방이고 풀밭이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방에 이르러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작품 속에 이런 말이 나온다. "용기를 내면 잠시라도 머물수 있는 방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오늘은 나는 용기를 내겠어. 지금은 비에 젖어 형편없는 모습이지만." 용기를 내야겠다.

※ 5주차 공연 '키스'는 20일부로 공연이 끝났다. 6주차인 이번 주에는 '말테'(링크)가 5월 24일부터 27일까지 대학로 혜화동1번지에서 공연한다. 1만 원~1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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