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4일 종영한 SBS 월화드라마 '키스 먼저 할까요'에서 안순진 역을 맡은 배우 김선아 (사진=굳피플 제공)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카페에서 '키스 먼저 할까요' 종영 기념 배우 김선아의 라운드 인터뷰가 진행됐다. 바쁜 일정 때문에 그는 인터뷰 당시에도 마지막 회 방송을 아직 못 본 상태였다.
드라마가 끝난 지 3일밖에 지나지 않은 때여서 그런지, 본인이 맡은 안순진 캐릭터는 물론 작품 자체에 대해 여운이 짙게 남아 보였다. 자신의 마음을 두드렸던 대사와 장면을 설명할 때에는 금세 들뜬 목소리가 됐고, 눈앞에 그림이 그려지듯 자세히 묘사했다.
"그림자가 못돼쳐먹었다", "잘 어울려요, 이 말이 이렇게 든든할 줄 몰랐다" 등 배유미 작가의 서정적인 대사에 매료된 듯했던 김선아. 신기하게도 그 시적인 표현이 김선아의 입을 통해서도 나왔다. 작품에 흠뻑 빠져있던 주인공이 으레 그렇듯.
(노컷 인터뷰 ① '키스 먼저' 김선아 "사람한테 제일 힘든 건 외로움")◇ "사랑해 볼까 하는데"… 감동하기까지 했던 대사들
평범해 보이지만 '어른 멜로'의 깊이 있는 감성이 배어있는 대사들이 '키스 먼저 할까요'를 채웠다. 김선아는 '나는 졌다. 당신 그림자가 이렇게 못돼쳐먹었는데 어떻게 내가 이길 수 있나. 툭툭 밟고 가야겠다. 그래야 이 관계 회복이 될 것 같다'는 대사를 예로 들며 "감동받았다. 뭐라 그럴까, 이런 게 배유미 작가님의 큰 매력 같다"고 말했다.
이어, "회마다 한 번씩 나오는, 생각지도 못했던! 저도 (감)우성 오빠도 '이게 뭐야, 대박이다!' 했던, 상상을 초월하는 그런 대사들이 있다. 생각할 순 있지만 말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은 대사들이 회차별로 너무 많았다"고 전했다.
그 후로도 김선아는 '누가 이렇게 밤새 나를 지켜준다는 게 이렇게 든든한 건지 몰랐다', '세상 끝에 매달려 있다', '사랑해 볼까 하는데' 등 인상적이었던 대사를 줄줄 읊었다. 그는 "멋 부리는 대사가 아닌데도 너무 시적이고, 음악들과 조화도 너무 좋았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김선아는 "이런 걸 어떻게 찾으셨지? 하고 깜짝깜짝 놀랐다. 보통 내공에서 쓸 수 있는 대본이 아닌 것 같다"면서 "조금만 더 시간적인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든다. 분량이 원체 많아서 촉박하긴 했지만"이라고 전했다. 대사를 충분히 음미할 만한 여유가 없어 애석하다는 뜻이었다.
그러면서 "배우로서 좋은 대사를 할 수 있는 것만큼 행복한 건 정말 없다고 생각한다. 와- 하는 대사를 할 수 있다는 것, 한마디를 하더라도 한 장면을 하더라도 기억에 남는 걸 하는 게 진짜 행복"이라고 덧붙였다.
손정현 감독을 향한 '무한 신뢰'를 보이기도 했다. 평소에도 현장에서 감독을 "약간 맹신하고 항상 쫓아가는 스타일"이라고 밝힌 김선아는 "감독님이 너무 잘하셔서 저희는 할 게 없었다. 스태프들이랑 전부 다 너무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손정현 감독을 '대장'이라고 부른 그는 "어쨌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데, 대장님이 너무 잘 끌고 가 주셨다"고 전했다.
◇ 시청자 공감 이끈 서툰 어른들의 사랑
'키스 먼저 할까요'는 '리얼 어른 멜로'를 표방한 드라마였다. (사진='키스 먼저 할까요' 캡처)
'키스 먼저 할까요'는 한쪽이 시한부인 연인 관계를 중점적으로 다루면서도 무리한 전개를 하거나 작위적인 설정을 하지 않았다. 연애와 결혼까지 거친 어른들의 성숙한 사랑을 담아냈다는 평이 주를 이룬 까닭이다. 시청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은 원인이 어디에 있을지, 넌지시 물었다. 그러자 김선아는 "서툰 사람들이 많아서"라는 답을 돌려줬다.
"스무 살 넘으면 다 성인이고 어른이라고 하죠. 우리는 어른은 뭘 다 알고 있고 뭘 다 잘할 것 같다고 생각하잖아요. 정작 어른은 그렇지 못한, 되게 서툰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생각보단 표현을 안 하고, 담아두고, 용기도 많이 없는 것 같고. 그런 것 있잖아요. 맛있는데 잘 먹었다는 이 말 한마디도 잘 안 하니까요.
힘들다는 말도 잘 안 하는 어른들. 쌓아놓기만 하는. 자기는 알잖아요, 경험에 의해서. 그걸 꾹꾹 참고 있는데, 눈 보고, 상황 보고 이해하고 안아주니까, 그런 것들을 보고 많은 사람이 (작품 안에서) 스스로를 본 게 아닐까요. 자기처럼 서툰 저 사람들을 보고 이해하고 공감하는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까지 나왔던 멜로는 '사랑해', '너무 사랑해' 이런 말이 되게 자주 나오잖아요. 그런 걸 해 주길 바라고. 오라고 하면 바로 오고, 전화하라고 하면 바로 하고. 그런데 여기('키스 먼저 할까요')는 궁금한 게 있어도 안 묻고 참죠. 아팠는데 6년 동안이나 혼자 알고요. 이런 사소한 것들이 어쩌면, 지금 우리 어른들이 사는 현실이 아닐까요. 그래서 이 사람들이 더 애틋해 보이고요."
그럼에도 시한부라는 소재는 자칫하면 삐끗할 수 있는 위험을 지녔다. 김선아는 "굳이 시한부여야 했나, 할 수도 있지만 상처 가진 두 사람(안순진-손무한)을 나타내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면서 "시한부(손무한)와 아이 잃은 엄마(안순진)를 통해 (시청자들이) 좀 빨리 공감할 수 있게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슬픔과 아픔을 갖고 시작했을 때 어떻게 극복하고 서로를 어떻게 보듬어주고 사는지, 상대를 어떻게 용서하고 상처를 안아줄 것인지 이런 것들을 얘기하는 거다. 불안한 내일이지만 오늘을 평범하게 살자고. 오늘 눈 떴을 때 불안했지만 그래도 지금 살고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 조금 더 성숙한 멜로 활성화되길
배우 김선아 (사진=굳피플 제공)
보다 풍부한 인생 경험을 지닌 주인공들의, 조금 더 '깊이 있는' 멜로. 요즘 드라마에서 눈에 띄는 트렌드 중 하나다. 대놓고 '어른 멜로'를 표방한 '키스 먼저 할까요'는 물론이고, 앞서 종영한 JTBC '미스티'나 동시간대 경쟁작이었던 KBS2 '우리가 만난 기적'도 성숙한 연애를 극 중심에 놓는다.
사실 드라마에 나오는 사랑의 대부분이 성인 간에 이루어지므로 '어른'을 강조하는 것은 맞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른 멜로'나 '성숙한 연애'라는 말이 나온 배경에는, 20~30대를 넘어선 이들의 사랑이 적어도 작품 속에서는 여전히 희소하거나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같은 흐름을 배우로서 어떻게 보고 있을지 궁금했다.
김선아는 "사회가 약간 바뀌고 있는 것 같다. 할리우드 영화만 봐도 장르물 빼면 멜로에서 주를 이루는 분들이 40~60대 배우들이다. 10~20대가 연기하는 멜로물은 거의 볼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런 영향이 우리에게도 온 게 아닐까"라고 진단했다.
김선아는 감우성과도 "10대 20대 때는 이런 사랑의 감정을 알기는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고 말했다. 나이가 들수록 어떤 감정을 이해하는 정도가 깊어질 수 있다. 13년 전 맡았던 서른 살의 김삼순을, 현재의 김선아가 더 잘 공감할 수 있는 것처럼.
"달달한 것부터 이것저것 다 해 본 사람들이 조금 더 성숙한 걸 보여주는 게 활성화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 것도 보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이번 드라마가 괜찮았다고 생각해요. 배우들도 성장할 수 있으니 좋을 것 같아요. 외국에서는 리처드 기어도 그렇고 나이 들어서도 (멜로 연기를) 다 하잖아요. 어른들도 다 사랑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