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본사.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대한항공 사주일가의 뿌리깊은 갑질행태는 사주일가의 '전횡'이나 '부당한 지시'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견제장치가 고장났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대한항공 내부로부터 분출하고 있다. CBS는 <"사측이 노조 대의원 면접" 이상한 대한항공>이란 제목으로 노조집행부 구성에 사측이 영향력을 행사해 온 정황을 취재보도한데 이어 민주노조 와해에 사측이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대한항공 사측의 노조죽이기는 일반의 상상을 초월했다.
객실 승무원노조가 결성된 건 지난 2000년초였고 무노조 상태였던 객실승무부문에 노조가 생기면서 노조원들이 사측의 일거수일투족에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사측의 일방통행에도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고 민주노조를 눈엣가시로 여긴 사측은 '작전을 펴듯 노조 지도부를 해고로 몰아갔다'는 주장이 나왔다.
대한항공 승무부문노조 결성을 주도하고 수년간 사측에 맞서 투쟁을 벌였던 대한항공 노조(일반노조)의 전직 간부 A씨는 CBS노컷뉴스와 가진 두 차례(4,8일)의 인터뷰에서 지난 10여년간 가슴속에 묻어뒀던 울분을 토해냈다.
A씨는 대한항공 승무직원들이 믿고 따랐던 큰 언니같은 존재였고 대한항공 임직원들이조양호 회장 일가의 눈치를 살필 때 직원의 처우개선을 위해 노조결성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조에서 조직국장을 맡았던 A씨는 2000년대 노조를 만들고 2004년까지 왕성하게 노조활동을 주도했으며 2007년 권고사직으로 회사에서 쫓겨날 때까지 사측에겐 눈엣가시와 같은 존재였다. 노조가 힘을 잃기 전까지는 그나마 대한항공 직원이란 자리를 지킬 수 있었지만 2004년 민주노조가 와해된 뒤 사측의 탄압이 본격화되자 이마저도 불가능했다.
◇ "한 차례 비행에서 27개 죄목이 씌워졌어요"
지난 2006년 7월 LA행 비행기를 탔을 때의 일이다. "LA행 비행 당시, 전 모 팀장이(A씨 소속팀) LA다운타운의 윌셔그랜드호텔 제 방으로 찾아왔어요. 그 자리에서 홍 모 그룹장과의 면담일정을 통보받아 그룹장을 만났더니 저에게 무려 27개의 죄목이 씌워져 있었어요. 그 일로 전 1개월 정직을 당했죠"
A씨는 "27개 죄목이란게 하나같이 '회사에 흉을 봤다'거나 '스페셜밀 관련 컴플레인을 유발했다'는 등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인데 더욱 억울한 건 그룹장과 팀장이 리포터를 쓰도록 팀원들에게 강요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한항공이 노조장악을 위해 노조대의원을 사측 성향으로 채웠다'는 노조원 주장도 재확인됐다.(노컷뉴스 4월26일자 "사측이 노조 대의원 면접" 이상한 대한항공 보도 참조)
그는 "노조대의원 35명중 2명만 노조쪽이고 나머지는 진급을 미끼로 (사측이)시킨 사측 대의원이었다"며 "객실요원 4000명에서 35명의 대의원을 뽑던 걸, 5개팀당 1개 선거구체제로 쪼갰는데 이는 회사가 노조를 죽이려고 작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7년 호주 시드니행 비행기에서는 다른 승무원이 승객 가방(기내 캐리어)을 잘못 처리한 책임을 지게돼 결국 회사를 떠나게 된다.
대한항공 본사.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 "승객을 찾아가 선물주며 '컴플레인 레터' 받았다"그 전말은 이렇다. 비행기의 문이 닫힐 즈음 항공기 주방통로쪽에 캐리어 하나가 놓여 있었던 것. 가방을 발견한 A씨는 직감적으로 폭발물이나 위험물일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했다. 그리고는 '비행기 문을 닫으면 안된다'는 의사를 표시를 했다.
잠시 뒤 알고보니 동료 승무원이 승객으로부터 부탁받아 둔 가방이었다. 문제의 가방을 선반에 집어넣는 과정에서 또다른 승객의 짐을 건드리게 됐고 해당 승객이 거세게 항의하면서 기내에서 한바탕 항의소동이 빚어졌다.
이에 A씨가 서둘러 사과하고 두 승객도 "과했다"고 사과하면서 문제가 일단락되는 듯 했지만 이 사건은 3개월 뒤 A씨 권고사직의 직접원인이 됐다.
3개월 뒤인 7월중순쯤 '시드니행 비행건'으로 A씨에게 컴플레인 레터(항의서)가 날아든 것. 워낙 어이가 없었던 A씨는 레터를 쓴 당시 승객(각각 나주, 일산 거주)을 직접 찾아가 경위를 들어봤다.
A씨는 "대한항공 그룹장 홍 모씨 등 2명이 찾아와서 A씨가 대한항공에 해를 끼칠 사람으로 문제가 많아서 회사에서 자를려고 하니까 도와달라고 하면서 레터를 써달라고 하더라"는 승객들의 말을 전했다. 두 간부는 레터를 받기 위해 선물까지 제공했다고 A씨는 밝혔다.
◇ A씨 소송도 포기…"대한항공엔 희망이란 건 없다"A씨에 대한 사측의 공세는 집요했다. 한 수학여행단에서 날아든 컴플레인 레터 등 두 가지 잘못을 들어 사측은 2007년 7월 비행을 마치고 공항에 도착한 A씨에게 권고사직서를 발부했고 다음달인 8월 27일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
A씨는 "사측과의 소송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으나 (제기)하지 않았다. 대한항공에 희망이란 건 없다. 소송해서 들어가면 뭐하나 달라질 회사도 아닌데.."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사측의 공세는 주로 컴플레인 레터 제도를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컴플레인 레터제는 서비스질을 좋게 유지한다는 차원에서 승객들로부터 항의장을 받으면 당사직원에 처벌을 가하도록 하는 것이지만 사측의 눈밖에 벗어난 사람들을 옭아매는 수단으로 이용됐다는 게 노조원들의 증언이다.
A씨는 "사측에 필요로하는 컴플레인 레터 작성에는 계약직원들이 동원되는 경우가 많았다"고 증언했다.
대한항공 계약직 승무원들은 3년에 한번씩 재계약을 맺어야 계속 근무할 수 있는 불안한 처지에 놓여 있어 사측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렵다. 노조탄압의 선봉에 섰던 홍모씨는 노조원들의 원성을 샀다. "노조탄압에 앞장섰던 홍 모그룹장은 승무원한테 전화해서 만나자고 하고 유부녀 승무원을 동창회 하는데 데려가고 계약직 승무원들에게 리포터를 쓰도록 시켰다"고 증언했다.
노조 길들이기에 '직원 이간계'도 사용됐다고 한다. 2000년까지 대한항공에서는 학력차이로 인한 급여의 차별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2000년 노조가 사측과의 협상에서 2년제과 4년제 대학졸업자의 월급차별지급에 동의해주면서 차별이 생겼다.
이에대해 A씨는 "박 모 노조위원장이 마음대로 도장을 찍어줘 2년제 졸업자의 월급이 깎이게 된 것"이라며 "노조원들이 김포공항 부근의 노조사무실로 몰려가자 노조간부 7,8명이 쇠파이프를 들고 기다리더라"고 말했다.
당시 A씨와 노조활동에 가담했던 노조원은 50명 정도됐고 이들은 "진급도 안되고 호봉(승급)도 꽝이었다"고 말했다. 회사에 희망을 잃고 역부족이라고 느낀 민주노조원들은 회사에 순응하거나 A씨처럼 회사를 떠나는 2가지 길 앞에서 고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