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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사이로 흐르는 피, 그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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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일 상영, 1만 관객 돌파 '피의 연대기'의 제작 뒷이야기

지난 1월 18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피의 연대기' (사진=KT&G 상상마당시네마 제공)

 

지난 4월 27일은 경색됐던 남북 관계에 봄이 왔다는 것을 보여준 역사적인 2018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날이었다. 이날은 대자연, 마법, 반상회, 그날 등 제 이름으로 불리지 못한 '생리'를 다룬 다큐멘터리 '피의 연대기'에도 소중한 날이었다. 지난 1월 18일 개봉해 딱 상영 100일차를 맞은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n차 관람자를 포함해 1만 명 넘는 관객의 '피의 연대기'와 함께해 왔다.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 KT&G 상상마당 시네마에서 '피의 연대기' 굿바이 GV가 열렸다. 이번 행사에는 김보람 감독을 비롯해 김승희 애니메이션 감독, 김민주 촬영감독, 정혜리 컬러리스트, 오희정 프로듀서, 110크루 모션그래픽팀 최미혜-김명은, 김해원 음악감독이 참석해 '피의 연대기' 제작 과정에 대해 상세한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이날 굿바이 GV에서 나온 주요 내용을 일문일답 형식으로 정리한 것이다.

▶ '피의 연대기' 작업하면서 쾌감을 느꼈다고 했는데 이유가 무엇인지.

"쾌감을 느낀 것에 어떻게 더 부가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 (웃음) 다리 사이에 흐르는 피를 그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그런 기회가 주어진 사람이 얼마나 있겠으며. 생리하는 (내용의 영화) 작업을 한다고 했을 때 투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으며. 저는 복 받았다고 생각했다. 다리 사이에서 흐르는 피를 그리는 것 자체가 재밌는데 나는 심지어 돈도 받고 그리고 있구나, 하는 그런 쾌감? 그리지 말라고 하는 것을 그려서 오는 쾌감도 있었던 것 같다." _ 김승희 애니메이션 감독

▶ '피의 연대기' 영화 색을 만지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은.

"관객들이 보기에 편해야 했다. 예쁘게 해 달라고 하셔서 (그걸) 전체적으로는 최대한 지키면서 갔다. 오버스럽지 않게 구성하려고 노력했다." _ 정혜리 컬러리스트

▶ '피의 연대기' 음악 작업을 하면서 느낀 점은. 다른 작업을 할 때보다 편안했다고 한 인터뷰도 있었는데.

"초반에 영화를 봤을 땐 정보 중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가 남자여서 그럴 수도 있다. 밝은 음악을 해 달라고 강조하신 적은 없고, 어떤 디렉션이 특별히 있진 않았다. 저는 제가 보고서 받은 느낌을 중시했나 보다. 첫 편집본 보고 만든 음악이 왜 슬프게 느껴졌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다. 다른 영화를 할 때도 그렇고 제가 좀 어둡나 보다. 의도하지 않았는데 슬프다고 하더라. (좌중 웃음) 영화에서 밝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려는 게 계속 느껴졌다. 슬픔이라기보다는 놀라움, 고통을 이해하게 되는 것, 무지의 상태에서 이해하게 되는 마음은 저한테 되게 긍정적인 경험이었다. 굉장히 에너지를 많이 받으면서 했다." _ 김해원 음악감독

영화 '피의 연대기' 중 한 장면 (사진=KT&G 상상마당 시네마 제공)

 

▶ 생리컵 발명자 부분에서의 그래픽 모션이 인상적이었다. 여성영화제 버전과 개봉 버전이 따로 있었는데 왜 다르게 한 건가.

"보여줘야 되는 정보들이 되게 많았고 내레이션도 꽤 길었다. 영화 톤과 잘 어울리는 그래픽으로 정신 사납지 않으면서 어떻게 흐름을 잘 이을 수 있을까 고민했다. 영화제 버전은 1차 작업하는 느낌으로 했다. 그래서 제 맘에도 썩 들지 않았다. 데드라인 때문에… (좌중 웃음) 다행히도 한 번 더 수정할 기회가 생겨서 그때는 좀 더 흐름이 자연스럽게 작업했던 것 같다. 인포그래픽 쪽 얘기를 많이 하셔서 레퍼런스는 그쪽을 많이 찾아봤다. 옛날 사진과 오브젝트를 사용하는 게 많아서 어떻게 구성했는지 많이 봤다. 영화가 통통 튀는 느낌이었는데 그걸 살릴 수 있는 포인트를 어떻게 줄 수 있을까 고민했다." _ 110크루

▶ '피의 연대기'로 첫 장편을 찍었다. 촬영감독을 맡게 된 이유는. 또, 생리컵을 쓰고 난 이후 제일 많이 변한 건 무엇인가. (* 김민주 촬영감독은 영화 인터뷰이로 등장해 생리컵 사용 경험을 말한다)

"장편 다큐 촬영이라고 하니까 마치 큰 걸 한 것 같이 느껴지는데 저도 그때 뭘 하는 게 없을 때였다. (웃음) 총괄 슈퍼바이징 프로듀서해 주신 홍석재 감독님이 학교 선배고 작품 소개해 주셔서 하게 됐다. 밥 먹고 있는데 '너 생리컵이라고 아니?' 하셨다. 너무 놀랍기도 하지만 재밌는 얘기여서 참여하게 됐다. 다큐는 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체력적, 시간적으로 부담이 돼 못하고 있었다. 제가 부족한 부분을 다큐에서 많이 채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되게 목적이 뚜렷했다. (웃음) 저 자신을 위해 참여했던 것 같다. (좌중 웃음) 이젠 화장실에서 보는 피도 더럽지 않고 물 묻은 것처럼 느껴진다. 제 몸이랑 더 친해졌다. 제 몸을 만지고 보는 것에 대해 거부감이 많이 없어졌고 모든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됐다. 생리대 안 사서 좋고 생활에 편리한 부분은 무궁무진하게 많다." _ 김민주 촬영감독

▶ 해외 촬영 중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뉴욕은 감독님, 촬영감독님만 가셨다. 돈이 없어서. 네덜란드, 영국을 갔는데 가장 고생스러운 건 네덜란드였던 것 같다. 출연자도 많고 규모도 가장 컸던 촬영이라서. 3박 4일 일정이었는데 도착해서 다음 날부터 내리 촬영했다. 2층에선 잠자고 1층에선 촬영했다. 밥하고 촬영하고 밥하고 촬영하고. (웃음) 밥때가 정말 잘 돌아오더라. 중간에 촬영감독님 친구분들이 사운드 촬영하러 오셨는데, 저는 진짜 밥을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나중에 그 두 분이 너무 배가 고팠다고 하셔서… (좌중 웃음)" _ 오희정 프로듀서

▶ 직업을 소개할 때 '가사노동 은퇴'라고 하거나 이름 두 글자만 나오는 등 인물 소개 자막이 흥미로웠다. 그렇게 한 이유는.

"가부장제에 대한 저항 아니냐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었는데 (좌중 웃음) 처음부터 그런 의도가 있던 건 아니었다. 외국영화 보면 주요 스태프 이름이 엄청 강렬하게 나오지 않나. 저희도 스태프들 이름이 정말 크게 나오게 해 보자 했는데, 차별점 줄 수 있는 게 뭘까 했다. 저희는 서로 존댓말 쓰고 이름을 부른다는 내부 합의가 있어서 이름만 넣어보면 어떨까 싶었다. 고유한 이름의 특색이 사니까. 나중엔 등장인물도 그렇게 했다. 관객에게 좀 더 빨리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아서. 노동하면서 피 흘린다는 게 중요한 테마여서, '가사노동 은퇴'라고 기재했던 것 같다. 가장 그분에게 어울리는 직업이 무엇일까를 고려했다." _ 김보람 감독

▶ '생리'를 주제로 이렇게 본격적인 다큐를 만든 계기가 궁금하다.

"저도 오희정 PD님도 미국 영화를 보고 자란 세대라 그런 퀄리티로 만들고 싶었다. 저는 (제작진에게) 디테일하게 뭘 드린 게 없다. 내용과 의도를 드렸을 뿐이다. 참여하신 작업자들이 워낙 해석과 표현을 본능적으로 발휘해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방식의 영화가 됐다. 모든 작업자들의 색이 희한하게 이뤄져서 결과물로 나왔다는 생각이 든다. 제작 기간이 길고 여건도 좋은 게 아니었지만 다들 최고치를 해 주신 것 같다.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제가 초짜라서 그런 거고, 영화가 잘 만들어졌다면 그건 100% 이 모든 에너지가 희한하게 버무려져 나온 덕이다." _ 김보람 감독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서교동 KT&G 상상마당 시네마에서 '피의 연대기' 굿바이 GV가 열렸다. 왼쪽부터 김보람 감독, 김승희 애니메이션 감독, 김민주 촬영감독, 정혜리 컬러리스트, 오희정 프로듀서, 모션그래픽팀 110크루 최미혜, 김명은, 김해원 음악감독 (사진=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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