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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학살 참전군 "살려달라던 노인, 선임병이 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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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평화법정서 인터뷰 영상 공개

21일 오후 서울 마포구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베트남전쟁 시기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 재판부에는 참전군 A(72)씨의 인터뷰 영상이 증거로 제출됐다. (사진=김광일 기자)

 

베트남전쟁 때 민간인 학살을 자행한 것으로 알려진 한국군 중대 소속 참전군에게서 당시 상황에 관한 구체적인 증언이 나왔다.

21일 서울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한국군 학살 진상규명을 위한 시민평화법정' 재판부에 제출된 인터뷰 영상에는 해병대 청룡부대 소속으로 베트남 중부에 파병됐다던 A(72)씨가 등장했다.

영상에서 A씨는 "지난 1968년 2월 디엔반현 퐁니·퐁넛마을에 1대대 1중대 2소대 소속 첨병으로 나갔다"며 "미국 장갑차가 부비트랩에 걸린 뒤 마을에서 적을 색출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고 진술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대피소(방공호) 쪽에 총을 쏘자 숨어 있던 노인이 올라오면서 손을 들고 월남말로 '살려달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며 "소대장 이모 중위가 밖으로 나가라고 하는데 그 노인이 알아듣지 못했다"고 했다.

이어 "그때 월남에서 오래 있었던 고참(선임)병이 와서 '에이 XX, 이런 것 하나도 처리 못 하냐' 하며 히스테리로 되레 갈겨서 즉사해버렸다"고 말했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 임재성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가 시민평화법정에 원고 측 소송대리인으로 나와 발언하고 있다. (사진=김광일 기자)

 

또 "적과 교전 중에 일어난 사고도 아니고 멀쩡한 민간인을 쏴서 죽여버렸으니 양심의 가책을 느꼈지만 전쟁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며 "포로들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 지침을 받아 본 기억이 없다"고 털어놨다.

아울러 당시 마을 주민 74명이 숨진 채 발견된 데 대해서는 본인이 소속된 2소대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서 목격하지 못했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청룡부대는 가장 위험한 적진에서 소수가 넓은 지역을 커버해야 했기 때문에 방어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아군 보호를 위해서 어느 정도 잔인함을 노출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퐁니·퐁넛학살 생존자 응우옌 티 탄(57)씨가 시민평화법정에 원고로 출석해 당사자 신문을 받고 있다. (사진=김광일 기자)

 

퐁니·퐁넛학살로 부모와 동생, 이웃을 잃은 응우옌 티 탄(57)씨는 이날 원고로 출석해 "한국군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차라리 나를 죽였으면 이렇게 힘들게 지내진 않았을 것"이라며 오열했다.

학살 당시 8세이던 탄씨는 깊이 1m, 폭 4m의 작은 동굴에 숨었지만 곧바로 발각돼 온몸으로 총탄을 받아냈던 것으로 전해졌다.

탄씨는 "목이 말라 물을 먹었는데 다친 상처에서 창자가 튀어나왔다"며 "시신들로 덮여 있던 논두렁을 지난 적이 있는데 그사이에 어머니가 있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정부와 참전군인들이 사실을 시인하고 사과했으면 좋겠다"며 "그래야 학살 때 죽었던 영혼들 앞에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베트남에 돌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1968년 2월 12일 청룡부대 1대대 1중대가 퐁니·퐁넛마을을 휩쓸고 지나간 뒤 주민 74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주월 미군사령부가 한국군이 학살을 자행했다는 의혹을 제기했지만 한국군은 자체 조사결과 '베트콩의 소행일 가능성이 있다'며 부인했다.

우리 국방부는 학살 의혹과 관련해 "베트남과의 관계를 고려해 공식적인 입장을 내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편 시민평화법정은 원고인 학살 피해자들이 변호인의 도움을 받아 대한민국을 피고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모의재판이다. 김영란 전 대법관을 주심으로 하는 재판부는 22일 선고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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