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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미 "제가 보고 싶고, 되고 싶고, 꿈꾸는 여성을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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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감독 연속강좌 ②]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 이경미 감독

한국영화가 '남초화'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당장 지난해와 올해 개봉한 상업영화 포스터만 봐도, 여성이 전면에 드러나는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다. 감독도 마찬가지다. 한 해에 200편 안팎으로 제작되는 한국영화 개봉작 중 여성 감독의 작품은 10%도 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도, 여성 감독들은 자신만의 개성이 담긴 작품을 만들며 관객에게 '다른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트랜스:아시아영상문화연구소는 현재 한국영화 안에서 여성 감독의 위치를 묻고, 각 감독의 작가성을 탐구하는 '여성 영화감독 초청 연속강좌'를 3월부터 6월까지 진행한다. 이 중 기사화에 동의한 감독들의 강의를 옮긴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변영주 "계속 욕망하는 사람이 결국 영화를 만든다"
② 이경미 "제가 보고 싶고, 되고 싶고, 꿈꾸는 여성을 그린다"

이경미 감독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10일 오후, 서울 성북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114호에서 '여성 영화감독 초청 연속강좌'의 두 번째 강의 '이경미의 여성들'이 열렸다.

2004년 단편 '잘돼가? 무엇이든'으로 각종 단편영화제의 상을 휩쓸며 주목받은 이경미 감독은 '미쓰 홍당무'로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을 받았다. 특히나 평단의 호평이 높았던 '비밀은 없다' 또한 파리한국영화제 관객상을 받았다. JTBC '전체관람가'를 통해서는 이영애가 출연한 단편 '아랫집'을 선보였다.

이 감독은 영화 공부를 늦게 시작한 편이었다. 다른 대학에서 러시아어를 전공하고 회사 생활을 3년 했다. 하루 출퇴근 시간만 4시간에 이르고, 경제적으로는 풍족하지만 돈 쓸 시간도 없이 바빴던 이 감독은 '이렇게 평생은 죽어도 못 살겠다'고 생각했다. 친구 따라 본 한예종 시험에 붙어 영화과에 진학했다.

원래 연기자를 꿈꿔 연극영화과에 가고 싶었다는 이 감독은 영화 공부가 녹록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아주 어려웠다. 다른 동기들이 말하는 영화 거장들을 난 누군지 하나도 몰랐다. 나 혼자 바보인 것 같고, 나이도 많아서…"라고 말했다.

하지만 영화는 어려우면서도 재미가 있었다. 이 감독은 "그림으로 뭔가 찍어서 그걸 이어붙이면 거기서 어떤 감정이 생겨나는 게 너무 놀라웠다. 그 감정이 너무 신기해 죽겠는데, 보는 사람도 똑같이 느껴줄 때 쾌감을 느끼면서 (영화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며 "그때 그 경험이 영화를 만들게 한다"고 밝혔다.

지금 이 순간에도 훌륭한 사람들이 계속 나오고 있어서 좋아하는 감독을 갈아타고 있다고 해 좌중을 폭소케 한 이 감독. 그의 마음속에 일관되게 자리 잡고 있는 사람들은 코엔 형제, 구로사와 아키라,우디 앨런이다.

"공통점은 유머인 것 같아요. 살면서 인간사가 진짜 고달프구나 하고 느끼거든요. 나이 들면서 인생사가 오락가락하고 우리 모두 본인이 선택해서 태어난 게 아니고, 이렇게 부침 있는 인생을 살아가기에, 미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을 해요. 이런 세상을 진지하게 살 수 없으니 유머만이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미덕이라고. 저도 겉으론 웃는 것 같지만 속으론 울던 시절이 있었고, 그럴 때 저를 버티게 한 건 제가 웃길 때 남이 웃어준 거였어요.

또 하나 그 감독들의 세계에서 제가 공감하는 부분이 있어요. 이 세상은 어떻게 굴러가는 건가. 우리는 왜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아야 하는가. 어떤 룰이 있지 않을까. 어떤 이야기를 만들 때 제가 사는 세상의 룰을 넣어요. 그런데 모든 것은 결국 우연에서 비롯된 것일 뿐이라는 허망함. 그들의 작품을 볼 때 이런 걸 매번 깨닫고 공감하게 돼서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경미 감독의 첫 장편영화 '미쓰 홍당무'(2008)와 두 번째 영화 '비밀은 없다'(2016) (사진=빅하우스㈜ 벤티지 홀딩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이 감독이 천착하는 주제는 '소통'이다. '미쓰 홍당무'도, '비밀은 없다'도 서로 오해하고 엇갈리는 인간 군상이 잘 나타나 있다. 그는 "끊임없이 대화하지만 전혀 소통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제가 되게 많이 했던 것 같다"며 "사람과 소통하는 데 곤란함을 느끼고 그게 쌓여 일은 점점 커지는 이야기, 그런 게 제 관심사 같다"고 말했다.

또한, "시나리오를 쓰는 분들이나 이야기를 만드는 분들은 공감하는 분들이 많을 텐데, 모든 걸 설계해서 시나리오를 쓰려고 노력하긴 하지만 때론 되게 직관적으로 들어가는 게 있다"며 "직관적으로 점을 넣었는데 완성하고 나니 연결돼서 어떤 모양이 되는 걸 발견할 때가 있다. 그래서 무의식의 영역을 믿는 편"이라고 전했다.

이어, "현장에서는 감독이 자기가 원하는 대로 100%를 절대 못 한다. 그건 굉장히 좋은 기회다. 현장에서 하고 싶은 걸 100% 한다면 지금 우리가 아는 명작들이 나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크다. 정말 많은 변수와 위기 안에서 새로운 것들이 지혜로 창조될 때 더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 같다"고 부연했다.

이 감독의 작품에서 단연 두드러지는 것은 여성 캐릭터의 활약이다. '미쓰 홍당무'의 양미숙과 서종희, '비밀은 없다'의 김연홍, 최미옥, 김민진 등 그간 볼 수 없었던, '전형성'을 벗어난 여성 캐릭터를 꾸준히 만들어 온 창작의 원천은 무엇일까.

이 감독은 "창작하는 사람이라 그냥 직관과 본능을 따를 때가 많다. 어떤 여성을 만들기 위해 뭘 공부하거나 한 적은 없다. 그냥 제가 보고 싶은 여성, 제가 되고 싶은 여성, 제가 꿈꾸는 여성을 그리고 싶다는 욕망으로만 왔다"고 밝혔다. 그는 '미쓰 홍당무'의 서종희 역을 들어 '꿈꾸는 여성'이라고 덧붙였다.

10일 오후, 서울 성북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여성 영화감독 초청 연속강좌'의 두 번째 강의 '이경미의 여성들'이 열렸다. (사진=김수정 기자)

 

영화 안에서 의도치 않은 여성 연대가 나타나는 것에 대해서는 "그런 여성연대 코드는 제가 한예종 시험 봤을 때 풀었던 문제의 답에서부터 계속 있었다. 한국영화 엔딩을 바꾸는 거였는데 '처녀들의 저녁식사'를 레즈비언 코드를 넣어 사랑 이야기로 풀었다. 이후에 첫 번째로 만든 필름 단편이 고등학교 때 연인이었던 여자 두 명이 상갓집에서 우연히 마주치게 되는 것이었다"고 답했다.

그는 "왜 그렇게 하는지 전문적으로 분석해 본 적은 없지만, 제가 보고 싶고 만들면서 만족감과 충족감을 느끼는 걸 보면 그게 제 자체인 것 같다. 그게 편안하다고 느끼니까"라며 "그렇다고 제가 남자를 싫어하냐, 그건 아니다. 언제 한 번 나도 멜로 이런 거 해 보고 싶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그러면서 "제가 쓴 얘기에 한 번도 사랑이 이뤄진 게 없다. 다들 자기 문제에만 고민이 많은 복잡한 여자들이었지, 격정 멜로 이런 건 없었다. 남녀가 됐든 여여가 됐든 남남이 됐든 두 생명체가 비로소 온전히 사랑을 나누는 걸 하고 싶은데 언제 그걸 제가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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