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운동과 함께 하는 시민행동·언론시민사회단체가 5일 오전, 서울 중구 태평로 조선일보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자연 리스트'에 대한 성역 없는 수사와 적극적인 언론 보도를 촉구했다. (사진=박종민 기자)
"이 사건(장자연 리스트)에 언론사들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있고 이 사건 진행 과정에서 언론사들이 입을 닫았던 사실에 주목한다. 비겁하고 더러웠다. 그 진상도 명확히 밝혀져야 한다."_ 전국언론노동조합 김환균 위원장9년 전, 신인 배우였던 장자연은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방송·연예계, 재계 등 유력 인사들에게 성 접대를 강요받았다는 내용이 담긴 문건에는 가해자들의 이름도 적혀 있었다.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에 오른 인물들에 대한 수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전 소속사 대표와 매니저만이 처벌받았을 뿐이었다.
350개 단체와 400여 명의 개인이 참여한 #미투운동과 함께 하는 시민행동과 언론시민사회단체는 5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태평로 조선일보사 앞에서 '장자연 리스트 진상규명, 성역 없이 수사하라!' 기자회견을 열었다.
미투시민행동 정미례 공동집행위원장은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 앞과 뒤에서 침묵의 카르텔을 만들었다"면서 故 장자연의 죽음을 '사회적 타살'이라 규정했다.
정 위원장은 "사건을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 성역이 없다는 것은 어느 누구에게도,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관련자 모두 진상규명하고 적절한 처벌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언론 보도 행태에도 쓴소리를 던졌다. 그는 "많은 언론이 (장자연 리스트 재조사에 대해) 공소시효 위주로 다루고 있는데, 저희는 그 부분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그건 과거사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김언경 사무처장은 "장자연 씨 사건을 재조사할 수 있게 돼 정말 다행이다. 그분이 죽음으로 드러내고자 했던 성 착취 문제를 반드시 우리가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사무처장은 "왜 조선일보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느냐고 물을 수 있다. 그러나 이미 다 알고 있다, 여러분들 모두. 조선일보의 누군가가 이 사건에 분명히 이름이 올라가 있다. 조선일보에서 어떤 압박을 가하거나, 또다시 어떤 명예훼손(소송)을 하더라도 저는 이번 사태에 있어서만은 다른 언론사들이 (조선일보의) 동업자가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객관성이란 빌미에 숨어서 뭐가 드러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보도하지 않겠다는 식으로 보도하지 말아 달라. 이미 드러난 것이 많다. 그것에 대해 보도하는 것에 두려움을 갖지 마시고 하나하나 여론을 형성해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김환균 위원장은 '장자연 리스트'가 처음 불거졌던 2009년, 언론이 진상규명을 위해 집요하게 보도하기보다는 소극적이었고 아예 침묵한 곳도 있었다는 점을 언급했다.
김 위원장은 "그 진상(언론사들의 침묵)도 명확히 밝혀져야 한다. 9년이 지났지만 우리가 이 자리에 모인 것은 장자연 씨 죽음 원인과 진상이 명확하게 밝혀져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조선일보는 '장자연 리스트'와 관련해 조선일보사와 방상훈 사장의 명예가 훼손됐다며 이종걸 의원, 이정희 전 의원, MBC, KBS 등에 소송을 냈지만 모두 패소한 바 있다.
다음은 '#미투운동과 함께 하는 시민행동·언론시민사회단체 기자회견' 전문.
2009년 3월 7일 사망한 배우 故 장자연의 빈소 사진 (사진=노컷뉴스 자료사진)
'장자연 리스트' 진상규명, 성역 없이 수사하라
4월 2일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장자연 리스트' 사건을 2차 재조사 대상 사건으로 선정했다. 2009년 3월 신인배우 장자연 씨는 소속사 대표에 의해 술과 성 접대를 강요당했고 이를 거부하면 폭행까지 당했음을 폭로하며 삶을 마감했다. 장자연 씨는 문건에서 "저는 술집 접대부와 같은 일을 하고 수없이 술 접대와 잠자리를 강요받아야 했습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라고 절규했고, 심지어 어머니 기일에도 접대에 나섰음을 호소했다. 장 씨의 문건은 추악한 '성 상납 강요'를 비롯해 힘없는 배우를 죽음으로 몰아간 연예계 비리가 담겨 국민에게 크나큰 충격과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진상규명과 가해자 처벌은 흐지부지되었다. 검찰은 성매매 피의자 전원을 불기소 처분했고, 장 씨 소속사 대표 김 모 씨의 강요와 성매매 알선 혐의에 대해서도 무혐의 처분했다. 김 씨는 고작 폭행과 협박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장자연 씨가 죽음으로 알리려 했던 진실은 그렇게 덮였다.
한편 '장자연 리스트' 사건은 거대 족벌 언론의 무소불위 권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당시 민주당 이종걸 의원은 대정부 질의에서, 그리고 민주노동당 이정희 의원은 TV 프로그램에서 조선일보 사장 등의 이름을 거론하며 부실 수사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언론계 인사'가 장 씨를 죽음으로 몰아간 추악한 성범죄에 가담한 것으로 밝혀진다면 법적 처벌은 물론 영원히 언론계에서 퇴출시켜야 했다. 하지만 조선일보는 줄소송으로 국회의원은 물론 시민단체와 언론사 대표 등의 입을 틀어막았다. 심지어 다른 언론사에까지 관련 보도에 대한 법적 대응을 불사하겠다는 엄포를 놓았다. 이런 유력 언론사의 압박과 언론사의 암묵적 담합에 의해 '장자연 리스트' 사건은 제대로 여론화되지 못한 측면도 크다.
하지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 청와대 국민청원에 '고 장자연의 한 맺힌 죽음의 진실을 밝혀주세요'라는 청원이 올라왔고 이십삼만 명이 넘는 국민들이 동의와 지지 의사를 밝혔다. 결국 미온적이었던 검찰이 재조사에 나서게 됐다. 또한, 최근 '한겨레21'이 당시 의혹을 뒷받침하는 보도를 내놨는데, 이는 더욱 구체적이고 충격적이다. 검․경이 조선일보 사주의 아들 방 모 씨가 2008년 10월 28일 장자연 씨를 술자리에서 만났다는 사실을 꽤 면밀히 조사하고도 검찰 수사 결과 발표 때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겨레21'에 따르면 10월 28일은 장자연 씨가 '어머니 기일에도 접대에 나섰다'고 한 그날로 방 모 씨가 접대 자리에 함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권력 관계를 악용해 벌어진 성범죄에 성역이 있을 수 없다. 심지어 장자연 씨가 남긴 문건에는 구체적인 접대 내용과 상대까지 포함돼 있었지만 경찰과 검찰은 수사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이제라도 철저한 진상규명과 가해자에 대한 사회적 단죄가 이뤄져야 한다. 또한 더 이상 우리 사회에 성폭력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미투 운동의 물결에 걸맞게 언론은 이번만을 이번 사건을 제대로 보도해야 한다. 장 씨의 죽음은 '사회적 타살'로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상징한다. 여성 연예인에 대한 인권 침해, '성 상납'을 매개로 이뤄지는 권력을 향한 추악한 로비,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불평등, 선출되지 않은 무소불위 언론 권력의 횡포, 권력을 악용한 우리 사회의 온갖 추악한 행태를 이번 기회에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2018년 4월 5일
#미투운동과 함께 하는 시민행동(단체 350개, 개인 400명)/언론시민사회단체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미디어기독연대,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언론소비자주권행동, 자유언론실천재단, 전국언론노동조합, 표현의자유와언론탄압공동대책위원회,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NCCK언론위원회,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