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손주가 이번에 육군 장교가 됐어요. 우리 때는 (연좌제 때문에) 꿈도 꿀 수 없던 건데. 특별법도 통과될 가능성이 아주 높아요. 민주화를 몸으로 느낍니다."
대전 동구 낭월동 산내 유족들이 모처럼 기대에 부푼 봄날을 보내고 있다. 산내 골령골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제주 4.3 연루자와 보도연맹원 등 대전형무소 재소자 1800명에서 최대 7000명의 민간인이 학살된 곳이다.
유족들은 연좌제 등에 발목이 잡혀 "아버지가 어디서 죽었는지 말도 못하고, 빨갱이로 숨어 살아야 했던"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왔다.
제주 섯알오름에 마련된 예비검속 희생자 위령 시설. 한국전쟁 당시 보도연맹원을 포함한 민간인 학살은 제주와 대전 산내는 물론 전국에서 자행됐다. (사진=신석우)
◇ 민간인학살 특별법 제정 '기대'"늦은 감이 있지만" 민간인 학살 특별법의 4월 국회 통과가 유력하다. 산내 유족들은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의 약속에 기대감이 부풀어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한국 군인과 경찰에 희생당한 민간인들의 억울함을 풀어줄 수 있는 또 하나의 단추가 채워지는 셈이다.
김종현 산내유족회 회장은 "한국전쟁 당시 100만 명이 죽었는데, 밝혀진 건 만 명 밖에 안 된다"며 "민간인학살 특별법이 제정되면 나머지 억울한 죽음의 진실도 밝혀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특별법이 제정되면 활동이 중단됐던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부활된다. 더 많은 억울한 죽음들의 진실을 밝혀낼 수 있는 것.
지난 2000년 제주 4·3 특별법 제정과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제주 4·3 사과 등과 더불어 활발했던 과거사위 활동은 2008년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임과 함께 모두 중단됐었다.
김 회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는 모든 게 계속 이어질 줄 알았는데, 이명박·박근혜 정권 들어 모든 게 멈췄다"며 "이번에는 우리 유족들도 태만하지 않게 활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제주 4.3은 1947년 3월 1일을 시작으로 48년 4월 3일을 거쳐 54년 9월까지 제주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1만 5000여 명의 주민들이 대한민국 군인과 경찰에 의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하며 올해 70주기를 맞아 다양한 특별법 개정 추진과 함께 다양한 기념행사가 진행된다.
◇ 유해도 편안한 곳에수 십 년이 흘러도 갈 곳을 찾지 못하던 유골들이 편안한 안식처를 찾은 것도 유족 입장에서는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컨테이너를 전전하거나 혹은 대학으로부터 "비워달라"는 요구에 시달리는 유해들이 세종 추모의 집에 안치돼있다. 행자부가 세종시가 조성한 추모의 집 가운데 2층을 임대해 사용하는 '임시' 안치소지만, 정부 의지가 반영된 안치소라는 점이 유족들을 한시름 놓게 하고 있다.
현재 세종 추모의 집 임시 안치소에 안치된 민간인학살 피해 유해는 모두 2700여 구. 대전과 공주, 홍성 등 인근 지역 뿐 아니라 전국에서 발굴된 유해들이 이 곳에 안치되고 있다.
◇ 산내에 전국단위 추모공원대전 동구 낭월동
'산내 골령골 사건'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50년 6월 25일부터 7월 17일까지, 또 이듬해인 51년 1월에도 대한민국 군인과 경찰이 제주 4.3 연루자와 여순사건 연루자, 보도연맹원을 비롯한 대전형무소 재소자 1800~7000명을 불법적으로 학살한 사건이다.
이 곳에 전국단위 추모공원 조성사업이 본격화된다. 우여곡절을 겪고 있지만, 올해 예산 15억 원을 확보해 설계 작업에 착수했고, 내년에는 부지 매입 등 사업이 본궤도에 오를 전망이다.
제주 섯알오름에 마련된 예비검속 희생자 위령 시설. 한국전쟁 당시 보도연맹원을 포함한 민간인 학살은 제주와 대전 산내는 물론 전국에서 자행됐다. (사진=신석우)
2020년 완공 목표인데, 추모관과 인권 전시관, 상징물과 조형물, 평화공원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유족회 김 회장은 "과거에는 우리 아버지가 어디서 어떻게 죽었다고 말도 못하고 빨갱이와 연좌제 속에서 숨죽이고 살았어야 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많은 민주화가 이뤄졌다"며 "지난 역사에서 꼬인 부분들이 하나씩 바로잡혀 나가는 것은 유족 입장에서 굉장히 고마운 일"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