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종영한 KBS2 월화드라마 '라디오 로맨스'에서 이강 역을 맡은 배우 윤박 (사진=JYP엔터테인먼트 제공)
2018년 새해를 맞아 KBS 2TV에서 처음으로 제작발표회를 한 드라마가 바로 '라디오 로맨스'였다. '연기돌' 하이라이트 윤두준이 지상파 주연으로 발돋움하고, 김소현이 아역을 벗어나 첫 성인 연기를 선보인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던 작품이다.
라디오라는 아날로그적인 매체를 중심에 둔 '따뜻한 드라마'를 꿈꿨던 '라디오 로맨스'는 아쉽게도 시청률 면에서는 고배를 마셨다. 2~3% 시청률을 유지하며 조용히 종영했다.
하지만 윤박에게는 잊지 못할 캐릭터를 만들어 준 작품으로 기억되지 않을까. 윤박은 망나니 같은 구석을 지녔지만 알고 보면 속정 깊은 실력파 라디오 PD 이강 역으로 '라디오 로맨스'를 보는 재미를 더해 주었다.
지난 22일, 서울 성동구의 한 카페에서 배우 윤박의 라운드 인터뷰가 진행됐다. 처음 만나 본 그는 특유의 유쾌하고 엉뚱한 면으로 취재진을 '빵 터지게' 한 인물이었다.
◇ 괴짜 같지만 '인간미' 때문에 끌렸던 이강TV 시청률은 비록 덜 나왔을지언정, '라디오 로맨스'를 본 사람이라면 톱스타 지수호(윤두준 분)를 DJ로 앉혀 프로그램을 이끌고, 막내 때부터 지켜봐 온 송그림(김소현 분)에 대한 애틋한 맘을 품은 이강 PD의 존재감을 피해가진 못했을 것이다.
일단 이강은 외형부터가 남달랐다. 헝클어진 머리에 수염도 길렀고, 인도 여행에서 갓 돌아온 설정인 만큼 패션도 독특했다. 감독은 '시청자들에게 윤박이 아닌 다른 사람으로 보였으면 좋겠다'며 신선한 모습을 요구했고, 상의한 끝에 그런 '이미지'가 나왔다는 게 윤박의 설명이다.
캐릭터 칭찬을 많이 받아 기분이 좋았다는 윤박은 이강의 '인간적인 면'에 끌렸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 등장할 때부터 범상치 않고 괴짜 같고 거칠어 보이지만, 사람을 좋아하는 모습이 보였다. 인간적인 모습이 좋았다"고 설명했다.
조금은 과장된 부분을 가진 캐릭터인 만큼, 한 발만 나가면 삐끗할 위험이 있었다. 윤박은 연기에 '목적성'을 가짐으로써 이를 헤쳐가려고 했다. 그는 "연기하는 저 스스로가 목적성을 가지려고 했다, 항상. 제가 (캐릭터의 심정을) 모르고 막 해 버리면, 남들이 보기에도 '얘, 왜 이럴까?' 하지 않았을까"라고 반문했다.
또한, "매 대사, 매 순간, 매 씬 왜 이런 말을 하는지 목적성을 부여하려고 했다. 모든 장면에서 망나니처럼 행동하면 너무 튀고 현실감 없는 인물이 되기 때문에, 지를 때는 지르지만 아끼는 후배, 국장님, 동료들 대할 때는 조금씩 진심과 진지함을 보여드리려고 했다. 운 좋게 (이것들이) 잘 어우러져서 잘 봐 주신 게 아닌가 한다"고 전했다.
윤박이 꼽은 기억에 남는 장면은 인도 여행에서 돌아온 이강이 라디오국장 강희석(이원종 분)과 다시 만나는 장면이었다. (사진='라디오 로맨스' 캡처)
'말과 행동에 목적성이 있었던' 이강 캐릭터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라디오국장 강희석(이원종 분)과 다시 만났을 때다. 두 사람의 전사가 드라마 안에서 자세히 다뤄지진 않았지만, 그 장면 하나로 시청자들도 이해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인도에서 돌아와서 국장님하고 처음 만났을 때의 씬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사실 국장하고 이강하고의 관계성을 전사를 보여주는 씬들은 없었잖아요. 국장님 책상에 그냥 걸터앉는데, 국장님도 아무렇지 않게 그 무례함을 받아주시고. 이 사람들의 역사성이 보였다고 생각해요. 이원종 선배님 처음 만난 날 찍은 건데 그냥 다 받아주시는 거예요. 제가 뭘 하든 다 받아주시겠다고 생각했어요. 너무 감사하게도 이강이라는 인물의 스타트를 잘 찍은 것 같아요. 종방연 때 그 감사함을 전해드렸더니 '나도 그 씬이 너무 좋았다'고 말씀해 주시더라고요."
윤박은 어떤 것에 미쳐서 열심히 움직이는 건 이강과 닮았다고 말했다. 혹시 본인이 괴짜 같다고 느끼냐는 질문에 "저는 누구보다 진지한 사람"이라며 "저는 정상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해 취재진을 폭소케 했다.
◇ 송그림 향한 3년 순애보… "전 못 기다린다"극중 이강은 일할 때만큼은 철두철미한 성격이지만 아닌 척하며 은근히 사람들을 챙기는 인물이었다. 특히 3년 동안 짝사랑해 온 송그림을 향한 마음은 더욱 애틋했다.
선배들의 간식거리를 사 오는 등 허드렛일만 하던 막내작가 송그림에게 "너도 작가"라며 격려해 주는가 하면, 글 안에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녹아있다고 구체적인 칭찬을 해 주고, 잘 자랄 때까지 믿고 기다려줬다.
그러나 마음 표현은 늦었다. "미안한데 송그림, 나 많이 늦었겠지?"라는 고백은 그가 많은 시간을 기다려왔다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윤박은 "좋아하는 여자를 짝사랑하는 건… 저는 3년 동안 못 기다린다. 바보지, 그쵸? 길죠? 전 좀 더 적극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유일하게 사랑이 이뤄지지 않은 결말을 두고는 "이강한테는 제일 좋은 엔딩이었다는 생각이 든다"며 "인도에서 돌아온 게 (드라마의) 시작이었다면 티베트로 간 것도 다시 시작하기 위한 과정이 아니었을까"라고 설명했다.
윤박은 극중 송그림 역을 맡은 김소현을 짝사랑하는 이강 역을 맡았다. 사진은 3년 동안 감춰왔던 마음을 고백하는 장면 (사진='라디오 로맨스' 캡처)
메인 커플인 지수호-송그림을 미는 팬들만큼이나 이강-송그림이 지지받았던 데에는 윤박의 연기가 한몫했다. 그는 기억에 남는 댓글이나 칭찬을 묻자 "다음엔 멜로 드라마 남자주인공 시켜라, 하는 게 기억난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윤박의 차기작은 멜로일까. 그는 "아쉽게도 아니다"라며 "여러 조건이 맞아야지 (멜로도) 할 수 있는 거라서, 어떤 역할이든 멜로든 아니든 전작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함께 연기하고 싶은 상대역을 꼽아달라는 질문에는 "누구든 감사하다"며 웃었다. 윤박은 "어떤 분이든 감사한데, 사실 저는 어떤 분이랑 했을 때 서로 잘 맞는지가 중요하다고 본다"고 전했다.
◇ 라디오 DJ 생각은? "일일 DJ도 좋아"'라디오 로맨스'는 청취자들을 만나는 과정을 방송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조명한 드라마였다. 작가, PD, DJ, 게스트 등이 각자의 자리에서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가 담겼다. 극중에서 '제작진' 입장에 선 경험이 어땠는지 궁금했다.
윤박은 "시청자들이나 청취자들은 완성된 걸 보니까 어떤 과정을 겪는지는 잘 모르지 않나. 한 시간, 두 시간 방송을 내놓기 위해 정말 많은 희생과 노력이 필요하고 치열한 작업이 있다는 걸 알게 됐다. 모든 과정이 쉬운 게 아니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배우 윤박 (사진=JYP엔터테인먼트 제공)
'라디오 로맨스'에서는 이강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가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이강은 심의위원들에게 "라디오를 쥐뿔도 모르는 평가를 듣고 있을 이유가 없다"며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윤박은 "그 대사가 좀 세지 않았나. 심의위원으로 연기하는 선배님들도 다 처음 뵙는 분들이었고 아침 촬영 두 번째 씬이었다. 리허설 때부터 막 윽박지르는데 너무 죄송한 거다. 제가 봐도 버릇없어서… 다시 들어가서 죄송하다고 했다"고 뒷이야기를 들려줬다.
이번 작품을 통해 라디오 DJ에 관심이 생기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너무 하고 싶다. 시간대는 상관없다. 고정이 아니어도 일일 DJ라도 한 번쯤은 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라디오라는 매체가) 되게 매력적인 것 같다"고 밝혔다.
(노컷 인터뷰 ② 윤박의 인생 목표는 "80살까지 연기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