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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왕따…아홉 소녀들의 놀이는 왜 '잔인'해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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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리뷰] 연극 ‘아홉소녀들’

극단 프랑코포니 창단 10주년 기념 연극 '아홉소녀들'.

 

아홉 소녀가 한 공간에서 이야기를 지어내며 놀고 있다. 한 소녀가 어느 상황을 이야기하면, 다른 소녀가 이야기를 덧붙인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지어내는 이야기의 내용이 심상치 않다. 정말 아이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잔인'하다.

“내가 빨간 립스틱과 짧은 검정 원피스를 들고 욕실로 가.” “짧아?” “좀 많이는 아니고, 무릎 바로 위까지.” “너 그 원피스 입고 벌써 세 번이나 강간당했어” “뭐?” “그 원피스 너무 짧잖아.” “그런 옷 입었다고 강간당한다면, 뭔가 다른 게 있을 거야.” “다른 게?” “네가 꼬리를 쳤겠지.” “...(눈물)...” “야밤에 혼자서 그렇게 옷을 입고서….”

소녀들의 이야기에는 다양한 주제가 있다. 페미니즘, 성폭력, 차별, 비만, 동성애, 죽음, 이주민 문제 등. 소녀들이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고, 작가가 상상해서 지어낸 이야기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실제로 아이들이 이같은 놀이를 한 것이 모티브다.

극단 프랑코포니 창단 10주년 기념 연극 '아홉소녀들'.

 

극을 쓴 프랑스의 극장가이자 연출 겸 배우 상드린느 로쉬(Sandrine Roche)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연극 워크숍에서의 경험을 통해 이 극본을 쓰기 시작했다. 작가는 다큐 영화감독으로 유명한 클레르 시몽이 만든 학교 운동장에서의 아동들의 잔인성에 대한 다큐 ‘레크리에이션’(1992)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경찰 둘이 버스를 세우고 올라오더니 너네보고 내리라는 거야.” “누구한테.” “너희 셋한테.” “근데 왜 우리야.” “우리 아무 것도 안 했어.” “너희들 여기 사람이 아니잖아.” “우리가 여기 사람이 아니라고?” “난 너네 옆집에 살잖아!” “신분증.” “어?” “너네 신분증, 신분증 보자고 하잖아!” “없어” “나도” “그럼 모두 경찰서로 그러지 집에는 내일 비행기로.”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다. 다시 말해 어른들의 모든 말과 행동은 아이들에게 스며든다. 어른들의 폭력적 언어와 행동이 아이들에게 되물림된다. 그것이 어른이 의도한 게 아닐지라도 말이다. 결국 성인들의 폭력은 이미 어린 시절, 아동이나 미성년들끼리의 폭력에서 그 근원을 찾아볼 수 있다.

극단 프랑코포니 창단 10주년 기념 연극 '아홉소녀들'.

 

의자와 같은 받침대 두어 개만 있는 빈 무대 위에서 아홉 소녀들이 보이는 놀이는 처음에는 순진하게만 보인다. 하지만 갈수록 위험 경고 신호 같은 아동 폭력(잔인성)의 문제를 가감 없이 드러낸다. 이 과정을 통해 연극이 전하는 메시지는 작품 속의 익명의 인물들(아홉 소녀)은 크는 것이 두렵고, 너무 마초적인 사회에서 여자가 되는 것이 두렵다고 고백한다.

아이들은 이야기는 지어낸 허구지만, 그 기반은 결국 현실이다. 아이들이라는 프리즘을 통과해 나온 각각의 이야기는 우리 성인 자신이 들어있는 현실 세계의 이야기인 것이다. 또한 여성의 이야기 같지만 남성과 무관하지 않은, 인간의 문제 차원에서 질문을 던진다.

극단 프랑코포니 창단 10주년 기념 연극 '아홉소녀들'.

 

이러한 내용 때문일까. 연극 '아홉소녀들'은 최근 전 사회적으로 불고 있는 ‘미투 운동’과 함께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극단 프랑코포니 임혜경 대표는 “총 23장의 이야기를 여러 각도로 자유롭게 볼 수 있다”며, 특정 주제로만 보는 것에 대해 우려했다. 그는 “보편적이면서 동시대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여러 문제를 우리가 공감하고 나눌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해 1년 전에 선택한 작품이다”고 덧붙였다.

배우들 역시 “남녀 이야기로 분류하는 공연이 아니다”며 “여성 피해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만, 결국은 한 인간의 문제이자 모든 인간이 겪는 상황이다. 열린 시선으로 봐 달라”고 당부했다. 그런 의미에서 아홉소녀 중에는 남자 배우들이 참여한다.

연극은 3월 22일 시작해 다음 달 8일까지 대학로 동양예술극장에서 공연한다. 프랑스 연극을 주로 보이는 극단 프랑코포니의 창단 10주년 기념공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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