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V-리그 출범 후 4차례나 챔피언결정전에 오르고도 우승 경험이 없는 대한항공은 5번째 도전 만에 즐기는 법을 배웠다.(사진=한국배구연맹)
고대 중국의 사상사 공자가 쓴 논어 옹야편에는 지지자(知之者) 불여호지자(不如好之者), 호지자(好之者) 불여락지자(不如樂之者)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알기만 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사람만 못하고, 좋아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만 못하다는 의미다.
도드람 2017~2018 V-리그 남자부 챔피언결정전 1, 2차전에서는 대한항공이 이를 잘 보여줬다.
대한항공은 지난 24일 열린 1차전에서 풀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패한 뒤 26일 2차전에서 반격에 성공했다. 2차전도 내용 면에서는 접전이었지만 결과적으로 3세트 만에 마침표를 찍었다.
비결은 무엇일까. 박기원 감독도, 선수들도 ‘즐겼다’는 공통된 답변을 내놨다.
2차전 승리 후 만난 박기원 대한항공 감독은 “(1차전 패배 후) 선수들에게 특별히 부탁한 건 없다. 그냥 서로가 믿고 즐기자고 했다”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라고 했다. 대신 경기 중 나오는 범실은 너희 책임이 아니고 감독 책임이니까 과감하게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공격적인 배구를 하자고 했다”고 말했다.
박기원 감독은 “배구는 완벽하게 준비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안전하게 하면 남는 게 없다. 감독이 위험 부담을 안고 밀고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한항공이 범실 비율이 높은 강력한 서브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였다.
대한항공 유니폼을 입고 우승을 하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을 밝혔던 곽승석은 2017~2018시즌 V-리그 남자부 '봄배구'를 가장 즐기는 선수다.(사진=한국배구연맹)
하지만 대한항공은 지난 2차전을 제대로 즐겼다. 자연스레 몸에 힘이 빠졌고, 무조건 강공으로만 밀어붙였던 서브의 강약 조절이 가능해졌다. 현대캐피탈이 당황하는 모습에 대한항공은 더욱 흥이 붙었다. 결국 1차전에 39개나 됐던 범실은 22개로 크게 줄었다. 승리가 당연했다.
적장마저도 엄지를 치켜들었던 대한항공의 곽승석은 “1차전 패배 후 훈련을 하다 공을 때렸는데 아웃이 됐다. 그래서 내가 지석이한테 ‘이게 바로 어제 너의 모습이었다’고 농담했다”면서 “1차전 지고 나서 감독님도 이겨야 한다는 말 대신 그냥 즐기라고만 하신다. 우리를 믿고 그런 말씀을 해주시는 것 같다”고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