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종영한 JTBC 월화드라마 '그냥 사랑하는 사이'에서 하문수 역을 맡은 배우 원진아 (사진=유본컴퍼니 제공)
배우 원진아는 아직 대중에게 낯선 배우다. 2015년부터 독립영화에 출연해 왔고, '섬, 사라진 사람들'이나 '밀정'에서도 작은 역할로 얼굴을 비쳤다. 2017년은 특별했다. 12월 11일 첫 방송된 JTBC '그냥 사랑하는 사이'는 그의 첫 드라마였고, 같은 날 개봉한 영화 '강철비'는 그가 비중 있게 출연한 첫 상업영화였다.
아직 많은 것들이 알려지지 않은 만큼, 궁금한 게 많았다. 원진아가 생각하는 '그냥 사랑하는 사이'나 '사랑'이 어떤 모양인지 우선 듣고 싶었다. 또, 다소 늦은 나이에 배우의 길을 택한 배경부터, '연기'의 어떤 맛에 마음을 뺏겨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도 알고 싶었다.
지난 8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CBS 사옥에서 원진아를 만났다. '그사이'에서 만난 동료들 칭찬에서부터, 연기를 받아들이는 현재의 자세까지 다채로운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노컷 인터뷰 ① '그사이' 원진아 "문수는 강한 척하지만 아프고 여렸다")
일문일답 이어서.
▶ '그사이'는 방송 당시 겨울에 어울리는 깊은 멜로라는 점이 두드러졌다. 그만큼 사랑 이야기의 비중이 컸다. 잘 자란 멋진 어른 주원(이기우 분)이 아니라 자꾸 본모습이 튀어나오게 만드는 불편한 강두(이준호 분)와 사랑에 빠진다. 강두의 어떤 면에 끌렸다고 보나.그건 저도 자세히 모른다. 언제 (둘이) 사랑에 빠졌는지 정확하게 알려주시지 않았다. 근데 그게 현실적인 것 같다. 자꾸 눈앞에 보이고 신경에 거슬리는 짓을 하니까 '재 뭐야?' 하다가 우연히 사고를 같이 겪어서 하룻밤을 고생한 후에는 전우애가 생겨 친구가 됐다. 기억은 못 하지만 같은 사고를 겪었다는 데서 같은 슬픔을 느끼기도 하고. 뾰로롱 하고 사랑에 빠지는 게 아니라 연기하는 저희도 어느샌가 좋아져 있는 감정이 돼 있으니 신기하고 재밌었다.
▶ 상대역인 이준호는 본인(원진아)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어서 인스타그램에 들어가 사진을 보며 친밀도를 키웠다고 했다. 로맨스 연기를 위해 노력한 부분이 있다면.준호 선배는 저를 모르지만, 저는 이미 예능에 나오시는 것도 다 봤고 작품도 많이 봤다. '감시자들', '협녀', '스물'… ('그사이' 때문에) 일부러 찾아본 게 아니라 원래 다 봤던 거다. '스물'에서 너무 연기를 잘하시는 거다. 원래부터 배우였던 것처럼 느껴질 만큼. (만나기 전에는) 흥이 있을 줄 알았는데 물론 흥도 있지만 좀 더 차분하고 성숙하셨다. 한두 살(이준호는 29살, 원진아는 28살이다)밖에 차이 안 나는데도 불구하고 어른스럽고 생각도 깊어 보이셨고 집중력도 좋았다. 또래 배우에게 바로 옆에서 배우는 게 큰데, 그런 면에서 무척 좋은 기회였다고 본다.
▶ '그냥 사랑하는 사이'라는 드라마 제목이 인상적이었다. 원진아가 생각하는 '그냥 사랑하는 사이'란 뭘까.
어떤 정해진 이유를 부과할 수 없는 게 매력인 것 같다. 그냥 사랑한다는 건 무난하게 사랑한다는 것일 수도 있고 다 필요 없이 그냥 너를 사랑한다는 것일 수도 있다.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다 다를 수 있다고 본다. 저는 이 제목이 사람마다 다 다르게 와닿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좋았다.
극중에서 문수(원진아 분)와 강두(이준호 분)은 서로 공통된 아픔을 공유한다는 것을 차츰 알게 되며 사랑에 빠진다. (사진=셀트리온 엔터테인먼트 제공)
▶ 그럼 '아, 사랑이 왔구나!' 싶은 순간은 언제인가.자연스럽게 정이 되고 그게 사랑이 되는 것 같다. 첫눈에 반한 적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다를 순 있지만, 오래 보고 천천히 스며드는 게 사랑이지 않나. 그래서 이 드라마가 좀 더 좋았다.
▶ 이번에 참 많은 배우와 처음 연기하게 됐다. 옆에서 지켜보니 어땠는가.준호 오빠는 집중력이 되게 좋으시다. 역할 때문에 자기를 가둬두어서 예민했다는 인터뷰를 봤는데 현장에선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준비를 되게 철저히 하셨더라. 기우 오빠나 한나 언니는 역은 차가웠는데 막상 제일 유쾌하셨다. 농담도 잘하시고. 오실 때마다 분위기를 팡팡 띄워주셔서 좋았다. 희본 언니는 아는 언니 같았다. 첫 촬영 때는 말이 없으셔서 겉으로는 발랄한 성격이 아니시구나 싶었는데, 현장에서는 저를 귀여워 해주시고 따로 문자도 주셨다. 만나서 놀자고. 실제로 편하지 않으면 연기가 잘 안 나오는데, (언니가) 다가와 말도 걸어주셔서 편하게 촬영했다.
나문희 선생님은 이렇게 빨리 만나 뵐 지 생각도 못했다. ('아이 캔 스피크'로) 가장 핫하신 순간에. 대사량도 되게 많은데 그걸 다 감당하시는 것도 대단했다. 몇십 년 동안 쌓아오신 내공인가 싶었다. 첫 여우주연상 타고 오신 날이 저와의 첫 촬영 날이었다. 그때도 현장의 위치를 하나하나 다 생각해 오셨다. 하루에 찍어야 하는 분량이 많은데 어느 하나 흐트러짐 없이 완벽하게 하시는 걸 보고 감탄했다. 종방연 때 매니저님이 대신 오셨는데 너무 드라마 잘 봤다고 전하셨다.
▶ 나문희같이 먼저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간 '여자 선배'가 있으면 후배로서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아무래도 저는 이제 시작하는 입장이고 앞으로 연기 생활을 계속할 것이지 않나. 선배님처럼 할 수 있는 배우가 될까 하는 생각도 하면서 자기 자신을 경계하게 된 것 같다. 건강하고 파릇파릇한 기운이 있다고 해서, 일을 시작할 수 있거나 계속해 나갈 수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선생님은) 왔다 갔다 하기도 힘드시고 체력적으로 어려움이 있으실 텐데도 견디시는 걸 보고 조금 힘들다고 지쳐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보고 배울 수 있는 선배들이 많다는 게 되게 힘이 된다.
▶ 연기자라는 꿈을 언제부터 갖게 되었는지 궁금하다.입시를 준비하다 실패했다. 제가 첫째 딸이다 보니까 하고 싶은 말을 좀 묵혀두는 편이어서, 하고 싶은 걸 시켜달라고 부모님께 말하지 못하겠더라. 다른 일을 하던 중에 '이제라도 한번 해보고 싶은 걸 하지 않을래?'라고 해서 부모님께 '그럼 저는 연기를 하겠다'고 해서 서울로 올라왔다. 시작한 지 3~4년은 된 것 같다.
원진아는 지난해 12월 개봉한 영화 '강철비'에서 려민경 역을 맡았다. (사진=㈜NEW 제공)
▶ 연기의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나.처음 연기의 매력을 느꼈던 게 학원에 다녔을 때인 것 같다. 그동안은 남이 안 볼 때 혼자 연습하는 게 다였는데, 내가 과연 사람들 앞에서 남의 말을 하며 진짜처럼 느끼고 또 창피해하지 않을 수 있을까 걱정했다. 작은 무대를 만들어 두고 거기에 올라가서 연기했다. 다 나를 보고 있어서 두근거렸는데 첫 대사 한 마디를 내뱉으니까 창피한 게 사라진 거다. 이 사람들이 날 보고 있다는 게 재밌더라. 부끄럽지도 않고. 그때 화내는 연기를 했는데 하다 보니까 진짜 화도 나고 다 재밌었다. 무언가를 잘한다는 칭찬을 이때 처음 들은 것 같다. 공부도 그럭저럭 이었고 달리기도 항상 꼴찌였는데 선생님이 '얘들아, 진아 잘한다. 그치?' 라고 하신 게 너무 좋았다.
▶ 평소 당근이 더 먹히는 편인가. 아니면 채찍이 더 맞나.
저는 둘 다인 것 같다. 칭찬을 곱게 못 듣는 성격이다. 못한다고 하면 더 못할까 봐 잘한다고 하시는 것 아닐까, 하는. 그렇다고 채찍질만 하면 '아, 나는 연기하면 안 되는 건가' 생각한다. 둘이 적절히 있을 때가 좋은 것 같다.
▶ 낮은 목소리가 인상적이다. 혹시 자신의 트레이드마크로 삼고 싶은 부분이 있는지.감사하다. (웃음) 저는 목소리가 사근사근했으면 좋겠다 싶었다. 말을 하면 화났냐고 한 적이 있어서 '내 목소리가 좀 사납나? 너무 남자 같은 목소리를 내나?' 했는데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지금은 좋게 보고 있다.
예전에는 화려하게 예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문수 역할이나 민경(영화 '강철비'에서 원진아가 맡은 역)이를 하면서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함'이 있는 게 보는 분들 입장에서 몰입하기는 좋은 것 같아서 만족하고 있다.
'그사이' 캐스팅됐을 때 드라마 주인공 치고 너무 평범하게 생긴 것 아니냐는 얘기가 많았다. 근데 그래서 문수를 문수로 봐 주지 않으셨을까. 어딘가에 늘 있을 것 같은 친근감이 있어서.
▶ 설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새해 소망은.영화 '돈'이 올해 안에 개봉할 것 같다. 작년 2월부터 올해 2월까지 쭉 일했지만 그 전에 많이 쉬었으니 쉬고 싶단 생각은 없다. 일을 열심히 하고 싶다. 이제 일을 시작했으니 빨리 다른 작품을 만나서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자리가 주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