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냈다' 10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남자 1500m 결승전에서 임효준이 금메달을 확정한 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 이한형 기자
처음에는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사람 같지 않았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다소 들뜬 목소리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러나 고마운 사람들을 떠올리면서는 울먹였다. 생사의 고비를 넘길 수 있도록 도와준 은인들이기 때문이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선수단에 첫 금빛 낭보를 안긴 임효준(22 · 한체대)이다. 그는 10일 강원도 강릉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쇼트트랙 남자 1500m에서 2분10초485의 올림픽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싱키 크네흐트(네덜란드)에 불과 0.07초 앞선 금메달이다. 우승을 확정한 뒤 두 주먹을 불끈 쥔 임효준은 빙판 시상대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오르는 기쁨을 만끽했다.
이후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 들어선 임효준은 "지금 제가 1등을 했다는 게 믿기지가 않아요. 실감이 잘 안 난다"는 소감을 밝혔다. 어안이 벙벙한 것이다. 임효준은 "지난해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월드컵 1차 대회 1등을 했을 때가 솔직히 더 기분이 좋았던 거 같아요"라면서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올림픽이) 너무 큰 무대라 실감이 안 나요"라고 했다.
경기 전에만 시쳇말로 쫄았다. 임효준은 "정말 너무 많이 떨렸는데 예선을 하고 나서 긴장이 많이 풀렸다"면서 "다른 선수들이 타는 걸 봤는데 생각보다 좋지가 않아서 오히려 자신감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김선태) 감독님한테도 결승만 가면 정말 자신있다고 뭐 하나 할 거 같다고 말씀드렸다"면서 "내 말대로 돼서 정말 기쁘고 감사하다"고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실감이 안 나요' 임효준이 10일 평창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에서 금메달을 따낸 뒤 기자회견에서 미소를 지으며 취재진의 질문을 듣고 있다.(강릉=노컷뉴스)
곧바로 대표팀에 공을 돌렸다. 임효준은 "시상대 맨 꼭대기에 섰지만 내가 잘해서라기보다 주위에서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다"면서 "감독, 코치님, 팀 코리아 16명 누구보다 열심히 준비하고 서로 도왔는데 팀원들에게 너무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함께 경기한 황대헌과 서이라 형이 메달을 따지 못했지만 남은 경기와 특히 계주에서 꼭 금메달을 따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실감이 안 난다"고 들떴던 목소리는 곧바로 떨렸다. 바로 죽을 만큼 힘겨웠던 부상과 재활, 그리고 극복 과정을 떠올리면서다. 임효준은 조금은 갑자기 "정말 너무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며 울먹거렸다. "지금까지 부상도 너무 많았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도와주신 분들이 너무 많다"는 설명과 함께다.
임효준은 초등학교와 중학생 시절 차세대 에이스로 기대를 모았다. 4학년 때부터 6학년 형들을 제치고 전국대회를 제패했고, 중학교 3학년이던 2012년에는 동계유스올림픽에서 금, 은메달을 안고 왔다. 그러나 이후 발목과 손목, 정강이에 허리뼈까지 부러지는 등 무려 7번이나 수술대에 오르는 아픔을 겪었다.
특히 2년 전이 최대 고비였다. 임효준은 "발목도 많이 부러지고 특히 2년 전 허리 골절이 됐을 때는 더 하다가는 죽겠다 생각에 정말 그만두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당시 (한체대) 팀 후배들이 '형은 정말 이거 하다가 죽겠어' 이렇게 말하더라"는 일화도 들려줬다.
'이렇게 뼈가 붙었죠' 10일 강릉 아이스아레나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남자 1500m 결승전에서 첫 금메달을 획득한 임효준이 김선태 감도과 감격의 포옹을 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
하지만 "평창올림픽에 나서겠다는 명확한 꿈 하나로 버텼다"는 임효준이다. 2006년 토리노올림픽 3관왕에 오른 당시 안현수(러시아명 빅토르 안)를 본 임효준은 자신도 평창에서 쇼트트랙 스타가 되는 꿈을 키웠다. 임효준은 "지난달 함께 훈련했던 현수 형이 '너도 하던 대로만 하면 금메달을 딸 수 있다'고 조언했다"면서 "나도 그런 선배가 되고 싶었다"는 꿈을 밝혔다.
물론 혼자의 힘으로만 죽을 만큼 힘든 시련을 이겨낸 게 아니었다. 지치고 힘들어 포기하고 싶었던 그를 붙들어준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임효준은 이날 금빛 결실을 맺은 뒤 "그래도 내가 1등을 할 수 있던 것은 대표팀과 한체대 동료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강조한 것이다.
'일곱 번 넘어져도'가 아니라 '부러졌던' 임효준. 생사의 고비를 숱하게 넘어선 그에게, 더군다나 그 혹독한 과정을 함께 극복해냈던 동료들이 곁에 있었던 그에게,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올림픽은 오히려 더 쉽게 느껴진 것은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