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돌풍의 주역 박항서 감독(오른쪽)과 이영진 수석코치. (윤창원 기자)
"선수들 체지방이 너무 부족하더라고요."
베트남을 흥분의 도가니로 만든 박항서 매직의 힘은 '먹이기'였다. 축구 선수답지 않은 베트남 선수들의 체격을 보완하기 위해 먹이고, 또 먹였다. 덕분에 힘이 붙은 베트남은 사상 첫 23세 이하(U-23) 아시아 챔피언십 준우승이라는 역사를 썼다.
박항서 감독은 8일 귀국 기자회견에서 "지난해 10월25일 베트남에 공식 부임하면서 23세와 성인 대표팀을 겸직하기로 했다. 아프가니스탄전에서 데뷔를 했고, 11월부터 준비를 했는데 이런 결과는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베트남 귀국 후 환영과 격려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많았다. 앞으로 더 노력해야겠다는 책임감도 느낀다"고 말했다.
국가대표 코치 및 K리그 감독을 역임했던 박항서 감독은 지난해 10월 내셔널리그 창원시청을 떠나 베트남 지휘봉을 잡았다.
사실 베트남 감독직에는 300명 이상이 지원했다. 유럽은 물론 일본, 한국 지도자들이 대거 감독직을 노렸다. 치열한 경쟁에서 박항서 감독이 웃을 수 있었던 힘은 역시 풍부한 경력이었다.
박항서 감독의 에이전트사 이동준 대표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성과를 냈던 코칭스태프였고,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에서도 동메달을 땄다"면서 "또 성품과 전술 철학 등을 어필했다. 기본적으로 무대가 크든, 작든 성과를 냈다. K리그 상주를 두 번 승격시켰고, 2부리그 최고 승률 감독이기도 했다. 내셔널리그에서도 성과를 냈다"고 설명했다.
도전 정신, 또 후배들을 위한 시장 개척으로 베트남 지휘봉을 잡았지만, 쉽지 않은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단순히 베트남 선수들의 작은 체격이 아니라 저체중, 저체지방, 빈약한 상체 근육 등이 눈에 띄었다.
이영진 수석코치는 "베트남 선수들이 신체조건이 조금 작고, 저체중이 많았다"면서 "작은 것은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했다. 다만 체중이 더 나가서 파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박항서 감독도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베트남축구협회와 현지 의사, 그리고 배명호 피지컬 코치와 상의해 선수들을 먹였다. 또 일과 시간 후에는 상체 근육을 키우기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을 집중적으로 시켰다.
박항서 감독은 "인바디를 측정했는데 체지방이 부족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또 오른발, 왼발의 밸런스가 무너져 부상 위험이 있다고 했다. 마지막은 상체 근육이 부족했다"면서 "합숙을 하면 나는 원래 호텔에서 자는데 센터에서 자겠다고 했다. 대신 먹는 것을 내 요구대로 해달라고 했다. 우유, 두부, 생선, 고기 등 고단백질을 계속 공급했다. 밤 9시30분부터 30~40분 동안 일주일에 4~5회 상체 운동만 시켰다"고 웃었다.
결승까지 오른 만큼 내심 우승까지도 노렸다. 하지만 중국에 내린 눈발에 박항서 매직도 멈췄다. 박항서 감독은 변명이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분명 영향은 있었다.
박항서 감독은 "추위와 싸움이라 생각했는데 열흘 전부터 추워서 적응을 잘 했다. 결승전을 하려는데 눈이 많이 왔다. 베트남 선수들은 사실 알루미늄 스터트 축구화를 안 신는다. 눈이 오는 바람에 상하이까지 가 긴급 공수했다"면서 "전날 눈이 왔는데 신기해서 눈싸움을 하더라. 미끄럽기에 우즈베키스탄처럼 큰 선수들이 단점이 더 많다고 말했다. 눈 때문에 졌다는 변명은 하기도, 듣기고 싫다고 했다"고 말했다.
올해 일정은 빡빡하다.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이 있고, 12월에는 스즈키컵(동남아시아 축구선수권)이 있다. 내년 1월 아시안컵도 있지만, 베트남에서는 스즈키컵이 먼저라는 게 박항서 감독의 설명.
박항서 감독은 "3월 베트남 리그를 시작하니까 새로운 선수도 보고, 23세 대표팀과 병행해서 3월 요르단전을 치를 계획"이라면서 "8월 아시안게임도 중요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12월 스즈키컵이다. 협회와 스케줄을 짤 때도 스즈키컵을 가장 우선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