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미소니언박물관 소장 고사진(위쪽), 스미소니언 소장 고사진 기반 재현사진(검정 바탕 고색 단청) (사진=문화재청 제공)
시작은 125년 전인 1893년에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오래된 흑백 사진 한 장이었다.
하얀색 바탕에 검정색 글씨로 내걸린 광화문 현판의 고증이 잘못됐다고 주장한 한 시민단체에서 오래된 흑백 사진을 찾아낸 것이다.
지난 2016년 3월 '문화재제자리찾기' 혜문 대표는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이 소장한 광화문 흑백 사진을 공개하며 고증 논란을 제기했다.
동경대 소장 고사진(위쪽), 동경대 소장 고사진 기반 재현사진(검정 바탕 고색 단청) (사진=문화재청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사진(위쪽)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사진 기반 재현사진(검정 바탕 고색 단청) (사진=문화재청 제공)
그전에 사진은 2장이 남아있었다. 일본 동경대 소장본(1902년)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1916년)으로 바탕색이 밝고 글씨색이 어둡게 나타는데 이 사진을 보고 현판색을 하얀색 바탕 검정색 글씨로 추정했다.
하지만 가장 오래된 스미소니언 소장본은 반대로 바탕색보다가 글씨 부분이 어둡게 나타났다.
2010년 9월 현판이 내걸린지 불과 2개월만에 균열이 생기면서 질타를 받은 문화재청은 엎친데 덮친격으로 새로 발굴된 흑백 사진 1장에 색깔 논란에 휩싸이게 됐다.
문화재청은 논란을 인정하고 본래 색깔 찾기에 나섰다. 색 찾기 프로젝트에는 중앙대학교 산하 협력단이 뛰어들었고 무려 10개월의 기간, 8000만 원의 예산이 소요됐다.
문화재청과 중앙대가 선택한 방법은 세 가지 흑백사진을 똑같은 각도에서 색깔별로 재촬영해보는 것이었다. 바탕색은 검은색, 옻칠, 흰색, 코발트색으로 글자색은 금박, 금칠, 검은색, 흰색, 코발트색으로 가정하고 실험용 미니어쳐 현판을 제작했다.
촬영 기법도 옛 방식 그대로여야 했다. 당시 방식으로 유리건판을 제작하고, 건판카메라로 촬영에 들어갔다. 촬영 과정에 '브롬화 은'이라는 독성 물질이 노출될 우려가 있어 우주복 같은 방독복을 입고 수작업을 해야 했다.
경우의 수를 따져 모두 촬영해본 결과 글자색이 어둡게도, 밝게도 나올 수 있는 것은 검은색 바탕에 금박이었다. 애초 고증이 잘못됐음이 오랜 논의 끝에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이다.
문화재청은 고증 실패라는 불명예를 떠안게 됐지만, 논란을 인정하고 과학적인 기법을 동원해 본래 색을 제대로 밝혀내면서 문화사적으로 하나의 선례를 남겼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흑백사진을 당시 그대로 재연해 원래 색을 찾는 시도는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처음"이라며 "관계자들이 독성이 노출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끈질긴 작업 끝에 본래 색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