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제가 1등이었는데 채용 전형에도 없던 세평 조회로 떨어졌다고 하더라고요. 거기다 세평 조회를 다 한 것도 아니고, 똑같이 전 직장 경력이 있는데도 합격된 분은 안하고 저랑 2등 지원자만 세평을 해서 떨어졌더라고요. 누가 봐도 작위적이게 얼렁뚱땅 최종 결재가 아무렇지 않게 술술 진행되는 걸 보면서 과연 내가 정말 다니고 싶었던 금감원이 맞나 싶고… 어이가 없었던 마음이 큽니다."지난 '2016년 금융감독원 5급 신입 공채' 금융공학 분야에 지원해 합격선에 들고도 채용 비리로 인해 떨어진 피해자 정모(32)씨가 금감원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데 이어 또 다른 피해자 오모(35)씨도 이번 주에 소송을 제기하기로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초 공공기관 채용 비리 전수 조사 중간 결과 발표 이후 비리에 연루된 임직원에 대해 민·형사상 책임을 묻고 부정 채용 직원에 대해서도 채용 취소 등 국민이 납득할 만한 조치가 취해져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금감원은 피해자 소송 확대에 대한 공식 입장으로 "재판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며 소극적인 입장으로 일관했다.
금감원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진행하기로 한 오씨는 2일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처음엔 채용 비리의 당사자가 나라는 사실이 황당했고 억울했다"면서 "현재 직장도 있고 혼자 헤쳐나가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상당히 많이 고민했다. 그러나 감사원 감사보고서를 읽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억울함을 감출 수 없어서 소송을 결심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감사원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오씨가 지원한 2016년 금감원 5급 신입 공채(2015년 9월~12월 채용 진행) 금융공학 직렬 채용인원은 2명이었다. 최종 면접에 올라온 사람은 오씨를 포함해서 3명. 오씨는 최종 면접 결과 1등을 했지만, 갑자기 시행된 세평 조회로 인해 떨어졌다.
금감원은 최종 면접 결과 1등과 2등을 한 지원자는 떨어뜨리고 3등 지원자를 합격시켰다. 이 과정에서 금감원은 3등 지원자가 당초 대학을 허위 기재했는데도 묵과했고, 서울 소재 대학을 나왔는데도 불구, '지방인재' 혜택을 줬다.
뿐만 아니라 금감원은 3등 지원자가 전에 직장을 다녔지만, 평판 조회를 하지 않았다. 보고서에 드러난 정황만 봐도 3등 지원자에게 유리하게 전형 과정을 바꾸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오씨는 채용 절차에도 없었던 세평 조회에 대해 강한 문제제기를 하며, 감사원의 감사 결과만 봐도 채용 비리 행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인데 금감원이 이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금감원은 세평조회가 인사권 재량이라고도 하더군요. 그렇게 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최종 면접 결과가 난 이후인데 채용 전형에도 없던 세평 조회를 갑작스레 도입한 점, 신입 채용에서 직장 경력이 있는 지원자들에게 또 하나의 탈락 가능성을 줄 수도 있어 특정 일부에게만 불리한 제도인 점을 비추어 볼 때, 누가 과연 인사권의 재량으로 인정할까요?또 세평의 구체적 증빙 부재와 이러한 내용을 아무 비판 없이 받아들인 점도 놀라웠습니다.증빙 자료가 남아 있지 않는데 실제 세평 조회를 실시했는지 합리적 의심을 했어야 하는게 아닐까요?"2년이 지난 이야기지만, 오씨에게 금감원 채용 비리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이다.
"32세의 적지 않은 나이로 직장을 퇴사하고, 1년 동안 금감원 채용 시즌에만 몰두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한 덕분에 자신도 있었고 실제로 최종까지 올라갔고요. 하지만 최종 불합격 소식을 듣고 당시는 상당히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다시 지금 직장에 열심히 다니고 있었던건데 이번에 채용 비리 당사자가 저라는 소식을 들으니 또 한 번 무너지더라고요.2년이 지나 무뎌진 줄 알았는데, 채용 비리 내용을 접하고 전에 공부했던 것들과 스터디원들과 나눴던 대화들을 보는데 '정말 그때 열심히 했구나' 싶으면서 억울한 감정이 많이 들고요. 세평 하나로 수년 간의 노력과 꿈, 그리고 필기시험과 면접을 통한 검증까지 모두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릴만한 건지…."채용 비리 피해자의 소송은 확대되고 있지만 금감원의 입장은 그대로다. 오씨는 "마지막으로 변호사에게 소송 계약서를 보내기 전에 금감원 인사팀에도 신원을 밝히고 입장을 물었더니, 여전히 수사 중이라 결과 나와야 진행이 될 것 같다는 말만 들었다"면서 "피해 구제책도 물었지만 역시 수사 중이라는 말만 해서 '아 역시 힘들겠지만 소송 뿐이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금감원 채용 비리 피해자 손해배상 소송을 맡고 있는 정민영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는 "금감원 채용 비리 건은 감사원이라는 국가기관에서 명백하게 채용권에 든 사람이 떨어졌다는 것을 지적한 사항이기 때문에 승소할 것으로 본다"면서 "위자료 이외에도 재산상 손해에 대해서도 입증해서 배상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현재 두 명이 소송을 진행하겠다고 확정했고, 다른 사람들도 기사 등을 보고 계속해서 문의를 하는 중이기 때문에 검찰 수사 결과가 발표되면 소송은 더 확대될 것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지금 감사원의 지적과 검찰 수사에 대해 곧 재판에서 다툴 상황이기 때문에 재판 결과가 나와서 무슨 잘못인지 확정되면 그에 따라 후속 조치를 발표할 예정"이라면서 "당장 공식 입장을 표명하기는 곤란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