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tvN 제공)
"방송 콘텐츠 하나를 만드는 데 100만 원이 든다고 치면, 방송사가 외주 제작사에 주는 비용은 절반인 50만 원도 안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스태프 추락사고, 방송 도중 중단 등으로 커다란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는 tvN 드라마 '화유기' 사태가, 현재의 방송 제작 환경에서는 언제 어디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지적과 우려가 나온다.
방송사들이 외주 제작을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체 제작에 비해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로 인해 비용 절감에 시달리는 외주 제작사들이 안전 문제 등을 소홀히 하게 되는 악순환이 이어지는 것이다.
'방송불공정관행 청산을 위한 특별대책위원회' 안성주 위원장은 2일 CBS노컷뉴스에 "방송사가 외주 제작사에 제작을 맡길 때 말도 안 되게 적은 제작비를 준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촬영장 안전이나 스태프 복지 등을 위한 시설을 갖췄을 때 현실적으로 제작비 100만 원이 든다고 치면, 방송사는 50%에도 못 미치는 비용을 준다. 방송사들에 내부 제작비를 공개하라고 요구하는 이유도 '그 제작비의 80% 수준이라도 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방송사는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국회를 통해 요구해도 이를 절대 내놓지 않고 있다."
안성주 위원장은 "이번에 방통위에서 방송 재허가 조건으로 '내부 제작비 제출'을 걸었으니 (방송사들의 변화를) 두고 볼 일"이라며 "내부 제작비가 공개되면 이를 바탕으로 외주 제작비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최근 물의를 빚는 tvN 드라마 '화유기'의 경우, 제작 주체인 CJ E&M은 계열사인 JS픽쳐스에게 외주 제작을 맡겼다. JS픽쳐스는 다시 복수의 업체에게 세트·미술 작업 등을 '쪼개기'로 할당했다. 외주 제작의 악순환이 꼬리에 꼬리를 문 셈이다.
이에 따라 소도구 제작 용역을 받은 MBC아트 소속 한 스태프는 지난달 23일 새벽 1시 40분쯤 경기 안성시에 마련된 '화유기' 세트장에서 무리한 업무 지시를 이행하던 중 추락해 하반신 마비의 중상을 입었다.
이와 관련해 안 위원장은 "외주 제작비가 터무니없이 적게 책정되다보니 일단 안전 문제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며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낼 생각에 촬영 현장에서는 안전 설비 등을 우선적으로 줄이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큐·교양 분야의 경우도 외주 제작진은 비용 절감을 위해 국내 취재의 경우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든지, 여행자 보험을 들 여유조차 없다"며 "해외 취재를 나갈 때는 제작진에게 '다치거나 억류되지 말라'고 말하는 게 전부"라고 토로했다.
◇ "이른바 '노동 유연성'이 최고조에 달한 곳, 외주 제작 영역"
경기 안성시에 있는 tvN 월화드라마 '화유기' 촬영 세트장. 지난달 23일 스태프가 샹들리에를 설치하다가 추락사고를 당한 장소다.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제공)
외주 제작사가 또 다른 외부 업체에 용역 형태로 업무를 쪼개 주는 악순환으로 인해 "우리나라 콘텐츠 관련 업체가 다 죽어나가는 상황"이라는 것이 안 위원장의 설명이다.
"이른바 '노동 유연성'이 최고조에 달한 곳이 방송 외주 제작 영역이다. 살아남아야 하니 종합편집·녹음·촬영 업체 등도 가격을 낮출 수밖에 없다. 콘텐츠 하나 끝냈을 때 관리비도 건지기 어려운 상황에서 외주 제작사들이 떠안는 빚은 늘어만 간다. 요즘 외주 제작사들끼리 만나면 우스갯소리로 '(일을) 접고 싶어도 빚 때문에 못 접는다'고들 한다."
안 위원장은 "대한민국의 콘텐츠를 만들 세대가 없다"는 말로 지금 우리 방송 제작 업계가 처한 암울한 현실을 지적했다.
"지금 이 임금과 조건이라면 점점 젊은 친구들이 우리 쪽으로는 절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몇 년 전부터 걱정들을 많이 했다. 실제로 현재 막내 작가 등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다."
이에 따라 '외주 제작비 현실화'가 방송 환경 개선을 위한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안 위원장은 "외주 제작비가 현실화 되면 안전 문제 개선은 물론 PD·작가·스태프 등을 정규직으로 고용할 수 있는 여지도 마련된다"고 전했다.
방송사에서 국내 콘텐츠 저작권을 독점하고 있는 점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저작권의 경우 방송사들이 외주 제작사들로부터 양도 받는 형태로 계약서를 쓰고 있다. 원래 저작권은 제작자에게 있는 것이니까. '절대 을'인 외주 제작사 입장에서 다른 일마저 하지 못하게 될까봐 이러한 양도 계약서를 쓰기 싫다고 거부할 수도 없는 입장이다."
안 위원장에 따르면, 영국은 2003년부터 법적으로 외주 제작의 경우 저작권을 외주 제작사가 갖도록 하고 있다. 그간 외주 제작비를 충분히 지급해 온 일본 국영방송 NHK는 최근 '프로그램 기획 주체' '제작 기여도'에 따라 저작권까지 공유하고 있다.
그는 "우선적으로 외주 제작비 현실화가 이뤄지고, 저작권에 대한 합리적인 분배가 이뤄뤄져야만, 끊이지 않는 안전 사고 등 방송 제작 현장을 개선할 수 있는 실마리가 열릴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