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자료사진)
올 한해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가상화폐(암호화폐)의 대표주자인 비트코인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비트코인의 몸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투자자들이 너도나도 가상화폐 거래에 뛰어들었다.
정부는 뒤늦게 대책을 내놓으며 가상화폐 거래소 폐지 검토라는 강경책도 내놓았으나 투기 광풍을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목표가까지 가격이 오르기를 바라는 뜻으로 투자자들이 사용하는 '가즈아'('가자'를 늘려 쓴 말)는 올해의 유행어 반열에 올랐다.
◇ 1년새 가격 95배로 급등…너도나도 가상화폐 투자가상화폐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부상한 것은 다른 어떤 투자상품과 비교할 수 없는 수익률 때문이었다.
비트코인은 국내 가격 기준으로 올해 들어 16배, 가상화폐의 또 다른 한 축인 이더리움은 95배로 급등했다.
가상화폐 투자 열풍의 불을 지핀 것은 이더리움이었다. 올 5∼6월 단기간에 5배로 껑충 뛰며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어모으기 시작했다. '한 달 사이에 몇억을 벌었다'는 자랑 글이 인터넷 게시판을 도배했다.
뒤이어 비트코인이 10월부터 본격적인 상승 국면에 들어가면서 가상화폐 투기 열풍이 전국적으로 퍼졌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가상화폐 매매에 뛰어들었다. 국내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의 회원 수만 해도 251만명이다. 이달 들어서만 103만명 증가했다.
우리나라 국민 20명 중 1명이 가상화폐에 투자하고 있는 셈이다. 다른 거래소의 회원 수를 더하면 이보다 더 늘어난다. '비트코인 좀비'도 생겨났다. 가상화폐가 24시간 거래가 가능해 온종일 스마트폰으로 매매 동향을 쳐다보는 이들을 가리킨다.
거래액도 폭등했다. 올 1월 3천억원 수준이었던 빗썸의 월별 거래액은 5월에 5조2천억원으로 껑충 뛰더니, 8월에는 25조원으로 5배로 불었고 지난달에는 56조원까지 증가했다.
가상화폐 열풍은 증시로도 옮겨붙었다. 옴니텔[057680], 비덴트[121800], 한일진공[123840], SBI인베스트먼트[019550] 등 가상화폐 거래소 지분을 보유했거나 경영에 참여하는 기업의 주가는 단기 급등 양상을 보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올 한해 뜨거웠던 코스닥 시장이 조정을 받자 가상화폐 시장으로 자금이 몰려갔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가상화폐를 둘러싼 비이성적인 열기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다. 미국에서는 음료수 제조사 이름에 '블록체인'이라는 단어를 넣자마자 주가가 500%나 뛰어올랐다.
중국에서는 중국판 복부인인 '다마'가 비트코인 투기에 나서고, 북한이 현금 마련을 위해 비트코인 해킹에 골몰하고 있다는 보도도 있었다.
◇ 양적 성장보다 미흡한 시장 거래 질서 가상화폐 거래 시장이 양적으로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였으나 질적인 측면에서는 '문제 투성이'라는 평가다.
최근 몇 년간은 빗썸, 코빗, 코인원 등 3대 거래소가 전부였으나 올해 들어 코인네스트, 업비트, 코인플러그 등 신규 거래소가 등장하면서 현재 가상화폐 거래소가 20여곳으로 늘었다. 개장을 준비 중인 곳까지 더하면 30여곳에 달한다.
국내에서 거래할 수 있는 가상화폐도 연초에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등 2개에 불과했으나 대시, 라이트코인, 이더리움 클래식, 리플 등으로 늘어나기 시작해 현재 100여개나 된다.
국내 거래량 규모는 세계 정상권이다. 전 세계 가상화폐 거래량의 20∼25%를 차지한다. 빗썸은 세계 거래소 순위 1위이고, 코인원과 코빗은 10위권대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건전한 시장 질서를 유지할 제도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이 때문에 올해 4월 야피존(현 유빗) 해킹, 6월 빗썸 개인정보 유출, 11월 빗썸 서버접속 장애, 12월 유빗 파산 등 거래소 사건·사고가 연이어 터졌다.
가상화폐 투기가 이슈화되고 거래소의 안전문제까지 겹치자 기존 금융권은 가상화폐 거래와 거리를 뒀다.
은행들은 거래소에 더는 가상계좌를 제공하지 않고 카드사들은 포인트를 비트코인으로 바꿔주던 서비스를 중단하기로 했다.
업계의 자정 노력도 있었다. 거래소와 블록체인업체 40여곳이 참여한 한국블록체인협회 준비위원회는 거래소 자격요건과 투자자 보호장치 등을 담은 자율규제안을 마련, 내년 1월부터 시행에 들어가기로 했다.
◇ 정부의 뒤늦은 대응…거래소 폐지 검토 카드 꺼내
가상화폐를 금융상품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직접 개입을 꺼렸던 정부는 이달 들어 투기 억제 대책을 내놓았다.
정부 관계부처는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합동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지난 9월 첫 정부대책을 내놓았으나 '미봉책'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달 11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가상화폐 관련 동향과 대응방안을 검토한 이후 분위기가 급변했다.
정부는 13일 홍남기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관계부처 긴급회의를 소집해 미성년자의 가상화폐 거래 금지, 금융기관의 가상통화 보유·매입·담보취득·지분투자 금지 등 대책을 발표했다.
가상화폐 거래로 얻은 차익에 대한 과세 여부도 살펴보겠다고 했다. 대형 거래소에 대해서는 정보보호관리체계 인증을 의무적으로 받도록 했다.
28일에는 거래소 폐쇄 검토라는 칼을 빼들었다.
정부가 거래소 폐쇄 특별법 제정을 명시적으로 언급한 만큼 앞으로 '거래 규제'에 주안점을 두고 대응방안을 마련할 가능성이 크다.
단, 거래소 폐쇄에 대한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아 국회 논의가 순탄하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가상화폐 투기가 비이성적으로 과열되고 있다는 데에 관계부처가 인식을 공유한 상태"라며 "향후 TF 회의에서 거래소 폐쇄 방안 등 거래 규제를 두고 부처간 논의가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