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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김윤석 "6월 항쟁, 살아남은게 마음의 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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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인터뷰] 86학번 김윤석이 기억한 1987년 6월

영화 '1987'에서 대공수사처 박처장 역을 맡은 배우 김윤석.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많은 배역들이 사라지고 나타나는 동안, 우직하게 영화 '1987'을 지키고 있는 배역 하나가 있다. 바로 배우 김윤석이 맡은 유일한 악역, 대공수사처 박처장이다.

박처장은 잔혹하고 폭력적인 국가 권력을 상징하는 동시에 분단의 비극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어두운 현대사가 만들어낸 괴물이다.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대사가 영 이상했다던 김윤석은 그 시절, 연극에 푹 빠져 살았던 대학생이었다.

시사회에서 장준환 감독이 흘렸던 눈물의 무게만큼, 그에게도 6월 항쟁과 그 가운데 희생된 열사들에 대한 마음의 빚이 존재했다. 그저 살아남은 것에도 '빚진' 감정이 들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들의 시간은 지금도 20대에 멈춰있지만, 자신의 시간은 끊임없이 흘러왔기 때문에.

다음은 김윤석과의 일문일답.

▶ 영화 '1987'을 처음 보고 장준환 감독과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 궁금하다.

- 언론배급시사회 때 처음 봤다. 치밀하게 준비한 것이 영화 속에 다 녹아 있고 그 정성이 보였다. 그래서 수고하셨다면서 감독님 손을 꼭 잡아드렸다.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장준환 감독님은 몸에 있는 모든 기를 다 쏟아부었을 거다.

▶ 사실 이 이야기가 박종철 열사와 이한열 열사 유족들의 동의 없이는 만들어지기 어려웠을 것 같다. 설득하는 과정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알고 있나.

- 시나리오 마지막 최종본이 나왔을 때 초고보다 굉장히 많이 발전했었다. 그래서 하정우, 나, 강동원 등 세 배우가 출연하기로 결정을 했고, 많은 배우들이 함께 참여해줘서 감사했다. 올해 1월 14일이 박종철 열사 30주기 추모 행사가 있었던 날인데 감독님이 직접 부산 광복동에 내려가서 가족분들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하니 허락을 해주셨다더라. 감독님도 그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도록 정말 마음에 큰 책임감을 갖고 영화를 만들었고 다행히 평가가 좋아 저희도 마음의 짐을 한 짐 정도 덜어 놓았다.

영화 '1987'에서 대공수사처 박처장 역을 맡은 배우 김윤석.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 이 영화의 독특한 점은 잔혹한 국가권력을 대표하는 박처장이 처음부터 끝까지 영화에 존재하며 그 시점을 따라 영화가 전개된다는 점이다. 선한 의지를 가진 시민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악역을 맡았는데 그 갈등 구조에 대한 고민은 없었나.

- 다들 아시겠지만 박종철 열사가 내 고등학교 2년 선배님이다. 가족분들께도 내가 강력한 악역으로 나온다는 것을 말씀드렸다. 내가 악역을 하지 않으면 영화가 만들어지기 어렵고, 최선을 다해서 이 역할을 하겠다고 그랬다. 오히려 마음이 너무 힘들지 않겠냐면서 나를 걱정하시더라. 하지만 악역이 강력할수록 거기 대항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더 빛이 나고, 갈등이 증폭된다. 박처장이 물론 한 개인이기도 하지만 시대의 어두운 권력을 상징하는 모습에 더 신경을 썼다. 그 시대를 유지하려고 했던 권력의 모습, 당시를 상징하는 것들을 얼마나 잘 놓치지 않고 담아내느냐에 더 신경을 썼던 것 같다. 현대사의 어두운 부분들이 큰 괴물을 만들어 낸, 그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했다.

▶ 평안도 이북 사투리도 그렇지만 외적인 모습이 평소 김윤석 본인의 모습과도 상당히 달랐다. 어떤 부분을 변화시켰는지 알려달라.

- 원래 거구에 키가 큰 사람이다. 평안도 이북 사투리나 인물이 가진 전사는 똑같다. 권력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마우스피스를 끼고, 패드를 장착해 상체가 더 두껍게 보이려고 했다. 누구인지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달라보인다고 하더라.

▶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 굉장히 역사에 길이 남았던 말인데 이 대사를 하는 소감이 남달랐으리라 생각한다.

- 나는 이런 사건들과 가장 멀리 떨어진 직업을 갖고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배역을 맡아서 이 대사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탁치니 억'이라는 말을 가지고 연극도 많이 했었다. 그 장면을 찍을 때 사람들이 많이 웃었다. 30년이 지나서 보면 얼마나 넌센스이고, 말이 안되는 이야기인가. '어?'라는 추임새는 내가 즉흥적으로 넣었는데 박처장 본인도 뭔가 말이 안되니까 동의를 구하는 듯한 느낌으로 했다.

▶ 80년대 대학을 다녔을텐데 본인의 대학 시절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 나는 연극 동아리에서 연극에 푹 빠져서 살 시기였다. 당시에는 운동권 학생들만 데모를 했던 게 아니라 그냥 학생들이라면 전부 한 번 씩은 나갔다. 벽에 붙이는 대자보도 많이 필요하니까 같이 막 써주고 그랬었다. 복도에 걸 플랜카드도 만들고…. 학생들이 학교에 모이는 것을 정부가 싫어했기 때문에 휴교령이 잦아서 시험 대신 레포트로 대체하고 그런 식이었다.

영화 '1987'에서 대공수사처 박처장 역을 맡은 배우 김윤석. (사진=CJ엔터테인먼트 제공)

 

▶ 사실 대학가면 이것 저것 하고 싶은 일도 많을텐데 연극에 빠져 살았던 특별한 이유가 있나.

- 연극이 마약이었다. 사람을 망친다. (웃음) 집단이 함께 무엇인가를 한다는 게 굉장한 흡입력이 있다. 극을 만드는 것 자체가 굉장한 에너지가 있다. 그래서 서울대 경제학과 이런데 나와서도 연극하는 배우들 많다. 연극과 연애는 같이 못한다고 그랬었는데 나는 연극만 했다.

▶ 장준환 감독은 당시 본인이 그런 사회문제에 열심히 목소리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더 빚지는 것 같은 마음이 든다고 했다. 본인도 그런지 아니면 다른 생각인지 이야기해달라.

- 나 역시 격렬한 운동권이 아니었다. 지금 나이가 되니까 더 마음의 빚이 생기는 것 같다. 나는 이제 50대가 돼서 가장이 됐는데 희생됐던 사람들은 시간이 스무살, 스물한살에서 멈춘 거다. 감독님이 기자간담회에서 눈물을 흘린 것도 그 멈춰버린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그런 거다. 그들에게는 나이가 든 사진이 없다. 늙어서 그걸 보고 있으면 마음이 힘든 느낌이다. 사람의 삶은 우연과 필연이 계속 혼재된다. 만약 최루탄에 맞지 않았다면, 고문을 당하지 않았다면 생을 마감하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나는 그걸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라고 생각한다. 그냥 살아남은 자체가 마음의 빚인 거다.

▶ 배우 우현 역시 그 역사의 현장에 있던 사람이었다. 이번 영화에 치안본부장 역으로 등장하는데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궁금하다.

- 중국집에서 이야기를 나눴었다. 형은 그런 걸 의미있게 이야기를 하지 않고 툭툭 던진다. 집회를 하고 나면 분실물이 많다. 모자도 잃어버리고, 시계도 잃어버리고…. 그래서 집회가 끝나면 어딘가로 모여서 분실물을 찾아간다. 그런데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으로 변을 당한 그 날, 마지막까지 주인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 타이거 운동화 한 짝이었다고. 그걸 현이 형은 기억하더라.

▶ 영화를 보고나면 광화문 촛불 광장과 6월 항쟁의 광장이 겹칠 수밖에 없다. 이 영화가 젊은 세대들에게는 어떤 공감대를 주리라 생각하나.

- 광화문 촛불과 6월 항쟁의 교집합은 너무도 많다. 6월 항쟁에 나갔던 어머니나 아버지들이 지금 아이들을 데리고 촛불집회를 나가는 것이다. 광주도, 6월 항쟁도, 광화문 촛불집회도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을 수밖에 없다. 겪은 사람이 겪지 못한 사람들을 연결하고 그런 식이다. 이 영화 역시 그런 점에서 충분히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올해가 6월 항쟁 30주년이고, 그래서 올해가 넘어가기 전에 이 영화를 어떻게든지 개봉하자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그런 의미도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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