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백악관 홈페이지 화면 캡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역대급 감세안이 상하원 의회를 모두 통과했다. 가장 주목되는 것은 법인세를 35%에서 21%로 무려 14%p 낮춘 부분이다.
실제로 향후 10년간 감세분 1조5천억 달러(1600조원) 가운데 대부분이 법인세 감면분이다. 미국 대기업들은 유례없는 법인세 감면으로 현금 잔치를 하게 생겼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축하 행사를 열고 이번에 감세법안이 실행되면 “기업들이 더 이상 미국을 떠나지 않을 것이고, 투자를 쏟아낼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러면서 이날 AT&T가 감세분을 직원 20만 명에게 각각 1천 달러씩 상여금으로 지급하겠다고 발표한 내용을 소개했다. 기업의 세금감면 분이 투자와 임금 인상에 쓰일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백악관 연설을 보면서 지금으로부터 약 10여년 전 이명박 전 대통령의 모습이 겹쳐 떠올랐다.
◇ "경제 7% 성장할 것"…MB 감세의 추억
이명박 전 대통령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이 전 대통령도 당선 직후부터 기업 투자와 내수 촉진을 위한 감세를 끊임없이 강조해왔다. 여대야소 상황을 업고 법인세와 종합부동산세 인하 등을 끝내 관철시킨 것도 비슷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해마다 경제가 7% 성장을 할 것이고 코스피 지수는 임기 내에 5000을 넘을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우리는 그 이후 펼쳐진 현실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법인세를 감면 받은 대기업들은 감세분을 현금으로 쌓아둘 뿐, 좀처럼 투자에 나서지 않았다. 오죽하면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 기업들이 소득을 투자와 임금상승분으로 쓰지 않으면, 추가로 세금을 물리는 기업소득환류세제까지 만들었을까.
기업 소득은 크게 늘어나는 동안 가계 소득은 제자리걸음을 했다. 가계는 빚을 내서 집을 사고 생계를 유지하느라 가계부채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불어났고, 세금 감면으로 인한 세수 부족으로 정부의 재정적자 또한 급속도로 늘어났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규모 감세 법안 통과 이후 미국의 경제학자들이나 시장전망기관, 언론들이 내다보는 미국 경제의 미래는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한국 경제의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
◇ "기업들 아낀 세금 투자에 많이 안 쓸 것"상당수 경제학자들과 시장전망기관들은 미국 기업들이 세금 감면을 받은 자금을 대부분 배당금 지급과 자사주 매입에 사용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은 주주 자본주의의 본향이다. 최고경영자는 주식가치를 얼마나 높였는지 또 얼마나 주주들에게 배당금을 많이 지급했는지에 따라 경영능력을 인정받는다.
최근 메릴린치와 아메리카은행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65%의 기업들은 추가 수익을 채무를 갚는데 사용하고 46%는 자사주 매입에 쓰겠다고 밝혔다. 단지 35%만 자본 지출에 사용할 계획이라고 응답했다.
또 애틀랜타 연방준비은행의 최근 조사에서는 59%의 기업들이 고용을 늘릴 계획이 없으며, 46%는 투자계획을 변경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감세분이 투자와 임금인상분에도 어느 정도 사용되겠지만 이는 배당금 지급과 자사주 매입 규모에 비하면 매우 미미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따라서 미국 경제를 성장시킬 것이라는 전망에도 회의적인 시각이 나오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이번 감세안으로 내년과 2019년의 GDP 성장률이 0.3%p 더 올라갈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2020년이 되면 감세안이 경제를 부양하는 효과 자체가 사라질 것으로 내다봤다.
게다가 감세로 인한 재정적자가 늘어나면서 이것이 나중에 정부 지출을 제약해 경제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견해도 나오고 있다.
보수성향의 미국 세금재단(Tax Foundation)조차도 가장 긍정적인 상황을 가정하더라도 재정적자는 10년 동안 4480억 달러가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미 의회의 조세합동위원회(JCT)는 이보다 많은 1조3천억 달러의 재정적자 증가를 전망했다.
◇ 트럼프 대통령만 꿩먹고 알먹고…
결국 이번 감세법안으로 승리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 뿐이라는 비아냥도 나오고 있다.
대통령 취임 이후 거둔 첫 번째 입법 승리라는 정치적 의미 외에도 트럼프 대통령 소유 법인은 물론 자신이 내야할 소득세도 크게 절감되는 효과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법인세 인하로 법인세율이 역전돼 외국인 투자 자금이 대거 빠져나갈 것이라고 보는 것도 지나친 호들갑이다.
법인세율이 역전되는 구간은 과표 200억원을 초과하는 이른바 대기업들(세율 22%) 뿐이다. 내년부터 25%의 최고세율이 적용되는 과표 3000억원 이상의 초대형 기업은 77개에 불과하다.
또 과표 200억원을 밑도는 기업들은 법인세율이 20%, 과표 2억 원 이하 소기업은 10%다. 미국의 21%보다 낮다. 대다수 기업들에게 미국의 법인세 감세는 딴나라 얘기일 뿐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조세특례법 상 경제자유구역 등에 투자한 외국인 기업에 대해서는 5년 동안 법인세를 면제해준다. 사실상 외국인 투자기업에게는 법인세 0%다. 이 때문에 유럽연합이 한국을 조세회피처라고 규정하는 해프닝까지 생겼다. 외국인 투자가 부진한 것은 법인세 때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