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으로 구속기소 됐다가 항소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로 풀려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 대해 항로 변경 부분이 무죄로 확정됐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항로'가 어떻게 정의됐는지가 조씨 사건의 결론을 좌우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21일 항공보안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조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조씨는 2014년 12월 미국 뉴욕 JFK국제공항에서 견과류 서비스를 문제 삼아 타고 있던 대한항공 KE086를 램프리턴(항공기를 탑승 게이트로 되돌리는 일)하도록 지시하고 사무장을 강제로 내리게 한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 됐다.
조씨는 스튜어디스가 정해진 일등석 서비스 방식과 다르게 견과를 내왔다며 심하게 화를 냈고, '당장 기장에게 비행기를 세우라고 연락하라'고 여러 번 소리쳤다.
이때 항공기는 탑승구를 떠나 유도로까지 옮기는 과정인 '푸시백' 중이었다.
기장은 객실사무장으로부터 자사 부사장이던 조씨의 요구를 듣자 통제소의 승인을 받아 비행기를 탑승구로 되돌렸다.
1심은 징역 1년을 선고했지만, 2심은 "항로의 사전적 의미는 '항공기가 통행하는 하늘길(空路)'“이라며 항로변경 부분을 무죄로 판단했다.
대법관 10명은 항공기의 지상 이동 경로는 '항로'가 아니다고 원심과 같이 봤다.
"법령에 쓰인 용어가 정의 규정이 없다면, 원칙적으로 사전적 정의 등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의미를 따라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항공보안법을 만들 때 지상의 항공기 경로 변경 행위를 처벌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면, 항로 대신 다른 용어를 사용하거나 명확한 정의규정을 뒀을 것이라고도 다수 대법관들은 판단했다.
이에 대해 주심인 조 대법관을 포함해 박보영‧박상옥 대법관이 반대의견을 냈다.
이 사건이 '운항중인 항공기의 항로'를 변경한 것이기 때문에 '항로'를 따로 떼어 해석할 게 아니라는 것이다.
특히 항공보안법이 지상의 항공기도 '운항중'이 된다고 의미를 넓혔기 때문에 지상과 공중을 따지지 않고 항로로 봐도 해석가능한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게 파기환송 의견을 낸 대법관들의 판단이다.
"배와 달리 비행기는 이륙 전과 착륙 후에는 당연히 지상을 다닐 수밖에 없다"며 "지상의 항공기 경로를 함부로 변경하는 과정에서 대형 참사가 야기될 위험이 크기 때문에 안전운항을 위협하는 행위를 엄벌할 필요가 있다"고 소수 대법관들은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에 대해 "처벌의 필요성이 크더라도 법률에서 범죄로 규정하지 않았으면 처벌할 수 없다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을 다시 확인하고 선언했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대법원은 이 사건을 2년 반 동안 심리하다 항로변경죄 성립에 관한 법리를 대법관 전원이 판단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고 지난달 13일 대법관 전원이 심리하는 전원합의체에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