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정국으로 시작해 대통령 탄핵을 거쳤던 역사적인 2017년. 문화·연예계에서도 굵직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CBS노컷뉴스가 연말을 맞아 올 한 해 문화·연예계에서 일어난 사건을 한번 짚어 봤습니다. 이름하여 '문화연예 연말정산'입니다. [편집자 주]<글 싣는="" 순서="">
① 방탄소년단·워너원 신드롬부터 탑 대마초 파문까지
② '군함도' 논란부터 페미니즘까지…영화계 이슈 돌아보기
③ 김주혁·종현과 톱스타 부부…'다사다난' 연예계
④ 한경오 사태-기자단 해체 청원… '언론 불신'의 시대(계속)
지난해 국정농단 사태 때 시민들은 광장을 촛불로 밝히며 '적폐청산'을 외쳤다. 오랫동안 쌓인 해로운 경향이나 현상을 말하는 '적폐'의 대표적인 예로 자주 소환됐던 것이 바로 언론이었다. 시민의 힘으로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고 정권교체를 성공시켰던 2017년은 MBC 파업 종료와 언론사 해직자 복직처럼 희망적인 일도 있었지만, 언론 불신이 어느 때보다 높았던 해이기도 했다.
◇ 1. 해직자들, 돌아오다짧게는 279일 만에, 길게는 3249일 만에 그리운 일터로 돌아온 언론노동자들이 있었다. 가장 먼저 포문을 연 곳은 YTN이었다. 대법원은 2008년 구본홍 사장 반대 투쟁 당시 해고됐던 6명(권석재·노종면·우장균·정유신·조승호·현덕수)의 기자 중 3명의 해고는 정당했다는 판결을 내렸으나, YTN 노사 합의로 지난 8월 28일 노종면·조승호·현덕수 기자가 마침내 돌아왔다.
지난 8월 28일, 해직 3249일 만에 복직한 YTN 조승호, 노종면, 현덕수 기자 (사진=전국언론노동조합 제공)
9년 동안 가장 눈에 띄는 탄압을 받았다는 평가를 받는 MBC의 해직자 6명도 복직했다. 이들은 '어서와, 복직은 처음이지?'라는 노란 손수건을 맨 구성원들의 뜨거운 성원 속에, 지난 11일 상암MBC 사옥으로 첫 출근했다. 암 투병 중인 이 기자를 제외하고 모두 보직간부가 됐다. 강지웅 PD는 시사교양1부장, 박성제 기자는 취재센터장, 정영하 음향감독은 정책기획부장, 박성호 기자는 보도국 앵커(부장), 그리고 최승호 PD는 김장겸 사장의 뒤를 잇는 '사장'이 됐다.
경영 악화를 이유로 지난 4월 정리해고를 단행한 OBS에서도 반가운 복직 소식이 들려왔다. 사측은 경기지방노동위원회의 부당해고 판정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택 대기발령, 교육 대기발령 등으로 응수했으나, 결국 지난 15일 해직자 13명이 전원 원직 복직됐다.
◇ 2. KBS-MBC, 5년 만의 '공동 총파업'공영방송 KBS-MBC가 지난 9월 4일 0시, 총파업에 들어갔다. 2012년 언론사 연대 파업 이후 5년 만이었다. 목적은 현재 KBS-MBC를 망가뜨린 장본인으로 꼽히는 경영진(고대영-김장겸 사장) 퇴진과 방송 정상화였다.
지난 9월 8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KBS-MBC 공동파업 출정식 (사진=박종민 기자)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이하 새노조)와 MBC본부는 이번 파업에 사활을 거는 모습을 보였다. 보도·시사교양·라디오·예능·드라마 등 전 프로그램이 타격을 입을 정도로 각 부문 노조원들이 두루 파업에 참여했다.
KBS 새노조는 매일 아침 댓글공작 내용을 보고했다는 군 사이버사령부 전직 간부의 폭로를 이끌어내 각종 상을 받았다. 성재호 본부장은 김환균 언론노조위원장과 6일간 단식했고, 노조원들은 240시간 동안 광화문 광장에서 '이어말하기'를 통해 파업의 이유를 알렸다.
파업 중 MBC에서는 TV광고 송출 중단, 사상 초유의 '녹화뉴스 방송, 드라마 릴레이 결방, 크고 작은 방송사고가 일어났다. MBC는 지난달 13일 김장겸 전 사장이 해임됨에 따라 이틀 뒤인 지난달 15일 파업을 잠정 중단했다. 파업 내내 강조한 '재건'을 위해 조직 재정비 중이다.
◇ 3. 국정원의 방송사 장악 시도 확인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보수정권 아래서 심증만 있었던 국가정보원의 '방송장악 시나리오'가 지난 9월 국정원 개혁위원회의 '셀프 발표'로 세상에 드러났다.
2010년 3월 2일 작성된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 문건을 보면 국정원은 '간부진 인적쇄신·편파프로 퇴출로 기반 조성'→'노조 무력화·조직개편으로 체질 변화 유도'→'소유구조 개편논의로 언론 선진화에 동참'(민영화) 3단계 전략을 세웠다. 이후, 이 계획은 프로그램 폐지, 인사, 노조 파괴 공작 등으로 '실행'된 바 있다.
2010년 6월 3일 작성된 'KBS 조직개편 이후 인적쇄신 추진 방안' 보고서에는 국정원이 KBS 구성원들을 '좌편향' 등으로 낙인찍고 관리해 온 정황이 드러나 있다. 민영방송인 SBS도 국정원 입김을 피할 수는 없었다. 배우 김규리, 권해효, 문성근, 김제동 등의 출연을 막은 사례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 4. 가만히 있지 않는, 방송계 '을'들
지난 4월 24일 오전 서울 상암동 CJ E&M 사옥 앞에서 열린 ‘tvN 혼술남녀 신입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 기자회견’ 에 참석한 故 이한빛 PD의 어머니 김혜영 씨가 발언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을'이라는 이유만으로 부당한 대우를 감내해야 했던 이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문제제기하며 목소리를 낸 것도 올 한해 두드러진 흐름이다.
우선, 방송작가들의 노조가 생겼다. TV·라디오·외주제작사에서 일하는 시사교양·드라마·예능 분야 작가 100여 명이 속한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서면계약서 의무화 △원고료 지급체계 현실화 △사회보험 확보 방안 마련 등을 주요 과제로 설정했다.
방송계에 만연한 '갑질'과 부당대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지난 7월 남아공 촬영 중 현지 사고로 박환성-김광일 두 독립PD가 사망한 후 만들어진 한국독립PD협회 '방불특위'는 방송사 불공정 행위 청산을 궁극적 목표로 둔다. 9월에는 MBC '리얼스토리 눈'에서 일어난 갑질 관행 실태 폭로가 있었고, 불법파견·임금체불·성추행 등을 익명으로 고발하고 상담 받을 수 있는 '방송계 갑질 119' 오픈채팅방은 이달 20일 문을 열었다.
KBS-MBC 파업 당시 큰 힘을 실어주었던 주인공 중 하나가 바로 방송계 '을'들이었다. 뉴스 AD, 라디오 리포터, 프리랜서 작가들이 연대와 지지의 뜻을 밝혔다. 살인적인 노동 강도, 비인격적 대우 때문에 tvN '혼술남녀' 조연출 故 이한빛 씨가 세상을 등진 후, 유가족 등은 방송계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한빛방송인권센터' 설립을 추진 중이다.
◇ 5. 언론 불신의 시대
취재 중인 기자들의 모습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올해는 국민들의 뿌리 깊은 언론 불신과 혐오 정서를 확인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진보언론에 대한 실망과 분노가 강렬하게 표출된 '한경오(한겨레-경향-오마이뉴스) 사태'다. '김정숙 씨'라는 호칭 논란, 문재인 대통령의 식사 장면을 설명한 소개글 논란, '덤벼라 문빠' 발언 등 '새 정권'과 그 지지자들을 흠집 내고 있다는 게 주장의 요지다. 이들 매체는 구독자수 급감 및 대외적 평판 하락 등의 어려움을 겪었다.
청와대 상주 기자단을 비롯해 '출입기자단 해체'를 촉구하는 국민 청원이 올라온 것도 눈여겨 볼만한 부분이다. 지난달 17일 올라온 해당 청원에는 총 7만 5468명이 참여했다. 다분히 기자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출입기자단 시스템 아래서 사실과 다른 보도가 나오기 때문에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지난 14일 문재인 대통령 방중 당시 중국 측 경호원들이 한국 기자들을 폭행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도, 여론은 싸늘했다. 취재에 대한 사전 상호 합의가 있었고 중국 측이 무리하게 취재를 방해하는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있었음에도, '기자들이 얼마나 극성스럽게 굴었으면 그랬겠느냐'는 비판이 앞섰다.
언론 불신 정서는 통계로도 확인됐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달 발간한 '디지털 뉴스 리포트 2017 한국'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뉴스 신뢰도는 23%로 36개국 중 최하위였다.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