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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2.28 보상 22년…제주4.3은 이제야 法 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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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CBS 4·3 70주년 연속기획③희생자 보상 22년된 대만 2·28

1947년 대만 2.28 사건 당시 모습. (사진=대만 2.28 국가기념관 제공)

 

2018년이면 제주 4·3 사건이 70주년을 맞는다. 희생자를 기리고 유족을 위로하는 다양한 행사가 준비되고 있지만 4·3의 전국화와 세계화는 여전히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제주CBS는 4·3의 비극과 같고 한해 먼저 70주년을 맞은 대만 2·28 사건을 통해 4·3의 완전한 해결을 고민하는 연속기획, ‘대만 2·28 사건에서 제주 4·3 70주년을 묻다’를 마련했다. 20일은 세 번째 순서로, ‘22년 전 희생자 보상을 시작한 대만 2·28’을 보도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다른 나라 같은 비극, 제주 4.3과 대만 2.28
② 제주 4.3이 공산 폭동? 대만은 전국에 2.28 기념비
③ 대만2.28 보상 22년…제주4.3은 이제야 法 발의
④ 총통이 기념하는 대만 2.28, 대통령 없는 제주 4.3,
⑤ 모든 국민이 아는 대만 2.28, 도민만 아는 제주 4.3

대만 2.28 사건은 국민당 장제스, 장징궈 부자의 통치가 끝난 1988년 이후 본격적으로 대만 국민들에게 알려졌다. 민주화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2.28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 목소리가 커졌기 때문이다.

1947년 2.28 사건부터 계엄령 선포기간까지 40년은 2.28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금기시 됐다. 같은 국민당 소속이지만 이해당사자가 아닌 첫 대만 출신 총통 리덩후이가 취임하면서 본격적인 진상조사가 시작됐다.

양전뤙 2.28 국가기념관장은 “1987년부터 민간의 힘으로 진상규명을 요구했고 장제스 총통 부자가 사망을 한 뒤 리덩후이 총통이 취임하면서 2.28 사건에 대한 정의를 규정하고 전국적으로 2.28 배보상과 진상규명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대만 2.28 국가기념관에 희생자의 사진과 함께 이름과 사망시기가 기록돼 있다. (사진=이인 기자)

 

대만 정부는 1992년 ‘2.28 사건 연구보고서’를 통해 1만 8000명에서 2만 8000명이 숨지거나 실종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2.28 사건이 대만 국민들에게 새롭게 인식된 건은 1995년이다. 2.28 기념비 준공에 맞춰 리덩후이 총통이 2.28 피해자와 국민들에게 정부 차원의 첫 공식 사과를 했다.

‘수많은 국민의 생명과 존엄을 유린하고 억압해 결과적으로 국가 전체에 손실을 끼쳤다’며 사과한 것이다.

무엇보다 1995년 3월에는 2.28 사건 처리 및 보상법이 대만 국회를 통과해 다음달 곧바로 공포됐다. 희생자 1인당 대만 화폐로 최고 600만원(한화 2억원 안팎)을 보상하는 내용이다.

올해까지 22년 동안 관련 법률에 따라 보상금을 받은 피해자는 2308명이다.

주리시(65) 교수가 대만 국립정치대에서 '한국과거청산 영화의 감상'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고 있다. (사진=이인 기자)

 

대만 국립정치대 주리시 교수는 “희생자 규모에 비해 보상금을 받은 숫자가 적은 것은 법률에 따라 증언이 아닌 증거를 반드시 제출해야 하는데 2.28 사건 이후 극심한 공포감으로 희생자의 신원자료를 버린 경우가 많아 보상금을 신청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주 교수는 또 “국민의 세금으로 주는 돈이 아닌 2.28 당시 가해자인 국민당의 재산으로 주면 받겠다는 사람도 많다”고 귀띔했다.

2.28 사건의 성격규정을 놓고는 ‘국가공권력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피해를 준 사건’으로 정의하고 있다.

국립정치대 문학대학장이기도 한 쉐화위안(58) 2.28 기념재단 이사장은 “보상법상 2.28의 정의를 보면 당시 국가폭력에 의한 피해자를 위해 처리한다고 규정돼 있다”고 말했다.

쉐화위안(58) 대만 2.28 기념재단 이사장. (사진=이인 기자)

 

그는 “2.28 사건 당시 국가공권력이 국민당 밖에 없었기 때문에 국민당은 곧 정부였고 따라서 정부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피해를 준 사건으로 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만 2.28에 비하면 제주 4.3을 금기시하던 시기는 반세기를 훌쩍 넘겼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 1월에야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4.3특별법)'이 제정됐기 때문이다.

2003년 10월에는 정부 차원의 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확정됐다. 진상보고서는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4.3을 규정했다.

시기는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를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때까지'로 했다.

대만 타이베이시 중심지에는 1949년부터 38년간 지속된 계엄령 시기의 희생자들을 기리는 백색테러 기념비가 있다. (사진=이인 기자)

 

진상조사보고서를 토대로 노무현 대통령은 2003년 10월 4.3 당시 국가권력의 잘못에 대해 역대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공식사과했다. 4.3 사건이 발생한 지 55년 만이고 대만 정부가 2.28 공식 사과를 한 때로부터는 8년 뒤의 일이다.

제주 4.3 사건의 희생자도 최대 3만여 명으로 추정된다. 다만 4.3 특별법에 따라 2000년 8월 발족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이하 4.3위원회)'가 17년 동안 결정한 희생자는 1만 4233명이다.

행방불명자가 워낙 많은 데다 보수 정부 9년간 희생자 결정을 위한 4.3위원회 전체회의가 단 1차례만 열렸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으로 올해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2018년 한 해 동안 4.3 희생자와 유족 결정을 위한 추가 신고를 받기로 했다.

대만 타이베이시 총통부 앞에 있는 백색테러 기념비에서 피해 내용을 살펴보는 관람객들. (사진=이인 기자)

 

그러나 대만이 22년 전부터 시작한 희생자와 유족들에 대한 배보상은 이제야 논의가 시작되는 단계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오영훈 의원(더불어민주당· 제주시을)이 보상 규정을 넣은 4.3 특별법 전면개정법률안을 19일 대표 발의하고 제주출신 강창일(민주당, 제주시갑), 위성곤(민주당, 서귀포시) 의원과 함께 조속한 통과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개정안은 법률 명칭을 '제주4·3사건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특별법'으로 변경해 보상금 규정을 신설하고 희생자와 유족의 의학적·심리적 치유를 위한 제주 4·3 트라우마 치유센터를 설립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충홍 제주도의회 의장은 “내년 4.3 사건 70주년을 전국화와 세계화의 계기로 만들어야 희생자 배보상 등 4.3의 완전한 해결도 길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비극이지만 희생자 배보상 등에서 대만 2.28과 제주 4.3은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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