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자료사진)
파리바게뜨가 '제빵기사를 직접 고용하라'는 고용노동부 시정 조치를 정지시켜달라고 신청했지만, 법원은 신청 자체가 부적법하다며 '각하'했다.
그동안 법원이 잠정정지했던 시정지시 효력이 되살아나면서 제빵기사 고용방식을 둘러싼 노동계와 파리바게뜨 간의 대립도 다시 시작될 전망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박성규 부장판사)는 파리바게뜨가 서울지방고용노동청장을 상대로 직접고용시정지시처분 효력을 정지해달라고 낸 집행정지 신청을 지난 28일 각하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시정지시는 항고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에 해당하지" 않으며 이에 따라 "시정지시 효력정지를 구하는 이 사건 신청은 부적법하다"고 정리했다.
항고소송이란 정부 행정행위에 불복해 취소나 변경을 요청하는 소송인데, 재판부는 "이 사건 시정지시는 행정지도에 해당한다"며 애초 항고소송 대상이 아니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파리바게뜨는 시정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형사처벌·과태료를 부과받기 때문에 노동부의 시정지시가 강제력이 있는 '행정처분'이라며, 시정지시로 인해 예상되는 피해가 너무 심하기 때문에 효력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노동부는 "법에 따른 처분이 아닌 근로감독관 집무규정에 근거한 '행정지도'"일 뿐이라며 "행정처분도 아닌 시정지시를 취소해달라는 것은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는데, 재판부가 노동부의 손을 들어준 셈이다.
우선 재판부는 사용사업주(파리바게뜨)가 파견노동자(제빵기사)를 직접고용해야 하는 의무가 발생하는 이유는 '시정지시'가 아닌 '파견법'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파리바게뜨가 제빵기사를 직접 고용하지 않을 경우 받게 될 형사처벌과 과태료 부과도 애초 파견법을 위반했기 때문에 받는 처벌일 뿐, 노동부 시정지시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받는 처벌이 아니라고 구분한 것이다.
또 문제의 시정지시는 강제조항이 아니라 오히려 노동부가 파리바게뜨에게 "스스로 위법사항을 시정할 기회를 부여"한 것뿐이라고 강조해 사실상 노동부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과태료 부과에 대해서도 "이 사건과 같이 고의 또는 중과실로 주요 근로조건을 위반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고 볼 여지가 있는 사건은 범죄인지나 과태료 부과에 앞서 시정지시를 해야 할 재량준칙이 존재한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법원이 시정지시효력을 정지하거나 취소하는 판결을 선고하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고 못 박아 이번 판결과 관계없이 불법파견 판정이 유효하다면 노동부는 언제든 과태료 등 처벌을 내릴 수 있다고 못 박았다.
이번 각하 결정은 시정지시의 효력을 정지하느냐 여부에 관한 것일 뿐, 시정지시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본안 소송에 대한 최종판단은 아니다. 즉 일부 언론 보도와 달리 법원은 파리바게뜨가 제빵기사를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결론은 내리지 않았다.
하지만 파리바게뜨로서는 일주일 남은 시정기한 안에 직접고용 의무를 최대한 이행하면서 소송까지 병행해야 하는 불리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법원 각하 결정 직후 파리바게뜨의 법률대리인인 김앤장은 "즉시 항고하겠다"고 밝혔지만, 이후 파리바게뜨 측이 2시간여 만에 항고를 포기했다고 입장을 바꿨다.
파리바게뜨는 "이번 결정문은 직접고용 시정지시를 이행하라는 판결이 아니므로 항고하지 않기로 했다"며 "'직접고용 행정처분의 옳고 그름을 가리기 위한 본안 소송'은 그대로 진행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노동부는 재판부가 시정지시 효력을 일시 정지시켰던 기간을 감안해 다음달 5일까지 시정지시를 이행하지 않으면 곧바로 과태료를 부과하고 형사입건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또 파리바게뜨 협력 파견업체 11곳에 내린 체불임금 110억 원 지급 시정명령도 다음달 4일까지 이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만약 정부가 과태료를 부과할 경우 파리바게뜨가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해 집행이 정지될 가능성이 높다. 이후 본안 소송의 결론이 날 때까지 약 1년 가까이 법정공방이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는 이번 각하결정을 환영면서도 법정 공방 대신 노사 대화로 해결하자고 거듭 촉구했다.
제빵기사 노조가 속한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임영국 사무처장은 "법원이 정상적인 판단을 내린 당연한 결과"라면서 "이 사태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제빵기사들의 노동조건을 환기시켜줬다"고 평가했다.
이어 "이번 판결을 통해 파리바게뜨 불법파견 사건의 성격이 드러났다"며 "그동안 파리바게뜨 본사가 제빵기사 노동자들과 대화하지 않았는데, 향후 직접고용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성실하게 대화하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이번 결정으로 그동안 잠시 잠잠했던 파리바게뜨 '제빵기사 쟁탈전'에도 다시 불이 붙을 전망이다.
파리바게뜨는 앞서 소송 진행 상황과 관계없이 가맹점주, 파견업체들과 함께 설립할 합작사를 통해 제빵기사를 고용하는 방안을 계속 추진할 계획이다.
노동부는 파리바게뜨가 직접고용을 하지 않은 노동자 1인당 1천만 원씩 과태료를 부과할 예정인데, 만약 제빵기사가 합작사 고용에 동의할 경우 직접고용 의무를 피할 수 있어 그만큼 과태료가 줄어든다.
반면 다수의 제빵기사들이 직접고용을 선택할 경우 합작사를 통해 고용한 제빵기사만으로는 영업을 지속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시정기한인 다음 달 5일까지 제빵기사들의 고용방식을 놓고 노동계와 파리바게뜨 간의 대립이 치열하게 펼쳐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