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반드시 잡는다'에서 연쇄살인범을 쫓는 동네 터줏대감 노인 심덕수 역을 연기한 배우 백윤식. (사진=NEW 제공)
관록의 배우 백윤식은 인터뷰 내내 활기가 넘쳤다. 영화 안에서 작든, 크든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의 에너지가 어디에서 나왔는지 알 수 있었다.
48년 차 경력의 그는 연기를 위해 특별한 어떤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할 뿐이다. 영화 '반드시 잡는다'의 70대 독거노인 심덕수 역도 그렇게 다가왔다.
"원작인 웹툰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봤죠. 나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영화적으로 만들어 놓은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원작에 보면 심덕수라는 인물이 죽음에 대한 트라우마를 갖게 된 이유가 다 나옵니다. 캐릭터를 형성할 때 그런 배경을 염두에 두긴 뒀어요. 그 사람이 평범한 사람은 아닙니다."
205호 여대생을 구하려는 부성애가 유명 영화 '테이큰' 시리즈를 연상시킨다는 말에는 허허롭게 웃어보였다. 나이에 구애 받지 않고 거침없이 온 몸을 내던져 액션 연기를 한다는 점에서 리암 니슨과 그는 분명히 닮은 점이 있기도 하다.
"그런 국제적으로 유명한 작품이랑 비교를 해주니까 몸둘 바를 모르겠네요. 이번에 어쨌든 제가 한 거는 의지력이 보이는, 정신적인 액션 아니겠어요? 일당백 아니면 고수의 액션들만 했는데 여기에서는 목숨을 건 액션인거죠. 언제 죽을지 모르고 수없이 고난의 행군을 가지만 그래도 205호를 구해야 된다는 일념으로. 처음에는 왜 이렇게 찌질한게 쥐어 터지고 다니나 싶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까 굉장히 무섭더라고요."
영화 '반드시 잡는다'에서 연쇄살인범을 쫓는 동네 터줏대감 노인 심덕수 역을 연기한 배우 백윤식. (사진=NEW 제공)
몸을 쓰는 액션 장면은 특별히 힘들지 않았지만 오히려 겨울밤 진흙탕에서 온 몸이 젖은 상태로 촬영을 해야 하는 게 고역이었다.
"영화적으로 담아야 되는 인위적인 환경이 있었는데 그것 때문에 좀 힘들었어요. 비 오는 겨울밤에 질퍽이는 개천가에서 3일에 걸쳐 촬영을 했거든요. 겨울밤이 정말 길더라고요. 비 맞는 씬은 한 여름에도 체온이 다 빼앗겨서 추운데 겨울에는 어떻겠어요."
JTBC 예능프로그램 '아는 형님'에 나와 화제가 됐지만 본격적으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할 계획은 없다. 이미 오래 전부터 현재 스타가 된 예능인들과 호흡을 많이 맞춰본 백윤식이다.
"MBC 초창기에 요청이 와서 '토토즐'에 연속적으로 나가는 15분 짜리 시트콤을 강호동 씨랑 했단 말이죠. 그 때 강호동 씨는 씨름하다가 연예계로 들어왔을 때였을 걸요. 또 SBS에서 강호동 씨랑 다른 예능인들이 '야심만만'할 때 나간 적도 있고. 신동엽, 홍록기, 이영자 이렇게 세 사람이 한 때 또 예능계를 주름잡을 때가 있었거든요. 그 때 또 같이 한 번 작업을 한 적도 있었고요. 지금이야 그런 경계선이 다 무너졌지만 저는 제 일에 충실해야죠."
우리는 그를 '타짜'의 평경장 역, '내부자들'의 이강희 역 등 인상깊은 역할들로 기억하지만 젊은 시절 그는 '회색 도시의 고뇌한 지식인' 역할을 자주 맡았다. 당시에는 이중섭 화가, 이상화 시인, 나운규 감독 등 역사적 인물들을 연기했었다.
"KBS TV드라마에서 주인공을 자주 했었죠. 회색도시의 고뇌한 지식인상이라고 해야 되나? 제가 아마 TV문학관 최다 출연자일 거예요. 그 때는 후시 녹음을 하면서 목소리 연기를 또 따로 하는데 한 번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갔거든요. 저희끼리 혀에 쥐가 난다고 그랬어요. 그렇게 많은 역할들을 연기하고 했기 때문에 오늘의 제가 있을 수 있지 않나 싶네요."
영화 '반드시 잡는다'에서 연쇄살인범을 쫓는 동네 터줏대감 노인 심덕수 역을 연기한 배우 백윤식. (사진=NEW 제공)
그는 스스로를 '진행형' 인간이라 불렀다. 작품 속에서 지금까지 주연으로 활약하며 영향력 있는 캐릭터를 소화한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하나 하나, 캐릭터를 소화시키면서 순리대로 흘러가게 내버려 두는 게 그의 비결 아닌 비결이다.
"진행형, 'ing'라는 말을 참 좋아해요. 순리대로 자연스럽게 가는 상황에서 이런 작품들을 만나서 기쁘죠. 배우가 작품을 선택만 한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것도 아니고, 나를 선택해주는 분들이 가진 나에 대한 이미지나 생각이 있을 것 같거든요. 그래서 내가 좀 더 많은 혜택을 받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지 않습니까. 우리 직업은 특히 캐릭터를 창작하고 이런 의미에서는 끝이 없는 것 같아요. 저도 최선을 다하고, 최대한 감사한 마음으로 접근합니다."
한창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중년 남성 배우들의 경우, 가면 갈수록 연기가 어려워진다는 예상치 못한 고민들을 하기도 한다. 결국 정상에서조차 자신을 발전시켜야 하는 배우들의 숙명이다. 백윤식은 어떤 마음으로 그런 시절을 지나왔을까.
"배우는 나이가 차면 나와야 하는 직업이 아니잖아요? 왕성하게 연기할 수 있는 창창한 나이에 그런 생각을 하면 안되죠. 연령이 높아지면 할 수 있는 역할이나 장르가 줄어들어 그런 고민을 할 수는 있지만요. 작품 연결이 안되면 안할 수도 있는 거고, 하려고 마음먹으면 계속하는 거고…. 주는 떡이라도 다 받아먹으면 안됩니다."
마지막으로 '반드시 잡는다'의 관객들에게 남기는 한 마디에서도 백윤식은 유쾌함을 잃지 않았다.
"영화가 잘됐으면 좋겠고, 사실 소재의 폭이 다양하게 넓어지면 관객들이 즐기는 폭도 넓어져서 좋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저는 제 현장에서 열심히 하면 되죠. 자리만 만들어주면 최선을 다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