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그 사이 얼굴이 더 좋아진 것 같아."
홍수환(67) 한국권투위원회(KBC) 회장은 엑토르 카라스키야(56)의 얼굴을 정겹게 손등으로 쓰담쓰담했다.
40년 전 자신을 4차례나 캔버스에 드러눕게 한 카라스키야를 홍 회장은 이제 누구보다 가까운 친구로 다시 만났다.
카라스키야가 26일 오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아내와 함께 입국했다.
카라스키야는 이번 방한에서 오는 27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리는 홍 회장의 '4전 5기' 4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는 것을 시작으로 국내 각계 인사들과 교류의 폭을 넓힐 예정이다.
홍 회장과 카라스키야는 1977년 11월 27일 파나마의 링에서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페더급 초대 타이틀을 걸고 맞붙었다.
홍 회장은 당시 경기에서 한 라운드에서만 4번 다운을 당하고서도 바로 다음 라운드에서 역전 KO승을 거두고 기적과 같은 '4전 5기' 신화를 썼다.
온 국민이 힘겹고 초라했던 1970년대, 남의 나라에서 계속 쓰러지는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고 기어이 '챔피언을 먹은' 홍수환은 그야말로 국민적인 영웅이 됐다.
'4전 5기' 40주년을 맞아 KBC와 채널인이 기념행사를 준비하며 카라스키야를 초대하면서 방한이 성사됐다.
1980년대 세계 프로복싱계를 주름잡은 '파나마의 돌주먹' 로베르토 두란(66)도 애초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건강상의 이유로 무산됐다.
카라스키야는 먼저 "홍 회장의 40주년을 축하한다"며 "이렇게 불러주고 환영해주셔서 감사하다. 한국은 올 때마다 가족 같은 느낌이 든다"고 웃으며 말했다.
카라스키야는 홍 회장에게 믿기지 않는 패배를 당한 뒤 복싱 선수로는 더는 날개를 펴지 못했다. 하지만 링보다 더 무서운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그는 승자였다.
그는 1981년 프로 통산 전적 18승(16KO) 5패를 끝으로 복싱 글러브를 벗은 뒤 정치인으로 변신해 시의원, 시장을 거쳐 이제는 파나마 국회의원으로 활동 중이다.
그는 "당시 홍 회장에게 당했던 패배를 통해 정신적으로 강해질 수 있었다"며 "또 당시 경기가 파나마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됐기에 이렇게 시장도 하고 국회의원도 할 수 있었다"며 되려 홍 회장에게 감사를 표했다.
카라스키야는 지난해 9월 홍 회장과 17년 만에 재회해 많은 화제를 낳았다. 당시에는 공공외교 전문기관인 한국국제교류재단(KF)의 초청으로 방한한 카라스키야가 먼저 홍 회장을 찾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홍 회장 측에서 카라스키야를 직접 초대했다.
홍 회장은 "내가 반대로 카라스키야에게 그렇게 패했는데, 40주년 한다고 나를 부르면 내가 과연 갔을지 모르겠다"며 "나를 축하해주겠다고 와준 카라스키야의 사람 됨됨이에 다시 한 번 반하게 된다. 나보다 한 수 위의 사람"이라고 말했다.
둘의 인연은 한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카라스키야는 내년 41주년 행사에 홍 회장을 파나마로 초대하겠다고 제안했다. 그때 두란과 함께 자리를 마련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홍 회장은 그 제안을 그 자리에서 곧바로 승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