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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스페인 이만기죠" 씨름 본토 긴장시킨 20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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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스페인 이만기에요' 에우제비오 레데즈마 페레즈가 25일 '2017 천하장사씨름대축제' 세계특별장사 결정전에서 우승을 확정한 뒤 두 팔을 들고 기뻐하고 있다.(나주=대한씨름협회)

 

'스페인의 이만기'라고 할 만한 벽안의 청년이 씨름의 본고장 한국 모래판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약관의 나이에 '세계천하장사'에 등극했다.

에우제비오 레데스마 페레즈(20)는 25일 전남 나주스포츠파크에서 열린 'IBK기업은행 2017 천하장사씨름대축제' 세계특별장사 결정전(3전2선승제)에서 한까의(몽골)를 접전 끝에 2-1로 제압했다. 지난해 이 대회 3위의 아쉬움을 딛고 두 번째 도전 만에 우승을 차지했다.

페레즈는 이미 스페인 씨름인 루차카나리아에서도 혜성처럼 나타난 선수다. 2015년 불과 18살의 나이에 루차카나리아 챔피언에 올랐다. 역대 최연소 기록을 세우는 기염을 토했다.

무엇보다 페레즈가 대단한 점은 상대적으로 불리한 체격 조건에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는 점이다. 페레즈는 180cm 114kg으로 스페인과 몽골, 중국 씨름 고수들이 출전한 세계특별장사전에서 가장 왜소한(?) 체구다. 그러나 잇따라 거한들을 눕히며 왕좌에 올랐다. 한국 씨름으로 치자면 한라급(108kg 이하)이 백두급(145kg 이하)을 누른 셈이다.

페레즈가 25일 '2017 천하대장사대축제'에서 세계특별장사에 오른 뒤 황소 트로피와 인증서를 들어보이고 있다.(나주=대한씨름협회)

 

어린 나이와 불리한 체격에도 최고가 됐던 '한국 씨름의 전설' 이만기 인제대 교수(54)와 비슷하다. 이 교수는 만 20살이던 1983년 당시 최강이던 최욱진을 꺾고 민속씨름 초대 천하장사에 등극했다. 한라급으로 시작한 이 교수는 이후 체급을 백두급으로 올리며 10번이나 천하장사에 등극, 한국 씨름 최고의 스타로 군림했다.

페레즈도 마찬가지다. 이미 18살에 스페인을 정복한 페레즈는 한국 씨름에도 탁월한 감각을 보이고 있다. 이날 8강에서 페레즈는 2012년 세계특별장사 엘리에세르를 누른 데 이어 4강에서도 2014 루차카나리아 챔피언이자 2013, 2014년 세계특별장사의 알바로(이상 스페인)를 눌렀다. 186cm 137kg와 196cm 144kg의 거구를 모두 2-0으로 눕혔다.

이 교수처럼 기술이 돋보인다. 4강전 둘째 판이 돋보였다. 페레즈는 알바로가 자신의 오른 오른 무릎을 잡으며 저돌적으로 들어오자 발을 뒤로 빼며 그대로 끌어당기기로 상대를 눕혔다. 버티는 힘이 없다면 구사하지 못했을 기술이다.

결승은 접전이었다. 몽골 씨름의 자존심을 건 한까의와 세 판 모두 연장이었다. 첫 판에서 오히려 연장 더잡기의 유리함을 안은 페레즈는 한까의의 맹렬한 밀어치기를 비껴 피하며 역으로 밀어치기를 구사해 기선을 제압했다. 둘째 판은 저돌적인 한까의의 머리에 부딪혀 입에 피가 나는 부상을 입은 끝에 내줬다.

셋째 판은 그야말로 투지가 빛났다. 밀고 밀리는 접전 속에 연장 더잡기를 안은 페레즈는 한까의의 맹렬한 공격을 막아냈다. 4초를 남긴 가운데 그대로 버티면 139kg의 한까의보다 가벼운 페레즈의 승리였다. 이를 안 한까의는 맹렬하게 밀어붙였지만 페레즈는 모래판 밖으로 나가면서도 이를 막아내 마침내 승리를 확정지었다.

'한국 씨름 최고!' 페레즈가 25일 '2017 천하장사대축제'에서 세계특별장사에 올라 인터뷰를 마친 뒤 엄지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나주=노컷뉴스)

 

경기 후 페레즈는 "지난해는 가벼운 마음으로 나왔는데 올해는 주위 조언도 구하고 훈련도 많이 했다"면서 "두 번째 대회 만에 우승해 자랑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지난해 형에 이어 우승해 뿌듯하다"고 덧붙였다. 31살의 마르코스 레데스마 페레즈는 지난해 대회 우승자였고, 루차카나리아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동생을 꺾고 우승했다. 그의 부모까지 루차카나리아 집안이다.

약관의 나이에 챔피언에 오른 소감이 어떨까. 페레즈는 "루차카나리아 챔피언은 보통 23~25살이 많은데 18살에 석권해 스페인에서도 화제가 됐다"면서도 "하지만 한국 씨름은 많이 다르고 더 연마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겸손함을 드러냈다.

페레즈는 한국 선수들이 모두 나서는 천하장사 대회에서도 외국 선수로는 유일하게 16강에 올랐다. 16강 상대인 김현수(영암군민속씨름단) 등 한국 선수들은 페레즈를 주목하며 사뭇 긴장하는 눈치다. 왕년 기술 씨름의 달인이었던 '털보' 이승삼 협회 상벌위원장은 "페레즈는 발을 뒤고 빼고 넣고 하는 스텝이 좋다"면서 "적은 몸집에도 남다른 기술도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페레즈는 고개를 숙였다. 이 위원장의 말을 전해들은 페레즈는 "칭찬은 감사하지만 아직 한국 선수들을 이길 만한 정도는 아니다"면서 "내일부터 열리는 16강전부터 결승까지 가기는 무리"라고 손사래를 쳤다.

한국 씨름에 대한 애정과 부러움도 묻어났다. 페레즈는 "스페인 사람들은 대부분 축구 얘기를 하지 루차카나리아는 별 관심이 없다"면서 "그러나 한국은 씨름이라는 민속 경기에 대한 국민들의 애정이 남달라 감동을 받았고, 영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과연 '스페인 이만기'가 씨름 본토 한국의 천하장사 대회에서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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