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이 2020년 증강현실(AR) 헤드셋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최근 캐나다 AR 기술 업체인 '버바나(Vrvana)'를 3000만달러(약 326억원)에 인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22일(현지시간) IT 매체 테크크런치는 애플이 지난 여름 AR/VR 헤드셋 개발 스타트업 버바나를 인수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버바나의 기존 헤드셋 개발 부문, 향후 개발 로드맵, 현재 진행중인 밸브·테슬라·아우디 등과의 협력 비즈니스 중 어떤 쪽에 치중할 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비밀주의'가 많은 애플이 무엇을 개발하려는지 뚜렷하게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전했다.
◇ AR·VR 뛰어넘는 확장현실(XR) 기술
버바나는 캐나다 몬트리올 기반의 AR/VR 헤드셋 개발 업체로 AR과 VR의 두 핵심 기술을 이용하여 하나의 헤드셋으로 양자의 체험이 모두 가능한 확장현실(XR·extended reality) 헤드셋 '토템(Totem)'을 개발하고 있다.
소식통은 마이크 로크웰이 이끌고 이는 애플의 'AR 팀'에 버바나 기술진이 합류했다고 전했다. 로크웰은 오디오 및 비디오 기술 업체인 돌비의 하드웨어 신기술 그룹을 총괄했던 비주얼 시스템 최고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토템은 PC·웹·모바일·독립방식 등 어떤 플랫폼에서도 환경의 변화 없이 완벽하게 동일한 환경으로 AR/VR을 이용할 수 있는 '이음새 없는 혼합(seamless blended)' 방식의 혁신적인 'XR 헤드셋'이다.
라지 탈루리(Raj Talluri) 퀄컴 테크놀로지 수석 부사장은 지난 9월 서울에서 개최된 '스마트클라우드쇼 2017’ 기조연설에서 "2020년쯤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5G 시대 이후에는 굉장한 XR 헤드셋 기기가 나오게 될 것"이라며 "XR 기술이 탑재된 안경을 쓰고 실제 환경에 활용하게 된다면 굉장한 효용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토템은 올해 초 CES 2017에서 '톰스 하드웨어 베스트 제품'으로 선정되며 눈길을 끌었다. 프로토타입 수준의 B2B 시범용 50대가 제작 됐고, 이 중 하나가 애플에도 들어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시제품의 가격은 5000달러(약 543만원)에 달하지만 버바나는 올 하반기 오큘러스 리프트나 HTC 바이브와 비슷한 가격인 수백달러 수준의 소비자용 제품 양산을 앞두고 있었다. 테크크런치는 버바나의 SNS가 8월 이후로 추가 업데이트가 안 되어 있다는 점을 들어 이 시기에 애플이 인수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버바나 '토템' 스펙
토템은 마이크로소프트의 '홀로렌즈' AR 헤드셋처럼 투명 디스플레이 너머로 보이는 현실 풍경에 디지털 정보를 겹치는 방식이 아닌 헤드셋 전방에 장착된 카메라로 현실 풍경을 파악하고 내부의 OLED 디스플레이에 현실과 디지털 정보를 함께 보여주는 새로운 XR 방식이다.
최근 마이크로소프트가 내놓은 '윈도우 혼합현실(Windows Mixed Reality)' 플랫폼에 사용되는 헤드셋과 흡사하다. 시장 선점효과를 위해 먼저 출시된 면이 없지 않지만 현재 윈도우 MR 지원 헤드셋은 전면의 흑백 카메라가 센서의 역할을 대신하는데 그쳐 아직 과도기 단계에 있다. 결과적으로는 XR 헤드셋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 디바이스·플랫폼 영향 없이 완벽히 호환되는 XR 주목XR 헤드셋의 장점은 사용자를 완전하게 디지털 공간에 몰입시키는 VR을 이용할 수 있고, 탑재된 카메라 시스템은 3D 공간에서 사용자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적외선 카메라는 사용자의 손 위치를 추적한다.
애플이 아이폰X 이후 2019년 출시될 신형 아이폰 후면에 적용할 것으로 알려진 3D 센서 방식은 버바나와 애플의 기술 결합을 가늠해볼 수 있는 매개체다.
아이폰X의 트루뎁스 카메라 시스템의 3D 센서가 거리측정과 얼굴인식을 위해 3만 개의 적외선 도트를 투사하는 것과 달리 2019년에 적용될 아이폰 후면 3D 센서는 레이저를 투사한 다음 센서로 돌아가기 전 빛이 물체에서 반사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기준으로 거리를 계산하는 방식으로 레이저를 발사해 실내 구조를 정확하게 매핑하거나 다양한 물체를 3차원으로 탐지할 수 있는 ToF(Time-of-Flight) 센서가 적용 될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앞서 올해 1월 애플이 독일 명품 렌즈 업체인 칼 자이스와 AR 제품을 만든다는 소문이 돌았고, 6월에는 AR/VR 기기 등에서 사용되는 시선 추적 기술 업체인 SMI(SensoMotoric Instruments)를 인수했다. 같은 달 열린 애플 개발자회의(WWDC)에서는 AR을 iOS 운영체제로 가져오는 ARkit을 발표했다.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는 "확장현실(XR)은 가상현실(VR)처럼 사람들을 현실 공간에서 완전히 격리시키는 것이 아니란 점이 매력적이다. 확장현실 기술에서 사람들은 현실 공간에 위치하면서 새로운 것을 더하는 체험이 가능해진다"며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장시간에 걸쳐 현실 공간에서 격리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현재의 기술에서는 가상현실 기술의 한계도 분명하다. 확장현실은 가상현실보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생활에 스며들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AR이라는 제한적 시야각에서 한 발 더 나아갔다.
하지만 지난달 영국 인디펜던트와 가진 인터뷰에서 ARkit이 아이폰과 아이패드라는 한정적 디바이스에 그치고 있다는 질문에는 "AR 하드웨어 장치는 위치를 추적하기 위해 많은 처리능력과 다양한 센서 기술을 보유해야 한다. 하지만 수십억 명의 잠재고객을 가진 아이폰과 앱스토어를 활용하면 하룻밤 사이에 거대한 AR 플랫폼이 될 수 있다"며 "다른 하드웨어 장치를 사용했다면 상용화는 물론 개발자들에게 이익도 돌아갈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해 AR 하드웨어에 대한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우리가 그런 제품을 개발한다는 소문이 있는 것은 알고 있지만 내부에서 어떤 일이 있는지 밝힐 수 없다"며 "시야각, 디스플레이 자체의 품질, 현재의 기술적 품질면에서 만족할만한 제품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때문에 애플이 하드웨어보다 AR 소프트웨어 개발에 더 초점을 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애플이 자율주행차 개발을 취소하고 소프트웨어 개발로 전환 했던 사례를 들며 새로운 하드웨어에 대한 리스크를 줄이려는게 팀 쿡 CEO 체제의 특징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 "출시 장담은 이르지만 애플 HW·SW 동시 개발 중"
마이크로소프트도 XR과 흡사한 혼합현실 플랫폼 '윈도우 MR'을 내놨지만 헤드셋은 삼성과 에이수스, 레노버 등이 출시하고 있다.
한 기술업계 관계자는 "AR과 VR에 대한 시장 기대치가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시장 확장에 있어서는 아직 기술과 비용 문제로 성장이 더딘 상태"라며 "스마트폰처럼 시장이 폭발 할 수 있는 요인이 아직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스마트폰이나 안경처럼 휴대가 편하고 비용의 부담이 적으며 일상적인 사용자 환경이 어느정도 마련될 때 까지는 스마트폰을 완전히 대체하는데 시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일부 전문가들은 애플이 팀 쿡의 말처럼 이미 수십억 명이 사용하고 있는 아이폰 생태계와 분리된 전혀 새로운 AR 헤드셋을 내놓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기술적인 한계를 해결하고 어떤식으로든 아이폰과 맥컴퓨터와의 연결성을 확보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런 점에서 버바나 인수와 최근 테스트중으로 알려진 AR 운영체제 'rOS'가 실마리가 될 수 있다.
PC·웹·모바일 등 어떤 플랫폼에서도 환경의 변화 없이 완벽하게 동일한 환경으로 AR/VR을 이용할 수 있는 '이음새 없는 혼합(seamless blended)' 방식의 혁신적인 XR 헤드셋이라면 아이폰 디바이스와의 연결성은 오히려 한층 강화될 수 있다.
애플은 2020년 AR/VR을 뛰어넘는 XR 헤드셋을 선보일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코드명 'T288'라고 부르는 AR 헤드셋을 개발중에 있으며 여기에는 자체 개발한 렌즈 및 디스플레이와 프로세서, rOS(AR 운영체제)가 탑재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