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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지진] 신춘문예 준비생이 본 '지진 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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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1-1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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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지진으로 가장 피해가 심각한 곳이 포항시 북구 흥해읍지역이다. 포항시 남부 지역에서는 육안으로 지진 피해를 관찰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포항시민들의 지진 공포감은 무척 컸다. 포항 시민들은 이미 작년 9월 경주 지진을 경험했다. 특히 이번 지진은 진앙지가 지표면에서 멀지 않았기 때문에 지진 강도로 인한 불안과 공포감은 훨씬 더 커진 것으로 보인다.

동대구에서 포항으로 들어가는 KTX기차도 속도를 늦췄다. 이 구간 기차는 평균 14분정도 연착했다. 기차에서 만난 할머니는 그날의 공포를 이렇게 말했다.

"하이구! 말로 어떻게 설명합니꺼. 침대 누워있는데 선반에 있는 약이 다 떨어지느거라 난리였지예. 그리고 좀 있다. 동네 사람들이 함께 모여 불안에 떨었지요"

지진 피해가 가장 큰 흥해읍으로 갔다,

지진이 난 곳은 포항교육지원청과 불과 수킬로미터 떨어진 위쪽에 있다. 사진=CBS 구용회 기자

 

흥해읍은 북쪽에 위치해 있다. 원래 포스코가 생기기 전에는 근동에서 가장 많은 주민이 살던 지역이었다. 조선시대 포항은 자그마한 어촌이었고 형산강 모래바람 등으로 사람이 많이 않았다. 그러나 흥해는 너른 들판을 갖고 있기때문에 '현감'이 파견될 만큼 포항 인근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고 한다.

흥해읍 실내체육관에 마련된 대피소는 이재민들로 북적거렸다. 체육관 안이 온통 이재민들로 꽉 들어찼다. 실제 난민생활이었다. 스티로폼 위에 모포가 가득했다.

한 밤중에는 퇴근한 이재민까지 모두 모이기 때문에 이재민 사이사이의 회랑으로 걷는 것 조차 쉽지 않았다. 어림 잡아도 800명에서 1천명 가까이 돼 보였다. 거기에 자원봉사자를 비롯해 지원 나온 공무원까지 텐트만 없다 뿐이지 진짜 '난민촌'을 방불케 했다.

대낮에 다시 찾은 흥해 대피소는 전날 밤보다 주민들이 많지 않았다. 일부는 출근하고 일부는 덜 파손된 집에 다녀오고 대피소 생활이지만 각자의 또다른 삶에 분주한 듯 했다..

서로 손뼉을 마주치고 함께 노래하며 잠시 근심을 달래는 엄마와 아이, 모포를 무릎에 덥고 앞날을 걱정하는 가족들, 붕괴 위기에 처한 아파트에 함께 살며 서로를 위로하는 할머니들, 대피소 생활은 상념,시름과의 싸움이다. 물론 주민들은 현실을 받아들이려 애썼다.

할머니 한 분은 "우야겠습니까. 걱정만하고 있으면..웃고 떠들고 해야지..."

그 중 대피소 생활을 하고 있는 한 청년을 만났다. 그는 모포를 가슴밑에 깔고 신춘문예 당선시집을 머리맡에 두고 노트에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었다. 건축학도 출신이지만 신춘문예 당선을 꿈꾸는 30살의 이제열씨였다.

이씨는 지진 나던 날 오후 아파트(맨션)에 있다가 건물이 흔들리자 급히 뛰어나왔다고 한다. 사이렌이 울렸고 방송으로 대피를 하라는 긴급한 목소리도 흘러나왔다. 이씨는 대피 방송에 따라 인근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달려갔다.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400-500여명의 주민들이 순식간에 모여들었다. 지진이 잦아들자 주민들은 가족들의 안부를 묻기 시작했다.

이씨는 "처음에는 다들 놀란 분위기에서 어떤 아이들은 울었고 엄마들을 아이들을 챙기느라 황망한 상태였다"고 그 당시를 회고했다.

그는 손바닥만한 수첩을 갖고 있었다. 혹시 지진나던 당시를 기록한 글이 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수첩을 열며 아래와 같은 글을 보여줬다. 제목도 없고 당시 첫 느낌을 시 형태로 쓴 초벌 같은 글이었다.(아래)

노트에 적은 글. 사진=CBS 구용회 기자

 

대피소에 앉아 있는 이제열 씨. 사진=CBS 구용회 기자

 


지진이 나서 사람들이 다 학교운동장에 나왔다.

개들은 산책나온 줄 알고
뛰어다니고 제각각 소중한
것을 품에 앉고 '괜찮다 괜찮아' 하면서 어린 것을
달래고 있다.

나는 메모장을 들고
추위를 달래고 여거저기
흔들거렸던 것들의 잔해가
굴러다니고 있다.

바람이 많이 분다. 아이들은
학교가 일찍 마쳐서 기쁜지
추위를 모르고 떠들어 댄다.

나는 무서워서 글안으로 숨었는데
바닥의 돌을 주어 먹는 아이와
'야 이리와' 하며 쫓아가는
엄마와 메서운 바람과
등 뒤로 느껴지는 여진과
불안한 목소리와 사이렌 소리와
내 가족들의 안부와 얼마
남지 않은 휴대폰 배터리와
통장과 하드디스크와
기우는 무심한 태양과 아직
끝나지 않은 근무들
모두 앞에 근질근질한 저녁
의 목소리

이 씨에게 몇 가지를 물었다.

기자>그 당시 상황을 얘기해달라?
이제열씨> 어머니,아버지,여동생하고 살고 있다. 근데 아버지 어머니가 출근하시고 퇴근을 하지 않았다. 대피 방송에서 피해라 해서 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기자>이 글은 언제 쓴건가?
이제열>가족을 기다리면서 생각한 글이다.

기자>얼마나 있었고 사람들은 얼마나 모였나?
이제열>한 3시간 운동장에 있었던 것 같다. 사람들이 놀라고 바람도 불고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다. 현장에는 사오백명의 주민들이 있었던 것 같다.

기자>당시 상황은?
이제열>분위기가 다들 놀라 있는 상태였고 힘들어 하는 것 같았다. 애들은 울고 뛰어다니고 어머니들은 애들 챙기느라 정신이 없고 아이들이 특히 많았다. 사이렌 소리도 울리고 방송 소리도 들렸다.

기자>글 말미에 '근질근질한 저녁'이라고 썼는데 '근질근질하다'라는 말이 뭔가?
이제열>'근질근질한' 이거는 좀 표현하기가 힘들다. 저도.

이씨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조용했다.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듯 했다. 이씨에게 '언제까지 있을 것 같냐'고 바보같은(?) 물음을 던졌더니 '모르겠다'라고 싱겁게 웃었다.

이씨는 빨리 집으로 돌아가 곧 시작되는 신문 신춘문예를 준비하고 싶다고 말했다. 기자와 대화를 마친 뒤 그는 이내 다시 모포를 '가슴베개'삼고 노트 위에 '시'를 쓰는데 몰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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