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후 첫 동남아 순방에 나선 문재인 대통령이 14일(현지시간) 필리핀을 마지막으로 7박8일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귀국한다.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인도네시아를 국빈방문한데 이어 10~11일 베트남 다낭에서 열린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12~14일 필리핀 마닐라에서 개최된 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관련 정상회의에 참석했던 문 대통령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포함해 6번의 정상회담까지 소화하며 쉴 틈 없는 정상외교를 이어갔다.
한국이 아세안에 다가가는 계기를 마련했고, 한‧중 관계 정상화를 본궤도에 올려놓은 것은 이번 순방의 중요한 성과로 평가된다. 다만 중국과 대북정책 각론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한 점은 다음 달 방중(訪中)하는 문 대통령의 숙제로 남았다.
◇文 "아세안과 관계를 4대국 수준으로"…아세안 정상들, 이해와 지지
대통령 중 최초로 아세안(ASEASN‧동남아시아국가연합)에 특사단을 파견하며 주목받았던 문 대통령의 이번 순방의 중요한 목표 중 하나는 자신의 대(對)아세안 정책의 골자인 '신(新)남방정책'을 아세안에 제시하고 지지를 받는 것이었다.
신남방정책은 아세안과 인도 등과의 교류·협력을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중국·일본·러시아의 4강국 수준으로 격상시키고 아세안과의 교역량을 2020년까지 현재 중국과의 교역수준인 2천억 달러 규모로 끌어올리는 것이 골자다.
지난 9월 러시아 방문 때 제시했던 러시아 극동지역과 중국 동북 3성, 중앙아시아 국가, 몽골 등 유라시아 국가들과의 경제협력 비전인 '신북방정책'과 짝을 이루는 외교정책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지난 9일 한·인도네시아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서 "아세안 국가와의 외교 관계를 4대국 수준으로 격상시키기 위해 신남방정책을 강력하게, 그리고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데 이어, 아세안 각국 기업들이 참석한 '아세안기업투자서밋(ABIS)'에서는 아세안 구체적인 실행 로드맵이 담긴 '한·아세안 미래공동체 구상'을 제시했다.
미래공동체 구상은 아세안의 '사람 중심·사람 지향'의 가치와 문 대통령의 '사람이 먼저다'라는 정치철학의 공통점을 중심으로 ▲사람(People) 중심의 국민외교 ▲국민이 안전한 평화(Peace) 공동체 ▲더불어 잘사는 상생 협력(Prosperity) 등 이른바 '3P전략'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순방 기간 중 각종 정상회의는 물론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쩐 다이 베트남 국가주석, 리센룽 싱가포르 총리등과 정상회담을 통해 이런 구상을 설명했고, 이에 대한 지지를 얻어내며 아세안에 다가서기 위한 발판을 만들었단 평가가 나왔다.
14일 순방 기자단이 머무른 기자실에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연 문 대통령은 "아주 숨 가쁘게 이뤄진 일정이었고 또 매일 일정이 빡빡해서 다 함께 고생했지만 꽤 성과와 보람이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첫번째 성과로 "아세안과의 관계를 대폭 강화하기 위한 신남방정책을 천명했고, 그에 대한 아세안 각국들의 공감과 지지를 얻었다"고 자평했다.
◇ 시진핑·리커창과 연쇄회동하며 한중관계 정상화 드라이브도
순방기간 중국의 권력서열 1·2위인 시진핑 주석과 리커창 총리와 연쇄회담을 통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에 종지부를 찍고 한중관계를 정상회의 본 궤도에 올려놓은 것도 중요한 성과로 평가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시 주석과 회담에서 '양국이 모든 분야에서의 교류협력을 정상궤도로 조속히 회복시키자'고 의견을 모았다. 이에 대해 시 주석은 "새로운 출발이고 좋은 시작"이라고 했는데 한‧중관계 정상화를 양국 정상이 천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시 주석은 또 "중·한 고위층이 상호 왕복을 통해 중·한 관계 이끌어 가자"며 특히 자신과 문 대통령이 이를 주도하자고 언급했는데 문 대통령에 대한 신뢰감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양국 관계 정상화가 급물살을 탈 것으로 전망된다.
시 주석과 정상회담에 이어 리 총리와의 회담에서는 양국 간 경제‧문화‧관광 교류 활성화의 신호탄을 쐈다.
문 대통령은 사드 문제로 침체됐던 양국 관계로 한국의 많은 기업이 어려움을 겪어왔다는 점을 거론하며 조속한 양국 교류 회복을 제안했고, 리 총리는 "중‧한 관계의 발전에 따라 일부 구체적이고 예민한 문제들을 피하긴 어렵지만, 중‧한 간의 실질협력 전망은 아주 밝다. 중‧한 양국은 상호보완성이 강해 중‧한 관계의 미래는 자신할 수 있다"고 화답했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 그리고 리커창 총리와의 연쇄 회담을 통해서 중국과의 관계를 정상화하는 그런 성과가 있었고, 중국과 한국, 양국 간에 새 시대를 열기 위한 새로운 출발을 합의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北수교' 아세안에게 대북정책 지지도…사드 보복 확답은 과제로 남아
북핵 문제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며 아세안 정상을 비롯한 동아시아 정상들에게 지지를 이끌어 낸 것도 성과로 평가된다.
15일 공개된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 등이 채택한 의장성명에는 북한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이 반영됐다.
특히 대부분 북한과 수교를 맺고 있는 아세안 국가들로부터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공감대를 끌어낸 것은 안보 전략적 차원에서 의미가 있어 보인다.
아세안+3 정상회의에서 북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국제사회의 단합을 촉구하는 문 대통령의 제안에 리 총리는 "중국은 일관되고 확고하게 북한의 핵에 반대해왔다"며 "한반도의 비핵화를 추구하고 유엔 (안보리) 결의에 대해 성실하게 이행하고 있다"고 화답했다.
응우옌 쑤언 푹 베트남 총리도 "북한의 위협과 도발에 대해 비난해야 하고 역내 국가들 간 관계를 강화시켜야 한다"며 "유엔 안보리 결의안 등에 대해 우리 모두 지지하고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지지했다. '
14일 동아시아정상회의에서도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북한이 대화를 하자고 할때까지 (제제와 압박을) 밀어붙여야 한다"고 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모든 옵션이 다 테이블에 있다'는 발언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북한을 압박했다.
맬컴 턴불 호주 총리도 "김정은 같은 독재자의 범죄와 무기거래, 마약밀매에 대해서도 제재를 해야 한다"며 "글로벌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야 한다"고 말했다.
"모든 외교적 수단을 사용해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 내고 평화적 방식으로 완전한 핵 폐기를 달성해야 한다"는 문 대통령의 정상회의 발언들과 맥을 함께 하는 것이다.
다만 그동안 구체적인 대북접근법에서 차이를 보였던 중국과 입장 차이를 좁히지 못했고, 우리 기업에 대한 사드 보복 해지에 대해 확답을 받지 못한 점은 다음 달 방중 하는 문 대통령의 숙제로 남았다.
이와 관련해 문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연중 방중을 초청받고 수락을 했는데 다음 달에 있을 방중이 양국 관계 발전에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는데, 문 대통령의 기대대로 3번째 한중 정상회담이 한중관계 발전의 촉매제가 될지 관심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