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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①] 진모영 감독이 '아버지의 바다'로 향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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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마린보이' 속 우주인 같은 머구리, 생계의 바다는 전혀 다른 색"

영화 '올드마린보이' 진모영 감독. (사진=필앤플랜 제공)

 

다큐멘터리 영화 주인공과의 만남은 우연과 필연의 사이에 있다. 영화보다 더 현실적이면서도, 영화보다 더 극적인 스토리텔링을 가진 삶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 의미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올드마린보이'의 진모영 감독은 주인공 박명호 씨과의 만남을 '운명적'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런 인물을 내가 찾아내서 찍겠다고 정해 놓지는 않아요. 전 농촌에서 자라났는데 바로 앞에 바다가 있으면서도 어업을 그리 중시하는 분위기는 아니었거든요. 바다는 농한기에나 잠시 가서 낚시하고, 굴 까는 그런 공간이었어요. 그럼에도 바다 가까이 살았으니 바다를 한 번 찍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요. 머구리 세계와 인생의 연관성을 탐구하는 것이 초기 주제였는데 박명호 씨는 바다 노동자이자 아버지이자 또 나중에 발굴되긴 했지만 탈북자였죠. 이런 요소들이 두루 섞여 절 끌리게 했던 것 같아요."

바닷 속 '노동자'라고 한다면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직업군은 해녀다. 머구리를 촬영하기 위해서는 더 깊은 곳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진모영 감독에게도 어려움을 감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머구리'를 촬영하겠다고 마음 먹은 이유가 있다.

"해녀들의 노동은 얕은 수심에서 이뤄져 느낌이 달랐던 것 같아요. 해녀들의 노동 양식도 머구리와 다른데 숨을 고르고, 직선으로 다이빙을 한 후 거꾸로 엎어져서 해산물을 줏은 다음에 올라거든요. 그런데 머구리는 계속 바다 밑을 걸으며 육상에서와 비슷한 행동을 합니다. 그것이 매우 낯선 이미지를 창조해내요. 철모를 쓰고 바닷 속을 누비고 다니는 모습이 마치 우주인 같죠."

영화 '올드마린보이' 스틸컷.

 

박명호 씨가 걸어다니는 '노동의 바다'인 동시에 '아버지의 바다'다. 그의 걸음을 따라가다 보면 다소 어둡고 차갑지만 끊임없이 생을 이어주는 기묘한 바다의 속성을 만난다.

"그렇게 낯선 사람이 물밖으로 나오면 우리랑 똑같은 사람이거든요. 물밖의 조그만 둥지를 지키기 위해 물속으로 전진하는 거니까. 이건 어류들이 등장하는, 바다의 생태계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아니에요. 정말 우리가 일상에서 골목을 누비고 다니듯이, 박명호 씨에게는 그런 일터인거죠. 아마 '놀이터'가 아닌 바다의 느낌을 정확하게 받을 거라고 생각해요."

진모영 감독은 기차를 탔다가 한 기사에서 장애인 잠수부에 대한 이야기를 접했다고 했다. 실제 기사에 나온 인물을 섭외하려 했지만 이미 잠수병으로 더 이상 업으로 잠수를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진 감독은 박명호 씨를 만났다. 박 씨는 강원도 최북단에서 머구리로 살아가기 전, 북한에서 20년 동안 군 생활을 했었다. 네 명의 가족과 함께 서해 바다를 통해 삼엄한 국경을 넘고 여기까지 왔다.

"한 배에 일가족을 태우고 남북의 경계, 즉 사선을 넘는 그 공포와 두려움은 이승과 저승을 오가며 수중에서 일하는 세계들과 맞물려 거대한 메타포를 가지게 됩니다. 박명호 씨는 20년 동안 군 생활을 해서 군사지식이 많았고, 서해의 해류에 대한 분석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래서 바다로 국경을 넘어 올 수 있었던 거죠. 그에게는 당연히 엄청난 공포와 압박감이었을 겁니다. 모두가 죽을 수도 있는 일이었으니까요."

영화 속에서 박명호 씨는 특별한 날마다 동향 사람들과 만남을 가진다. 삶이 보장되지 않은 직업임에도 그들 중에서 박 씨는 '성공한' 케이스다. 죽음의 공포를 맞바꾼 대가로 누리는 삶조차도 일반적인 북한이탈주민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머구리는 기본적으로 목숨을 걸어야 하는 직업입니다. 잘못해서 지상과 자신을 연결해주는 호스가 끊어지면 잠수복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홀로 바다 위로 올라가지 못하고 죽을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이것이 성공한 삶이라면 다른 북한이탈주민들은 그것보다 더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는 겁니다. 작은 임대아파트가 지급이 되는데 그 지역을 벗어난 순간 거기서 살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두려운 마음에 거기 붙어 살면서 계속 나쁜 직업을 두고 경쟁을 합니다. 어쨌든 박명호 씨는 그걸 버리고 자신의 정당한 노동으로 식구를 부양하겠다는 생각을 하며 떠난 거죠. 자신도 겪었던 일이기 때문에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 직업도 소개해주고 하면서 도움을 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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