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제공)
박근혜 정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시초로 알려진 국립극단 기획공연 '개구리'가 단순 지원 배제를 넘어서 작품 내용 검열까지 이뤄진 것으로 파악됐다.
연극 '개구리'는 박근혜 정부 초기인 2013년 9월 3일부터 15일까지 공연된 작품이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이하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는 30일 서울 종로구 KT 광화문지사에서 진행한 언론 브리핑에서 '개구리'와 관련된
문체부 문서를 공개했다.
같은 달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문체부 공연전통예술과의 '개구리' 관련 현안 보고 문서를 보면 '개구리'에 포함된 정치 풍자 요소가 문체부 지시로 '최소화 되도록' 사전 조치된 정황이 드러난다.
문체부는 '내용상 문제점'이라는 항목에 '일부 정치 편향적이라 오해될 소지가 존재'한다면서 '구체적 사례'를 언급했다. 여기에는 △ '그분'이 노무현 대통령을 상징한다는 해석, △ '카멜레온'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상징한다는 해석, △ '그분'을 미화해 '카멜레온'을 비하적으로 묘사, △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을 '기말고사 컨닝'으로 풍자 등이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예술감독 손모 씨를 통해 내린 조치사항 역시 기재돼 있는데 연출가로 하여금 결말을 수정하게 해 과도한 정치적 풍자를 대폭 완화토록 지도, 문제 소지를 최소화하도록 조치했다는 대목이다. 손 씨가 '수정된 현 내용의 정치적 풍자 수준은 국민들이 수용(이해)할 것이라고 분석'했다는 검증까지 담겨있다.
'개구리'를 연출했던 박근형 연출가는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조사에서 이 같은 사실을 처음 알았다고 밝혔다. 예술감독이 이렇게 수정하자고 이야기를 할 때 장면에 대한 협의라고 생각했으며 협의 과정에서 수용을 하는 것으로 이해를 했다는 것이다.
(자료=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제공)
'향후 조치 계획' 항목에는 향후 국립극단 작품뿐만 아니라 모든 국립예술단체 주관 공연에 이 같은 '정치적 편향' 내용을 배제토록 협조 요청을 할 것이라는 검열 계획이 수립돼 있다.
또 '개구리'에 대해 '추가 조치 요구'를 할 경우 창작의 자유 침해 논란, 연극계 및 관객의 반발 등 불필요한 논란 초래가 가능하다는 내용으로 볼 때 이전의 '1차적 조치 요구'가 분명히 있었다는 분석이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에 따르면 실제로 2015년 진행된 국립국악원 금요공감 공연 '소월산천', 지난해 열렸던 국립현대무용단 제작의 한불수교 130주년 기념공연 '이미아직' 등에서도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블랙리스트가 작동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원래 '소월산천'은 박근형 연출가를 비롯한 예술인들이 협업할 예정이었지만 문체부 측에서 박 연출가에 대한 배제를 요구하면서 함께 공연하기로 한 정영두 안무가 등의 반발로 공연이 무산됐다.
당시 국립국악원에서 작성된 문서를 보면 '공연 취소에 따른 문제제기 가능성'이라는 항목 아래 △ 동 공연이 협업 예정이었던 예술가(박근형)으로 인해 취소되었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정치 쟁점화 우려, △ '금요공감' 출연 예정인 안무가 정영두가 이에 동조해 출연의사 없음을 알려옴 등의 현 상황 보고와 함께 △ 공개적인 문제 제기시 공연기획 과정, 취소 배경 등에 관한 상세 설명자료 즉시 대응이라는 구체적 대응법이 명시돼 있다.
'이미아직'의 경우, 지난해 9월 27일까지 작동한 블랙리스트에 따라 국정원(K)에서 협업 작가로 참여한 주재환 작가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 정황 등이 확인됐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 관계자는 "이는 박근혜 정부 초기인 2013년에 작품 지원 배제 정도가 아니라 전체적인 국립예술단체 작품들에 상부 지시에 따라 내용까지도 검열하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면서 "'국립극단' 이후 작품들에도 이런 방식으로 블랙리스트가 작동했는지 광범위한 후속조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